“지난 2년간 노사관계를 ‘교과서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기존의 정책을 지켜 가 달라.”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이 지난 10일 퇴임 뒤 ‘야인’으로서 가진 ‘첫 발언’이다. 김대환 전 장관은 이날 경총 최고경영자 연찬회 마지막날 강연자로 나서 지난 2년간의 노동부장관 시절을 이렇게 돌아봤다.<사진>

김 전 장관은 “노사관계는 주체인 노사, 그리고 정부가 있는 독특한 분야로 3주체가 노사관계를 규정하기에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들이 노사관계에 농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우리의 노사관계가 아직도 협력적이기보다는 갈등적이고 노동운동이 전투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노사관계에 농축돼 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김대환 전 장관 “교과서적인 노사관계를 펼치고자 했다”

김 전 장관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 전 장관이 생각하는 ‘교과서적인 노사관계’란 노와 사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정부는 법과 원칙을 갖고 노사관계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관행 때문에 노사관계가 교과서적으로 작동되지 못한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87년 이전 노사관계는 노와 사의 관계라기보다 노와 정의 관계로서, 현장에서 분규나 문제가 발생하면 사측이 직접 노측을 챙겨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사측은 일단 피하고 공권력이 와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선진국과는 달리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는 설명이다. 또한 당시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해 거의 배타적 경제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노사관계도 정상화, 합리화보다는 분규를 단시간 내에 빨리 진화하는 게 목적이다 보니 노조는 사용자만이 아니라 정부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87년 이후 각 사업장에서 노조가 결성, 투쟁을 시작했고 정부가 정당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사측에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기업노조가 노조운동을 주도하고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점차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소리를 행사해 왔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노사는 갈등해오면서 회사는 주로 차입을 통해 외형을 늘리면서 미봉책으로 해결해오고 결국 IMF를 맞아서는 구조조정, 특히 고용조정을 통해 사용자의 공세로 반전되는 등 (노사갈등이 반복되면서) 노사관계가 교과서적으로 정착되지 못했다는 게 김 전 장관의 진단이다.

때문에 김 전 장관은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교과서적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 노사관계는 이런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장관은 “시장은 변화하고 무섭게 달라지고 있는데 힘들지만 우리의 노사관계를 교과서적으로 접근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것은 나와 일한 노동부 공무원도 같은 생각이었고 지난 2년간 함께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노사자율, 법과 원칙 지켜지기를”

김 전 장관은 “노사자율이란 것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이기 쉽고 물리적 힘의 충돌에서 힘의 우열관계로 좌우된다고 왜곡되기 쉽다”며 “그러나 평범하지만 교과서적인 대화와 타협이란 것은 늘 일상생활에 있으며 당사자들끼리 대화와 타협으로 절충하는 것이고 정부는 대화와 타협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지원하고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김 전 장관은 이런 ‘소신’ 때문에 취임 초기부터 파업현장에서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밝했다. 그는 “일부에서 현장을 도외시한다고 비판받았지만 생산현장과 파업현장은 엄연히 다르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노사관계 자율화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의 파업현장에 내려와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한번도 내려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 전 장관은 “쉽게 말해서 노사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며 “다만 과정이 불법이면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산업현장에선 파업을 고려할 때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며 “정부는 합법이면 파업을 존중하고 노사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될 수 있도록 하겠지만 불법이면 정부가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개선해 나가도록 했다”고 밝혔다. 즉 이제는 합법이라야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이 이날 ‘장황하게’ 이같이 그의 ‘노사관계론’을 설명한 것은 이 마지막 메시지에 있었다. ‘지금과 같은 변화들을 계속 이어가고 정착시켜 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저는 노동부장관에서 물러나지만 노동부가 있는 한 기존의 정책이 지켜질 것이라고 본다”며 “사용자는 더이상 공권력에 기대하지 말고 대화채널을 만들고 투명경영을 해야 하며 노조는 기업여건을 무시하고 불신 때문에 파업이나 투쟁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마지막 떠나는 길에 신신당부를 했다.


양대노총 전현직 위원장 참석 ‘이색’

이와 함께 이날 경총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는 ‘이색적인’ 자리가 마련됐다. 장명국 내일신문 사장이 사회를 보고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릴레이 대담이 이뤄진 것이다.

이날 자리는 새해 들어 노사관계 로드맵 입법,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복수노조 허용을 둘러싼 혼란 등을 앞두고 노동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노조 죽으라는 소리”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국노총에 대한 이른바 ‘시각교정’을 요청했다. 이 위원장은 “40년간 총칼 앞에서 노동뿐만 아니라 정치, 사법,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던 암흑기에서 한국노총만 태생적 어용이란 게 적절치 않다”며 “다만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 한국노총의 책임도 있지만 지난 60년간 경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주체적 역할을 맡아 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 위원장은 “정치는 민주화되고 이데올로기 논쟁은 사라졌다”며 “순수 노동운동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하는 데 ‘노사관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노사정 교섭이나 노정 교섭만 있었지 노사 자율교섭은 없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도 2번의 대의원대회 무산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장에 나섰고 비정규협상 시에도 한국노총이 책임있는 주체로서 수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며 “앞으로 국가의 미래를 노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위원장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해 “전세계적으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명시하는 법을 갖고 있는 곳은 없다”며 오히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부분을 정부가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02년 금융 노사는 각 은행에서 20억원씩 내놔 2006년까지 80억원의 기금을 만들고 이자 4억원으로 7명의 인건비를 주고 나머지 3명의 인건비는 노조에서 부담하겠다는 합의를 한 바 있다”며 “그런데 정부에서 유권해석을 통해 기금에서 70%의 전임자 임금지급을 하는 것은 불법으로 처벌받는다고 난리쳐서 안 됐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상급단체는 다 파견노동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렇게 되면 다 죽으라고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노사 자율대화도 거부하고 이제 와서 법을 강행처리하겠다고 것은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정부를 강력 비난했다.

양대노총 통합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이 위원장은 “두 조직의 통합은 노동자 전체의 이익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내부에 아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한국노총엔 ‘극우’가 있고 민주노총엔 ‘극좌’가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으면 통합하기 어렵다”며 “통합이란 게 어느날 갑자기 오는 것은 아니며 계속 통합에 대한 논란이 있다면 쌀이 끓다보면 밥이 되듯 통합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에둘러 설명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솔직히 정부에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정부에 실망스러웠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이다. 이날 이 전 위원장은 ‘자유인’으로 돌아간 만큼 좀 편하게 이야기 하겠다며 이같은 솔직한 이야기를 내놨다.

이 전 위원장은 “앞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극좌’라고 표현했는데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본다면 좌에서 우로 펼쳐져있고 저도 왼쪽에 있는 사람으로 이것이 제 역할로서 당당하다”며 “그런 관점에서 함께 이야기 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넌 아니다’라고 배제하고 이야기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운을 띄웠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에 대해 좀더 인내하고 참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은 “정부는 이수호가 별 의지도 없어 보이고 조직 내에서 끌려다닌다고 보며 먼저 포기했고 그러자 노사정대표자틀도 상당히 문제가 됐다”면서 “정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참아주고 저를 믿어줬더라면 상당히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이수호 전 위원장은 빨리 민주노총이 안정을 찾기를 바랐다. 이 전 위원장은 “제가 2년 전 어렵게 민주노총 위원장에 나선 이유는 두 가지였다”며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시켜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 논쟁 속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솔직한 소통의 이해가 있었으면 했던 것과 우리 조직 내 통합이 그 이유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마지막 남은 1년의 임기 동안 이런 것들을 잘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감당할 수 없는 내부 비리가 터지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올해 노사관계가 전임자 임금지급, 복수노조 허용, 노사관계 로드맵, 비정규직법 등으로 지혜롭게 빨리 처리해가지 않으면 수렁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올 것”이라고 조직안정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수호 전 위원장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논의에 대한 경영자들의 궁금증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성숙한 단계로 간다면 교섭 방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최소한 단일화하되 조합원 비율로 하나의 교섭팀을 만들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며, 다만 이는 민주노총 안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어떻게 전직 인물들이 다 모였나
지난 10일 경총 최고영경영자 연찬회는 확실히 ‘이색적’이었다. 공교롭게도 노와 정의 옛 대표들이 모인 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랬다.


당초 경총은 관행대로 현직을 불러 올해의 노사관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장관 교체가 10일을 기점으로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9일까지도 인사청문회 뒤 대략 13일께 이취임식을 할 것이라고 알려진 상황에서, 김대환 당시 장관이 일단 경총 연찬회에 참석키로 한 것. 그러나 10일 이상수 장관 임명이 있으면서 김 전 장관은 이임식을 마치자마자 바로 경총 연찬회 장으로 달려와 야인으로서 첫 강연을 하게 된 셈이 됐다.


이와 함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등장도 눈에 띄었는데 이 역시 10일 민주노총 상황이 비대위 체제로 경총 연찬회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수영 경총 회장이 이수호 전 위원장에게 ‘옛 인연’으로 직접 부탁을 청해온 것. 이수영 회장과 이수호 전 위원장은 지난 2년간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함께 해오는 등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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