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황우석 논란과 관련된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대해 정면돌파론과 신중론이 때론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있다.” 윤영상 민주노동당 정책위 부위원장의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힌 것은 2004년 4·15 총선이다. 당시 입장은 ‘절대 불가’였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발표한 17대 총선공약집을 보면 “배아복제행위·이종간 교잡행위의 예외 없는 금지조항 마련”과 “인간배아생성은 불임 극복을 위한 의료행위로 단일화” 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공약에는 “황우석 교수팀이 질병치료란 명분으로 한 개의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242개의 여성난자를 이용했다”면서 “많은 난자를 필요로 하는 배아복제 연구는 여성을 난자 공급처로 전락시키고”, “생명윤리에 심각한 문제를 가하는 것”이며, “(수정란을 생명으로 볼지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의 시험 진행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2004년 11월15일 황우석 박사의 연구와 관련한 첫 논평이 나오는데, 당시 논평의 핵심은 ‘사회적 공론화 없는 지원 예산은 삭감해야 한다’는 것었이다. 당시에도 “체세포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 및 이종간 장기이식연구 등은 심각한 생명윤리 논란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에 민주노동당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예산 지원의 문제, 연구의 투명성 문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문제 등을 지적하며, 끊임없이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러나 최근 MBC 피디수첩의 ‘취재윤리’ 문제가 불거지고, 비난이 집중되자, 정면돌파론보단 신중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노현기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는 여론의 눈치를 더욱 보고 있다는 흔적이 보인다.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원회가 8일 발표한 노현기 부위원장의 논란과 관련한 ‘입장’ 글을 보면 “민주노동당은 줄기세포 연구가 더 튼튼한 사회적 지지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권영길 임시대표 역시 지난 8일 “그동안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가 보여준 빛나는 성과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고 말했다. 물론 뒤이어 “투명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단 연구 자체는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당직자들에게 ‘황우석 문제’에 대한 “개별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신중하라”는 사실상의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당내 논쟁은 이제 시작으로 보인다. 총선 당시 생명윤리 공약의 실무를 맡았던 환경위원회가 먼저 반발하고 나섰다. 환경위원회는 14일 입장 발표를 통해 “권영길 대표가 ‘황우석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보여준 빛나는 성과에 대해 당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고 했는데 이는 총선 당시 당의 생명윤리 공약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환경위는 “당원 혹은 당직자는 당 강령과 당론에 위배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활동할 권리가 있다”면서 “이번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노현기 당원의 글 역시 표현이 거친 부분이 있었지만 당론에 반한 부분은 없었다”고 밝혔다. 환경위 관계자는 “환경위원들이 다음주 초 권영길 임시대표를 ‘항의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평지역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3일 부평구위원회 운영위원회에서는 몇몇 운영위원이 △부평구위원회 입장의 당론 위배 문제 △노현기 부위원장에게 해명을 요구한 것 등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다.

사퇴하라는 말은 안했지만…
민주노동당은 단 한번도 노현기 부위원장에게 ‘사퇴’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 임시대표와 대변인, 노 부위원장이 모두 인정하는 바다. 그럼, 당과 노현기 부위원장이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6일 노현기 부위원장의 글이 보도된 이후, 민주노동당 대변인과 부평구위원장, 부평구위원회 사무국장이 지속적으로 노 부위원장의 해명글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노 부위원장은 “사과성 해명글을 요구받았고, 그것을 안 쓰는 길은 사퇴하는 길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저녁, 박용진 대변인과 노현기 부위원장이 나눈 대화를 노 부위원장의 ‘증언’에 따라 재구성하면 이렇다.


대변인 : “한재각 연구원 건이나, 송태경 국장 건까지도 감당이 됐는데, 선배(노 부위원장) 글은 감당하기 어렵다. 정대협과, 난자기증재단에서 항의와 논평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밤 안으로 (해명하는) 글을 써 달라. 순수한 마음으로 난자기증을 한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으로서는 해명을 해야 할 문제다. 정대협도 마찬가지다.”


노현기 : “정대협이 항의 왜 하냐. 정신대에 대한 비유가 아니다. 선동을 비판한 글이다.”


대변인 : “게시판 여기저기 올릴 필요도 없다. 짧게라도, ‘본의 아니게 순순하게 난치병 치료를 위해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과 정신대 할머니께 죄송하다는 글을 당원게시판에라도 올려달라. 그 글을 토대로 당에서 논평을 내겠다.”


노현기 : “난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변인 : “앞서 이야기 한 것은 대표의 뜻이다. 내 개인 의견으로는 선배도 정치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폭탄’은 피하고 가자.”


노현기 : “난 그런 정치하기 싫다.”


이 통화가 끝난 후, 노 부위원장은 “당직 내놓는 것이 수습책이라면 사퇴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곧 권영길 임시대표와 통화에서 노 부위원장은 “해명서는 쓸 수 없다. 글을 쓰면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나는 무릎을 꿇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받아치는 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공격도 파시즘이다. 제가 당직을 내놓겠다. 그것으로 수습해달라.”는 요지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노 부위원장에 이 말에 대해 권영길 대표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고, 통과는 끊어졌다.


부평구지역위원회의 경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상욱 부평구위원장은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비유로 인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노현기 부위원장에게 해명글을 요구했다. 또한 지역위 사무국장은 노 부위원장이 사퇴를 결심한 이후에도, “사퇴하는 글을 통해서라도 해명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현기 부위원장은 “해명을 할 수 없으니, 지역위가 사퇴의 이유를 뭐라고 설명하든 개의치 않겠다”고 했다.


그 이후 부평구위원회에서 나온 ‘입장’ 글에는 2004년 총선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이 발표됐다. 정중한 사과와 함께.

강정구와 노현기
6·25 전쟁을 “북한 지도부에 의한 통일 전쟁”으로 비유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는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통일전쟁’ 비유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있었으며,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반발해 검찰총장이 사직하기도 했다.


또한 10·26 재보선, 울산북구 재선거에서 당시 윤두환 한나라당 후보는 정갑득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강정구 교수의 비유’에 대한 입장을 물으며 공격을 했다. 한 표가 아쉬운 선거국면에서도 민주노동당은 흔들리지 않고 받아쳤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말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한다”는 표현에 대해 김혜경 대표는 ‘호들갑을 떨었다’는 표현까지 썼다. 단 한 차례도 ‘부적절한 비유’를 썼다는 식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민주노동당은 “학문적 결과는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며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입장은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오랜 기간 학문을 탐구해 온 학자의 입장은 ‘옹호’ 해야 하지만, 오랜 기간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해 온 당직자의 견해는 (논란과 오독의 여지가 있을 경우) ‘해명’해야 할 대상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민주노동당은 무슨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노현기 부위원장의 글을 두고 민주노동당이 크게 신경 썼던 ‘집단’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난자기증지원재단, 네티즌 이렇게 세 곳이다.


윤미향 정대협 사무총장의 말이다. “우리가 항의할 글은 아니었다. 비유가 적절치 못했고, 파시즘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굳이 종군위안부 문제로 비유를 들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 점에선 유감이다.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하지 않는다’는 항의전화를 많이 받으면서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언급이 아니었던 만큼 항의나 비판 논평을 쓸 계획은 없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굳이 항의할 글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난자기증재단의 경우는 문제가 단순하다. 기증재단에서 최근 공지한 글의 일부다. “용기 있고 자애로운 기증 의사 하나 하나가 황우석 박사님께 큰 힘과 버팀목 이 되었으며, 장애와 희귀, 난치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께는 밤하늘의 등대와 같은 삶의 희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결국, 당이 지속적으로 함께 사업을 해온 정대협과는 마찰의 여지가 적었고, 황우석 박사의 ‘버팀목’을 자처하는 단체와 ‘문제제기에 힘써온’ 민주노동당의 마찰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지침에 마치 검찰조직이 붕괴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민주노동당 논평, 11월9일) 노현기 전 부위원장의 글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을 보며, 이 문제의식을 ‘황우석 신드롬’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당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면 어떨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