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가 뉴스가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황 교수가 뉴스가 된 속도만큼 급속하게, 그가 만들어낸 뉴스의 양만큼 많은 또다른 문제들이 떠오르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황 교수의 실험을 판단할 정보와 전문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황 교수는 국민의 영웅으로 부각됐다. 그리고 황 교수가 몇가지 도전에 직면한 지금, 국민들은 '황 교수 지키기'에 나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은 몰매를 맞고 있다. 이른바 '파시즘'에 대한 우려다. <매일노동뉴스>가 황우석 '신드롬'을 진단하는 좌담회와 함께 ‘황우석 신드롬 이면의 파시즘’이라는 기고글 게재 이후의 경과 보고, 이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방식, 황우석 '신드롬'을 진단하는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6일 오후1시~5시…빗발치는, 그리고 폭력적인 네티즌의 댓글

이날 오후 3시께 매일노동뉴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필자가 사회과학 공부하셨던 분 맞습니까? 글이 이상합니다. 난자기증을 위해 딸을 데리고 나온 어머니와 친일 시인 노천명을 비유한 것은 지나친 비약 아닌가요? 딸도 자발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닌가요?”

노현기 민주노동당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의 ‘황우석 신드롬 이면의 파시즘’ 원고가 매일노동뉴스 인터넷판인 <레이버투데이>에 올라간 지 2시간 뒤의 첫 항의전화였다. 이 원고는 매일노동뉴스 지면 고정란인 <여성과 노동>에 6일자로 먼저 실린 원고이다. 편집국은 이 원고가 '정신대'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지만, 글의 맥락상 노 부위원장의 글이 정신대로 상처받은 분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글이 이날 오후 1시께 인터넷 <레이버투데이>에도 올라갔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도 뉴스제공이 됐다. 그래도 이 항의자는 점잖은 편이었다. 적어도 인터넷 댓글에 올라오는 노 부위원장에 대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은 잘못됐다는 시인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분 역시 소수였다. 원고가 인터넷에 올라가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쏟아지는 ‘댓글’은 한마디로 ‘광풍’이었다. 댓글의 횟수가 올라갈수록 전화의 횟수도 늘어갔다. 댓글의 수준은 점차 끝가는 데를 모르는 듯했다. 댓글의 항의수준은 필자의 ‘얼굴’에 대한 인신공격이 주를 이뤘다. 이미 인터넷 여기저기 사진이 퍼다 날라지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인신공격들이 이어졌다. 게다가 이미 노 부위원장의 개인 휴대폰 번호와 사무실 번호가 익명의 네티즌에 의해 네이버, 레이버투데이 등의 댓글을 통해 공개됐다. 개인정보 보호같은 원칙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노아무개 휴대폰 번호는 0××-×××××××입니다. 모두 항의전화 합시다!”

이는 즉각 실행으로 옮겨졌다. 그날 노 부위원장의 휴대폰과 민주노동당 중앙당, 인천시당, 부평구위원회 전화가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께 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개인적으로 글을 내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이 곤란한 것 같습니다. 젊은 상근자들이 전화 때문에 아무런 일을 못한다고 하더군요. 당쪽에서는 제게 매일노동뉴스에서 글을 삭제하라고 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판단해 주세요.”

매일노동뉴스 편집국은 고민했다. 이미 필자에 대한 공격수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 필자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설사 칼럼의 내용이 매체의 편집방향과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필자에 대한 보호는 외면해선 안 되는 게 원칙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레이버투데이는 이런 댓글로 속칭 '히트수'가 올라가는 원치 않았다.

6일 오후 5시 이후…매일노동뉴스 원고를 인터넷에서 내리다

네티즌의 격렬한 항의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뉴스 제공이 되면서 심화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매일노동뉴스는 이날 오후5시께 네이버쪽에 노 부위원장 해당 원고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이 정도면 당이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도 했다. 하지만 네이버 삭제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오후 5시30분께 민주노동당 중앙당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노 부위원장이 원고삭제를 요청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몇번이고 다그치는 낌새가 이상했다. 당으로서도 이번 사건을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는 게 충분히 느껴졌지만, 노 부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삭제요청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왜 중요한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도 필자를 부담스러워하고 보호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매일노동뉴스 편집국은 다시 신중하게 논의했다. 글을 삭제하는 것에 누가 찬성하겠는가. 하지만 삭제하지 않는 한 당도 필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차별적인 광풍으로부터 필자 보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글을 내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듯이. 네티즌으로부터도 당으로부터도 필자가 완전히 고립무원의 상태가 돼선 안 된다.

매일노동뉴스 인터넷판 <레이버투데이>에서도 원고를 내린 것은 이날 오후 6시께였다. 원고를 온라인에 올린 지 4시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글을 삭제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란 것은 곧 알 수 있었다. 일간지 인터넷판이 ‘난자기증자가 위안부?’란 선정적 제목으로 이 원고를 재료로 이미 새로운 논란이 새로운 형태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6일 오후부터 언론, 자발적 ‘진화 과정’에 돌입

6일 오후 5시25분께 조선닷컴에서 제일 먼저 관련 기사가 등장했다. “난자기증 여성은 일제 위안부라고?” 조선닷컴은 이 기사에서 “여성들이 황우석 교수팀에 난자를 제공하는 것을 일제 시대 ‘군대 성노예’인 위안부에 비유한 칼럼이 인터넷 매체에 게재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머릿기사를 뽑았다.

다음날, 동아일보가 비슷한 취지의 '난자기증 여성 행렬 정신대 선동과 같아'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난자 기증 여성들을 정신대에 빗댄 글을 인터넷에 올려 누리꾼의 비난을 받자 이를 삭제했다”는 리드로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한국일보. 역시 '난자기증 여성들은 일제시대 위안부?'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진위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관계자가 황 교수팀에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에 비유하는 글을 한 언론에 기고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는 리드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쯤 되면 당초 원고의 의미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노 부위원장이 ‘난자기증 여성을 일제 위안부’라고 표현했다는 비틀어진 사실만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타 언론의 매일노동뉴스(레이버투데이)가 글을 삭제한 배경에 대한 취재도 시작됐다. 7일 오전부터 매일노동뉴스 사무실 전화는 불이 났다.

“삭제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누가 삭제를 요청을 한 것인가요? 필자입니까? 민주노동당입니까? 아니면 자체적인 판단입니까?”

이에 대해 매일노동뉴스 편집국은 일단 ‘노코멘트’를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의 한 마디가 어떻게 왜곡돼 증폭될 것인지 우려되고, 이것이 필자에게 더 가혹한 공격의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7일, ‘노현기’ 검색순위 네이버 1위를 달리다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의 보도 흐름은 점차 민주노동당 쪽으로 향해갔다. 세계일보는 7일 오후 3시27분 '민노당 간부, 난자기증 여성들 ‘위안부’에 비유 파문'이란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기사 내용에선 “누리꾼들은 ‘노현기를 출당시키지 않으면 그 어떤 선거에서든 민노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 차원의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썼다.

이같은 언론의 흐름은 더욱 노골화 돼 갔다. 이미 “여성을 닭에 비유했다”며 언론의 비난을 받았던 송태경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을 비롯해 진중권씨의 씨네21 칼럼에서 ‘조국을 위한 난자’라는 제목의 글도 덩달아 소개되기 시작했다. 동아닷컴은 역시 7일 오후 3시43분 기사를 통해 “민노당 당원들 역시 ‘전국 6만 당원들은 노씨의 생각 없고 어리석은 발언에 분개하고 있다’며 ‘멍청한 발언을 한 노씨는 공식 사과하고 탈당하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언론보도의 방향은 민주노동당을 압박하면서 필자의 출당이란 구체적인 요구를 전달하는 데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7일엔 언론의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포탈싸이트 1위를 달린다는 ‘네이버’에서 ‘노현기’는 검색순위 부동의 1위를 달렸다. 7일 오후부터 마침내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의 첫 코멘트가 나갔다. 동아닷컴은 “박용진 대변인은 ‘현재 중앙당 차원의 공식 입장은 없다. 지역 당직자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며 ‘이번 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죄송스럽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8일 오전, 노 부위원장, ‘당직사퇴서’를 내다

7일 저녁이 되자 난자기증재단의 공식 성명서가 나왔다. 난자기증재단은 “줄기세포 연구에 난자를 기증하기로 한 것은 남을 위한 인간적 사랑에 기초한 행동”이라며 “이런 이들에게 ‘성노예’란 비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주장했다. 난자기증재단은 ‘연구, 치료 목적의 난자 기증을 지원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한다. 즉각 인터넷에서 언론 보도로 인용되기 시작됐다.

다음날인 8일 오전 노현기 부위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당직사퇴서를 내기로 했어요. 당에서는 수습이 잘 안된다면서 사과성 해명서를 쓰라고 하는데 전 이것은 ‘사과문’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부했고요. 당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당직사퇴서를 내기로 했습니다.”

이날 민주노동당은 공식적 입장을 내놨다. 당은 비대위 12차 회의에서 권영길 대표 모두발언을 소개하면서 “당원들이 당론 이외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말할 수 있다”며 “하지만 당직을 맡고 있는 일부 당원들이 적절하지 못한 비유와 방식을 통해 개인 의견을 밝히고 그것이 당의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당직자 관련 발언을 통해 “노현기 당원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중앙당의 노력을 받아들여 오늘 오전 부평구위원회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공식의사를 밝히고 사퇴했다”며 “노현기 당원은 ‘표현의 문제로 진의가 왜곡돼 안타깝다’며 물의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날 노현기 부위원장의 소속인 부평구위원회는 공식입장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아껴주시는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운을 뗀 뒤 “노 부위원장의 글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난자기증에 나섰던 분들, 난치병치유에 절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국민 여러분께 가슴의 상처와 절망감을 줄 수 있는 잘못된 표현이었기에 사과드리는 바입니다”라고 밝혔다.

사흘째 되는 날 ‘사과문’ 쓰기를 거부한 노현기 부위원장은 당직을 사퇴했고 마침내 민주노동당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언론과 네티즌의 관심은 끝났다. 언론과 네티즌이 민주노동당에 달려든 목적이 달성됐다는 뜻일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