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지난 1년 5개월의 정책위의장 생활 중에서 가장 잊기 힘든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2차 투표에서 당선된 바로 그 날, 2005년 6월 17일 벽제(!)에서의 하루 밤이라고 답할 것이다. 당선 축하 전화 때문에 잠시 행복했던 나는 바로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내가 엄청난 곤경에 빠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날 이후 나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당선 첫날부터 혼자였다

최고위원회는 결선까지 간 정책위의장 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려 예산 편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좀더 편하게 나누기 위해서 벽제 어느 민박집에서 수련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국 국회의원 보좌관과 정책연구원들의 급여 문제, 지구당 사무국장들의 활동비 지급 문제 등이 쟁점이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였다. 너무나 고집스럽게 혼자서 자기주장을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지지로 탄생한 만큼 국회로부터 나오는 일체의 수입은 의정활동에만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고보조금의 절반은 ‘법대로’ 정책연구소와 광역시도당과 여성정치발전에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지지자)이 주신 것과 당원이 주신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를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내는 특별당비는 40명의 정책연구원들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만큼만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보좌관들과 정책연구원들에게 임용할 당시에 약속하였던 수준의 급여를 지급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중앙당 및 시도당 당직자들과 지구당 사무국장들의 급여 또는 활동비 문제였다.

물론 중앙당과 시도당과 지구당에서 오랜 동안 고생한 사람들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야 다 마찬가지였다. 그 방법은 여러모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총선 전 중앙위원회에서 전임 집행부가 “원내진출하면 지구당 사무국장들에게도 활동비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 집행부의 약속을 지킬지 말지를 최고위원회는 결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의 후유증은 컸다.

확대간부회의 결정, 최고위가 뒤집어

1년 5개월의 최고위원 생활 가운데 두 번째로 잊을 수 없는 일은 2004년 7월 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충남도지부 이용길 지부장이 제안하고 다수의 시도지부장들이 찬성하여 신 정당법에 따라 지역 조직을 국회의원 선거구별 지구당 체제에서 시군구당(지역위원회) 체제로 개편하기로 결의하고 뒷풀이에서 축배까지 들어놓고서 7월 12일 최고위원회에서 이를 뒤집어버린 일이다.

7월 15일에 열린 제4기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는 충남도당이 이 안건을 직접 발의했으나 논란 끝에 안건이 반려되고 말았다. 만약 이날 중앙위원회를 통과했더라면 2004년 7월 25일의 임시 당 대회에서 당헌이 개정되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2005년 2월 27일의 정기 당 대회에 가서야 비로소 당헌이 개정되었으니 7개월이 늦어진 것이다.

단순히 늦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당력(黨力)의 낭비를 초래했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전국 순회토론을 하고 심지어 지구당, 분회까지 논란을 벌였지만 그 문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문제였으며 그 토론은 아무런 정치적 의미가 없는 ‘우리들만의 토론’이었고, 그를 통해 무언가 얻는 바가 없는 지극히 소모적인 논쟁이었을 뿐이다.

이런 문제야말로 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판단을 내리고, 설득을 하고, 추진을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정치 지도자는 큰 판단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그와 함께 하는 무리가, 당이 편하다. 그런데 그리 어렵지도 않은, 결론이 뻔한 문제를 두고서도 판단하지 않고 자꾸 미루기만 해서는 도대체 집행부는 왜 두는 것인가? 이렇게 당력과 자원(資源)을 낭비해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릴 수 없다는 생각, 다른 정당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는 안타까움에 나의 가슴은 타들어 갔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지난 총선 직전에 개정된 정당법, ‘신(新) 정당법’에 대한 판단의 문제였다. 전 집행부는 ‘신 정당법에 대한 강력한 반대’라는 유산을 물러주었다. 그러나 나는 신 정당법에 대한 반대는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원론적, 법리적 차원의 문제 제기는 하면서도 크게는 ‘찬성’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구당 폐지’는 전 국민에게 개혁 입법으로 지지를 받고 있었고 우리 당에게도 불리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갑옷은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 당의 역량 조건으로는 광역시도당을 중심으로 인력과 재정을 집중하여 ‘지방 정치’를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그리고 시군구 단위의 지역위원회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를 한다든지 언론을 상대한다든지, 다른 단체들과 ‘대외협력사업’을 한다든지 하는 짐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생활 정치’를 하고 대중 조직 사업을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 정당법에 따라) 지역위원회는 공식 당부(黨府)가 아닌 당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그에 복무하는 상근자, 또는 반상근자는 ‘당료’가 아닌 자원 ‘활동가’로 개념 정리가 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상근자나 사무실을 두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지역의 사정과 역량 조건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지 당규에 강제할 일은 아니라고 나는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들을 나는 ‘광역시도당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광역시도당주의’로 가면 재정의 문제로 돌아가서도 ‘지속가능한 모델’이 나올 수 있다. 감당하기 힘든 하드웨어를 벗어던지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중세의 무사들은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 했다고 하던가? 너무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소프트웨어에 더 많은 재정이나 자원을 쓰자는 것이다. 중앙당도 인원을 최대한 줄이고 지역위원회도 그럴듯한 형식과 외양을 갖추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지 말자는 것이다.

당세가 약한 시도당을 위해서 중앙당과 시도당과의 당비 배분 비율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시당이나 경기도당 같은 거대 시도당에 대해서는 현재의 3:7 비율을 그대로 두되, 경남도당, 울산시당, 인천시당과는 2:8의 비율로, 나머지 시도당들과는 1:9의 비율로 나누어서 중앙당이나 시도당들이나 각기 그 한도 안에서 인력을 쓰고 사업을 하는 것이다. ‘당원이 내는 당비로 운영되는’ 우리 당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물론 지역위원회의 사정이 어렵다. 그러나 지역위원회의 생명력은 당료나 활동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원의 자발성으로부터 나온다. 당원이 100명 내외인 농촌 지역위원회가 당원의 자발적 참여의 의지만 있다면 (자기 생업을 가진 사무국장의) 사랑방에 컴퓨터 한 대와 전화기 한 대를 두고 활동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더 규모가 큰 도시의 지역위원회도 당원이 운영하는 가게 한쪽 편에 책상 하나, 컴퓨터 한 대 두고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

적도 잠재적 우군도 우린 모른다

지역위원회의 활동 내용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하고 혁신해야 한다. 지역위원회 간부들과 열성당원들은 온갖 위원회를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흔히 우리 당의 지역 조직들은 지역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 바로 우리들만의 세계에 ‘열심히’ 갇혀 있는 것이다. 지역위원회의 사무국장은 다른 당 당원협의회 사무국장을 모른다. 그들의 행태와 활동 방식을 알지 못한다. 동장, 면장들과 사회복지사들의 얼굴도 모른다. 적을 알지 못하고 잠재적 우군을 모르고, 그들이 뒤섞여 살면서 조직해나가고 있는 대중의 행태와 사고방식을 잘 모른다. 

민주노동당이 가진 소중한 당력과 자원은 계급투쟁과 역사의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집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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