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보지 않고 '자본의 운동'을 자동차노조를 보지 않고 '노동의 운동'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둘은 외줄타기의 아슬아슬함처럼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한 안간힘의 극단에 서 있다. 강한 것은 단기적 방어논리뿐, 그 강한 것의 귀결은 담합적 노사관계, 가중되는 고용불안이다. 현대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총 9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편집자주>

연재순서
① 모든 길은 '고용불안'으로 통한다

③ 해외진출, '무대응'에서 '방어전략'으로

⑤ <현장르뽀> 만만디 중국, 생산속도 상상초월
⑦ 있을 때 많이 벌자…'시간'의 노예 되다
⑨ 방어적인 너무나 소극적인
② 세계는 넓고, 공장 지을 곳은 많다
④ <현장르뽀> 쌍트로, 인도 소와 한 도로 달리다
⑥ 모듈, 현대모비스의 야망
⑧ 숙련, 고용가능성 내가 지킨다?




연간 1조8천억원 순수익을 내면서 매년 9만원가량 임금인상을 하고, 단체협약상 ‘만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돼 있는 현대자동차 조합원들. 남부러울 것 없는 이들에게도 큰 걱정꺼리가 있었으니, 바로 ‘고용불안’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해고위협이 와도 ‘회사보다 강한(?)’ 노조가 구제해 줄 것이고, 같은 공장 안에서 함께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에 비해 임금도 2배 가량 많은데, 뭔가의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이 쉬이 납득이 되지 않지만 현실이 그렇다. 물량이 넘쳐 잔업 특근을 밥 먹듯이 하는 조합원들도, 물량이 없어 한 달 가까이 휴가를 가는 조합원들도, 한결 같이 ‘고용불안’을 얘기한다.

“마치 어릴 적 끔찍한 기억처럼, 유전자에 각인돼 있을 정도다.” 울산에서 활동 중인 한 노동운동가는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이 왜 그렇게 ‘고용불안’을 호소하는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해주었다. 98년 희망퇴직, 정리해고의 상처가 깊게 파여 있다는 뜻이었다.

‘잘 나가는’ 회사에서 ‘짤린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없는 조합원들에게 회사가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밝힌 것은, 또한 1만여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회사를 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유전자에 각인될 만큼의 큰 상처였다. 마치 주홍글씨처럼, 조합원들은 ‘고용불안’을 평생 가슴에 새겼다.


10명 중 7명, 고용불안 ‘증가’했다

그 상처의 크기는 이렇게 확인된다. 노조 설립 이듬해인 88년, 노조의 앞으로 과제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고용안정’이라고 답한 사람은 1.6%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올 2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04년 한 해 동안 고용불안이 증가(매우 32.9%, 약간 36.1%)했다고 답한 비율이 69%나 됐다. 조합원 10명 중 7명꼴로 고용불안이 가중됐다고 호소하는 셈이다. 감소(약간 2.7%, 매우 0.5%)했다는 답변은 3.2%밖에 되지 않았다.

98년 악몽이 지나간 지 벌써 7년인 데다, 2000년 완전고용보장 합의서까지 마련했는데도 조합원들은 아직, 아니 여전히 고용불안을 호소한다.

본격적인 임단협을 앞두고 실시한 지난 4월 설문조사에서도 조합원들의 그런 우려는 잘 드러난다. 단체협상에서 집중적으로 요구, 관철해야 할 사항 1순위로 ‘해외공장, 외주화, 모듈화 등 회사 측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으로 고용불안 해소’(59.7%, 중복응답)를 꼽았다.

이미 단협에는 2003년 수준 생산물량(180만대)을 유지하면서 해외공장 건설과 운영을 이유로 일방적인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돼 있고, 신기술 도입과 신차종 개발 등으로 인한 인력 전환배치는 노사공동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토록 돼 있는데도 말이다.

이미 96년에 체결한 완전고용보장 합의서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봤던 조합원들은 아무리 ‘문서’로 확약을 해도 올해 또다른 ‘고용불안 해소 확약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꽉 차 있었다.

이 불안의 근저에는 ‘자산을 팔아서라도 고용안정을 보장하겠다’(오쿠다 히로시 회장)는 도요타와 너무도 대별되는 MK(정몽구 회장)식 인사·노무관리에 대한 불신이 크게 깔려있다. 이와 함께 제도적 보장을 해도 그 자체가 시장의 힘 앞에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 통합, 모듈화 및 자동화 등 기술혁신 △내수침체 등 경기변동 △부품 해외조달 확대(역수입) △해외생산의 확대 등 매년 시장변화에 대응하는 고용보장을 약속받으면서도 그 불안심리를 잠재우지 못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또한 알고 있다. 노조 역시 ‘영원한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전환배치도, 물량감소도, 임금감소도…다 ‘고용불안’

노조 박성식 사무국장은 “98년의 충격이 워낙 크게 남아 있는 데다 해외공장,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불안, 모듈화·자동화에 따른 내 업무 변화, 전환배치, 물량감소 이 모든 것을 ‘고용불안’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물량이 늘어날수록 공장을 새로 짓고 설비투자를 했기 때문에 그 늘어난 일자리 가운데 ‘덜 힘든’ 공정을 찾아가고 ‘힘든’ 일에는 비정규직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하지만 이제 구조조정의 대상이 누구일지 모른다는 사실은 ‘모두에 대한 고용불안’을 야기한다. 이는 효율적인 작업조직 재편과 상관없는 ‘현재 있는 자리에서 고용보장’ 요구로, 여유인력 발생 시 비정규직 우선 해고 인정으로 이어진다.

이미 현대차 공장은 180만대 생산능력을 갖출 만큼 포화 상태에 왔다. 해외공장도 벌써 4곳에나 만들어졌으니 조합원들도 국내에는 더이상의 설비투자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자본의 합리화 전략에 따라 모듈화, 합리화, 자동화 등이 이뤄지고, 자연 맨아워(M/H·투입인원) 협상, 전환배치 등이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여유인원이 발생한다. 시장상황으로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는데, 조합원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진다. 예전에 '힘들다‘는 이유로 넘겼던 비정규직 자리에 다시 내가 차고 들어갈 수 없나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실제 5공장에서는 지난 5월 UPH(Unit Per Hour·시간당 생산량) 협상 최종 합의과정에서 49명의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처했다. 5공장 노사는 당시 협상에서 51라인(테라칸)을 3UPH 낮추는 대신 52라인(투싼)을 5UPH 높이기로 했다. 그러자 51라인에서 95명의 여유인력이 발생했다. 하지만 52라인으로 배치된 비정규직은 46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49명에 대해서는 “5공장 내 고용이 보장되도록 최대한 노력”키로 하는 데 그쳤다. 물론 그 뒤 이 49명은 울산공장 내 여유인력이 발생한 곳으로 고용승계가 됐긴 했지만 인원투입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정규직들의 ‘자기 보신주의’가 얼마나 팽배한지를 엿보게 한다.

임금에 대한 불안도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긴 마찬가지다. 4공장 사례를 보자.

지금까지는 만들어서 쌓아놓으면 판매부서에서 그만큼 팔아줬기 때문에 생산량, 즉 노동시간과 임금이 보장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밀어내도 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 수출 물량이 없는 4공장이 내수시장 침체와 함께 물량감소 상황을 맞았다. 그러면 방법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사용자 귀책사유에 따라 휴업수당(평균임금 70%)을 받으면서 쉬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4공장은 올해만도 3차례나 근 한달씩 휴가를 갔다.

이를 두고 엄교수 정책개발위원은 이렇게 설명해 준다. “5만대 판매를 예상하면 5만대를 만들면 되는데, 정취(8시간 노동)시간 이외에 잔업과 특근을 하니까 7만대를 만들게 된다. 잔업과 특근을 해야 그만큼의 수당을 받고 생활수준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취만 해서 5만대 만드느니 차라리 라인 끊고 휴가 갔다가 생산물량이 모자란다고 하면 그때 다시 잔업 특근해서 물량 맞추는 방식이다. 이걸 조합원들은 고용불안이라고 한다.”


노조와 활동가, 조합원들의 삼박자…그리고 회사의 통제력

반일효 정책개발위원은 “다원화된 조건이 고용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왔다. 고용불안이 뭐냐고 물으면 다양하다. 특근 없는 것, 잔업 끊어진 것, 임금 줄어드는 것, 배치전환 한다고 술렁술렁하는 것, 그 범주 폭이 넓어졌다. 이 직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만 아니라 물량, 시간, 임금에 대한 것까지 전부다 고용불안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노조가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터에 이미 일정한 소비수준에 올라간 조합원들은 부족해진 임금을 일을 더 해서 메우려고 하고, 내 부서에 물량이 차고 넘쳐도 휴가 가는 4공장에는 못 넘기겠다고 한다. 결국 부서 대의원들은 물량유지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게 되고 물량따오기 전선에 나서면서 ‘비즈니스 노조’의 출현까지도 우려케 한다.

그러는 동안 회사는 아주 편하고 효과적으로 통제를 하는 셈이다.

정책개발위 하부영 팀장의 분석은 이렇다. “결국 고용안정은 물량확보이고, 또 이는 주야 10-10(정취 8시간 + 잔업 2시간)에 최소 특근 2개 보장으로 이어진다. 조합원들이 고용과 전혀 관계없는 잔업과 특근을 말하는 건 ‘있을 때 벌자’는 심리가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 그게 활동가와 대의원 발목을 잡는다. 조합원들은 그걸 정확히 알면서 활동가와 노조를 흔드는 거고, 역으로 활동가와 노조는 고용보장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담보할 수도 없으면서 조합원들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부추기고 있다.” 한마디로 “고용불안이라고 흔들어서 같이 먹고 산다”는 말이다.

기업 ‘안’에선 답이 없다

기업단위 안에서만 문제를 풀려고 하다보니 더더욱 문제는 꼬이게 된다.

노조 박유기 정책개발위원은 “고용불안? 현대차에서 짤리면 다 죽는 줄 아는 거다. 자기 고용가능성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자기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58세 고용보장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건 기업단위 협약이기 때문에 (시장 변동에 따라) 기업이 무너지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업단위 자본의 고용능력에 기댄 고용유지 전략은, 늘 시장상황과 기업경영 상태에 공격을 받는다. 결국 귀결점은 기업 내 노동자들 간의 생존경쟁일 뿐이다. 숙련향상이나 국내 공장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안이나 기업을 넘어선 완성차-부품사 수평적 이동 가능성 등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돌고, 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일효 정책개발위원의 말은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지금 자본은 기업단위를 넘어 움직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기업 안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해외공장 생산은 이미 수출유발효과를 넘어 수출대체효과로 전환되고 있고, 부품구입까지도 글로벌소싱 단계까지 간 상황이다. 그런데도 기업 안에서 고용문제를 풀겠다고 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도 현대차 조합원들은 앞뒤 재지 않고 최소한 이것만은 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을 것이다. 10-10에 특근 2개. 얼마나 허무한가.

취업자 10명 중 1명, 자동차산업 종사…전후방 효과 커

또한 자동차산업은 자동차 제조, 판매정비, 생산자재, 운수/이용, 유류산업, 금융보험업까지 연관되는 전후방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다. 고용규모도 단연 으뜸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03년 기준 자동차산업 직·간접 고용인원은 153만6천명, 총취업자(1,472만9천명)의 10.4%를 점유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8가구 중 1가구가 자동차 산업과 관련돼 있는 셈이다.


자동차관련 생산업체 수도 3,601개사로 제조업의 3.2%, 기계공업의 8.53%를 차지하고 있고, 생산액도 74조9천억원으로 제조업의 11.1%, 기계공업의 34.9%를 점유하고 있다.


수출에서도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2004년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수출실적은 325억 달러로 우리나
공장별 차종 현황(05.11월 현재)
공장차명현UPH비고
1공장
3,349명
베르나52.0  
클릭26.0 
2공장
3,841명
투싼40.0 
싼타페24.0 
에쿠스4.5 
3공장
3,274명
아반떼XD52.0  
라비타32.0혼류생산
투스카니  
4공장
2,996명
트라제XG30.0혼류생산
스타렉스 
포터24.0혼류생산
리베로
5공장
2,886명
테라칸7.0‘08 단산
투싼37.0  
아산
2,635명
NF쏘나타63.0혼류생산
그랜져XG 
그랜져 
* 혼류생산은 한 라인에서 2개의 차종을 만든다는 뜻.
라 총 수출의 12.8%를 차지하고 있고, 무역수지 흑자액 295억 달러의 85%가 자동차 부분에서 달성될 정도로 외화를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산업이기도 하다. 조세액도 총세수의 17%인 24조원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현대차는 한국 완성차 수출 260억 달러 가운데 240억 달러를 벌어들여 한국 완성차 수출의 약 92%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발전속도는 놀랍다. 현대차가 70년대 자동차 고유모델(포니)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코웃음을 쳤다. 당시 GM 수석부사장인 H.W.Venge 는 “현대차가 고유모델을 만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져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성공했고, 70년대 4,300대에 불과했던 생산규모는 2004년 현재 167만대로, 400배가량 성장했다.


또한 세계적인 품질 조사기관인 J.D.Power가 현대차의 품질수준에 대해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 14개사 중 2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을 때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는 “Man bites dog(사람이 개를 물었다)”라 쓰면서,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경탄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70년대 1,900명이었다가 이제는 5만3천명으로 늘어난 현대차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 있었음은 물론이다.

통계로 보는 현대차 조합원들
울산·아산·전주공장과 남양연구소, 판매본부 등을 포함,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총 5만4,459명인데, 이 가운데 노조 가입대상이 아닌 자를 제외하고 90.9%인 4만2,576명이 노조원이다.


노조 교섭위원 자료집(2005년5월)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평균 연령 38.9세인 조합원들의 근속년수는 평균 13.8년이었다. 입사 당시 연령이 평균 25세인 셈이다.


3.6명의 부양가족을 거느린 조합원들의 월 임금은 기본급 평균 128만7천원(통상급 기준 155만3천원)에 연장·특근수당을 합한 평균은 253만4천원이었다. 여기에 상여금 700%, 연월차수당, 휴가비 등을 합하면 한 달에 총 360만원 가량을 받아가는 셈이다. 연봉 6천만원짜리 귀족노동자라는 세간의 비판은 근거 없는 ‘매도’인 셈이다.


그런데다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수준을 기록한다. 울산공장만 놓고 볼 때 생산직 노동자들은 2004년에는 연간 2,438시간을, 2003년에는 이보다 많은 2,525시간을 일했다.


2005년 OECD 고용전망(Employment Outlook)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피용자 연간 근로시간은 독일·프랑스 1,360시간, 미국 1,812시간인데 비해 한국은 최장 수준인 2,380시간이었다. 그런데 현대차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인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도 뛰어넘었다.


현대차 인원현황(2005.10월말 현재, 단위 : 명, %)
구분 종업원수가입대상수조합원수가입률
총계54,459 46,81742,57690.9
울산27,22325,38724,96898.3
전주3,1602,7042,66098.4
아산2,6352,4932,44498.0
남양(마북포함) 6,6764,0903,82093.4
판매(본사,해외포함)11,5319,1826,06166.0
정비3,2342,9612,62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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