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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최고 47℃까지 기온이 올라간다는 인도의 여름 그 한가운데 발을 디뎠다. 지난 4월, 싱가폴을 거쳐 장장 12시간을 날아 도착한 인도 제4의 도시 첸나이. 공항 밖은 밤 11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손님을 기다리는 줄 이은 오토릭샤(auto-rickshaw·소형 오토바이)들과 인도 전통의상 ‘사리’를 입은 여자들, 반바지에 맨발의 젊은이들로 북적였고, 간혹 터번을 쓴 시크교도들도 눈에 띠었다. 습하고 더운 날씨는 그렇잖아도 피곤한 여행객에게 약간 이국적인 끈적임과 불쾌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퀴퀴한 냄새를 안겨주었다. 아, 여기가 인도구나.
91년 경제자유화 발표 후 자동차 시장 개방
다음달 아침, 때아니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현대차 인도공장을 찾았다. 곳곳에 눈에 띠는 노동자들은 거의 흑인의 피부색과 비슷한 드라비다족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대모터스인디아(HMI) 마크가 찍힌 조끼나 티셔츠를 입은 정규직과 평상복을 입은 비정규직 간 차이가 뚜렷했다. 또한 적지 않은 노동자들은 맨발로 공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도 했는데, 순간 “아무리 비정규직이라도 신발조차 지급하지 않는 건 너무하다”는 말을 뱉자, 회사 관리자가 웃으며 “그건 작업화를 지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대차 공장이 위치한) 타밀라드주(州) 지역의 관습”이라고 설명해 준다.
국토면적이 330만㎢로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 크기를 자랑하는 인도는 인구만도 10억5천만에 달한다. 하지만 2002년 기준 자동차 총 등록대수는 5,900만대에 불과하고 그나마 승용차나 RV차량은 760만대로 13% 수준이다. 자동차의 대부분(3,500만대)은 오토릭샤와 같은 이륜차이고 승용차는 2002년에서야 1,000만대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1,400만대보다 적다. 그러다보니 인구 1,000명당 승용차 보유 대수도 6대로 일본(420대)과 한국(186대)에 비해 현저히 낮다.
아직까지 인도에서 승용차는 일부 부유층만 탈 수 있는 사치재로 분류되고 있고, 도로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또한 자동차산업은 1930년대 지엠과 포드의 CKD 조립(Completely Knock-Down : 최종 조립만을 남겨놓은 완전 부품상태로 수출하는 것)을 통해 시작됐으나 고율의 물품세 등 인도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해 발전속도는 더딘 상태였다.
하지만 1991년 7월 라오 정권의 ‘신산업정책’이 추진되면서 6~7%대의 경제성장률에 힘입어 자동차 판매대수도 꾸준히 늘었고, 1996년 ‘경제자유화’에 따라 자동차 시장 개방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인도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인도시장에는 현대차를 비롯해 10여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있다.
착공 2년여 만에 상트로 생산
현대차가 인도에 진출한 것은 지난 96년5월, 공장 착공 2년여 만인 98년 9월 최초로 상트로(한국이름 아토스)를 생산했다. 첫 판매가 이뤄졌던 98년 시장점유율은 2.2%(8,448대)에 불과했는데 2004년 현재 17.4%(13만9,367대)로 일본 스즈끼와의 합작사인 마루티(51.2%)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가 진출할 당시 마루티는 80%의 시장을 점유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제는 마루티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지는 만큼 현대차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다른 인도 진출 자동차 회사들과 달리 합작이 아닌 단독 투자방식을 택했다. 합작을 할 경우 인도인들의 자부심 강한 국민성 때문에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날 우려가 있는데다 단독 진출 시 의사결정이 신속할 수 있는 이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립당시 인도의 외국인 투자비율 최고 한도가 51%로 단독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당시 김양수 부사장이 인도수상을 직접 찾아가 “단독투자가 허가되면 10만대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 엔진과 트랜스미션 공장도 건설하고 부품의 현지화율도 4년 이내에 70% 이상 끌어올리겠다. 또한 적극적으로 기술을 이전하면서 인도 현지에서 자동차를 설계해 국민차를 만들겠다”는 제안을 하고 설득한 결과, 인도 자동차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단독투자 허가를 받게 됐다고 한다.
실제 현대는 약속대로 했다. 인도 생산 제품의 부품 현지화율은 상트로 91%, 엑센트 87%, 소나타 59% 등 평균 71%이다. 인도에 진출한 도요타(50~59%), 포드(60~65%), 혼다(55~60%)에 비할 때 높다. 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은 현대차 성공 요인 1순위로 꼽히는데, 인도 진출업체들이 한 세대 또는 두 세대 뒤쳐진 구식모델을 시장에 내놓을 때 현대차는 자존심이 강한 인도인의 특성을 감안, 처음부터 최신 모델을 내놨으며, 단순조립 공장에 머물지 않고 일관생산시스템을 갖췄다. 여기에 덧붙여, 100% 단독투자라는 점도 ‘인도를 떠나지 않을 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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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도공장에서 생산되는 차종은 컴팩트급의 상트로, 게츠와 중형차로 분류되는 엑센트, 프리미엄급인 쏘나타 등 5종이다.
생산직 절반가량 비정규직
인도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주재원 50여명을 포함, 2,900여명이다. 정규직만 따질 때 그렇다는 것이다. 용역으로 투입되는 인원이 2,200명이고, 정부 정책에 따른 견습공(apprentice·공고생)이 1,500명이나 된다.
여기서 용역은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1년 단위 계약직을 말하는데, 계약갱신 반복을 통해 최대 5년까지 사용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용역사용은 금지돼 있지만 주정부에 신고해 승인 받으면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인도는 공고생의 경우 1년간 기업체에서 연수를 이수해야만 졸업이 인정되기 때문에 견습생의 수요는 늘 있다고 보면 된다.
일반직, 기술사무직, 단순용역을 제외하고 생산직만 봤을 때, 정규직은 1,700여명이고 비정규직은 1,300여명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생산라인 곳곳에 정규직 규모와 비슷한 수의 비정규직이 투입돼 있다.
임금 격차도 한국과 똑같다. 정규직은 9시간 단위 2교대제를 기본으로 월 430불(약 44만원)을 받는데 비정규직은 117불(12만원)이다. 비정규직 임금수준은 협력업체 정규직 임금수준과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다 산업연수생은 24불(2만5천원)을 받고 있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청소 등 아주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50불(5만원)을 받는다. 이 단순 업무는 여전히 잔존해 있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따라 주로 수드라 계층이 맡고 있는데, 이들의 임금은 인도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와 똑같다.
‘무노조 공장’ 한국에서의 학습효과?
노사관계는 어떨까? 인도는 사회주의와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노동조합이 매우 강하다. 조직률은 8% 내외이지만 전국에 12개 노총이 있고 100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는 노총도 5곳이 있다. 복수노조가 인정되고 있고 제3자 개입의 허용으로 정치조직과 연계된 노조가 많으며 노조의 정치활동도 당연 허용된다. 또한 정식 직원의 해고는 매우 어렵고, 평등임금법(1976년 제정)에 따라 남녀간 임금격차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차는 인도 진출시 노사관계를 가장 우려하고 고심했다. 결국 택한 전략은 ‘노사협의회를 통한’ 노사관계 정립이었다. 그래서 현대차 인도공장에는 노조가 없다.
노조가 없는 대신 현대차 인도공장은 99년 7월 사업장평의회(Work committee)를 꾸렸는데, 근로자 대표 7명과 사용자 대표 6명이 참가한다. 매월 정례회의를 통해 고충을 수렴하과 회사의 방침을 전달한다. 또한 공장별 복지위원회, 식당운영위원회, 안전활동위원회 등의 각종 소위원회 활동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직원 50명 당 1명을 기준으로 구성된 부서대표자회의(Joint Department Council)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공장 관계자는 “사업장평의회와 분임조 활동 등을 통해 인도 관리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점진적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한편 한국 주재원들은 코디네이터로 자금과 기술을 주로 통제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주재원 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현지인들이 직접 관리하는 체제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고용 문제없나?…인도공장 수출물량 급속히 늘어
기업의 해외진출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는 해외생산이 늘면 늘수록 국내 고용을 잠식할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 생산거점이 마련될 경우 국내공장의 수출지역을 잠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싼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만든 부품을 다시 한국에 들여오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이득이 남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인도공장은 국내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인도공장의 2004년 판매실적은 총 21만5천대다. 인도공장을 짓기 전 인도수출 물량이 연간 1만대도 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엄청난 성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21만5천대가 인도 내에서만 소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도 내수시장에 판매한 것이 64.7%(13만9천대)이고 나머지 35.3%(7만6천대)는 수출했다.
현대차가 ‘인도’를 선택한 것이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서남아시아, 중동 등에 대한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수출지역별로 보면 유럽이 3만8천대로 가장 많고 중남미가 2만3천대 등의 순이었다.
인도시장 내수와 수출 비중을 견줘볼 때 내수판매 증가량보다 수출이 월등히 높다. 내수는 2003년 12만대에서 2004년 13만9천대로 15.8%의 증가율을 보인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3만대에서 7만6천대로 153%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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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대차가 현지공장 생산까지 포함해 유럽에 수출하는 물량은 2004년 기준 72만대로, 수출지역으로 따질 때 북미(83만대, 35%)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매년 유럽으로 수출할 물량이 늘어날 때마다 한국공장이 아닌 인도, 터키공장에서 늘어난 물량을 소화를 해 왔다. 한국공장에서는 잔업과 특근을 통해 쥐어짤 수 있는 만큼의 물량을 만들어내는 대신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없다. 대신 해외공장에서 생산설비 증설 등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잘 팔릴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수출물량이 줄었을 때, 줄어든 만큼의 물량을 어느 공장에서 줄일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물론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에는 “국내 공장의 생산물량을 2003년 수준(180만대)으로 유지하고 (중략) 공급에 비해 수요부족과 판매부진 등의 이유로 국내 생산공장을 축소 및 폐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하지만 실제 물량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회사가 단체협약을 곧이곧대로 지킬 것이라고 믿는 노동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현대차 인도공장과 협력업체 2곳을 방문하면서 빼놓지 않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현지 생산으로 국내 생산의 위축은 없는가?”
현대차 인도공장 이종복 이사는 “오히려 인도공장 생산증대로 한국에서 부품을 더 많이 수입하게 되니까 한국 생산을 더 늘려주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한국에서는 경쟁력을 잃은 경차(상트로)의 경우 인도 현지에서는 동종급 차량 판매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인도로의 수출물량도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상트로의 현지화율이 91%에 달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인도공장에서의 생산대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이 추세는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인도 내수시장이 아닌 고품질을 요하는 유럽수출 차종 생산 시에는 한국산 부품비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협력업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트, 헤드라이닝 등을 생산하는 한일리어인디어 김홍근 상무는 “인도 현지에서 팔아야 할 대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한국에서 사와야 할 물량도 많아진다”고 말한다. 샤시부품을 생산하는 화신모토오티브의 경우도 인도에서 생산하는 물량의 40%를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가 오히려 본사를 바쁘게 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국내 노동계가 우려하는 바이백(buy-back) 문제에서는 ‘현지진출 = 제조업 공동화’ 등식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한다. 한일리어인디어 관계자는 “부품의 부피, 운송비, 관세 등의 이유로 역수출은 쉽지 않고 시트커버링 정도는 한국에 되팔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화신모토오티브 관계자 역시 “우리 회사 중국공장에서는 이미 바이백을 추진 중이지만 인도는 운송비 등의 문제로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며 “관세나 운송비 등만 해결되면 추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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