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노동자들의 희망을 안고 태어난 민주노총이 어느새 10살이 됐다. 올해 기아차노조 채용비리, 현대차노조 취업비리 등 대공장노조의 도덕성 문제와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민주노총의 위기는 이제 민주노조운동의 전반적 위기로까지 인식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민주노총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10주년 기념토론회를 가졌다. 성대한 축하연이 벌어져야 할 올해 민주노총이었지만 이날 토론회는 지금까지 걸어온 10년보다 앞으로 걸어갈 10년을 책임질 민주노총에 대한 따가운 지적이 많았다.

민주노총, 민주노조운동의 전반적 위기의식에 대해서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발제자와 토론자들 역시 모두 공감했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민주노총의 위기요인 가운데 현장에서 야기되고 있는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의 무능력과 대안 부재, 그리고 운동원칙의 부재에 큰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은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비현실적인 당위론적인 사업에 발목이 잡혀 있거나 기업 내의 단기 목표에 매몰되어 있어 조합원과 노동대중의 미래에 대한 설계와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분파 싸움에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간부들의 헌신적인 노력’, 이의 뒷받침 속에서 산별노조 건설과 현장조직력 강화가 민주노총 위기에 대한 가장 중심적인 해법이라고 이상학 원장은 주장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위기를 진단한 이상학 원장과 달리 이어 발제를 맡은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지적해 구조적 접근을 모색했다. 신광영 교수는 “구조적 위기의 주요 위기는 기업별 노조체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오랜 기간 고착화되면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특정한 울타리 내로 한계지어지고 있다”며 “기업별체계가 고착화되면 일본처럼 조합원수도 떨어지고 진보정당조차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광영 교수는 “노동운동 역시 이제 노사관계의 쟁점 뿐 아니라 사회적 쟁점을 자기문제화 해 전반적 사회운동의 중심적 헤게모니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 역시 이러한 신광영 교수의 주장에 동의를 표했다. 노 교수는 “87년 이후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서 벗어나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을 기반으로 한 합법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모델로 향해 나가야 한다”며 “계급내적 연대와 계급외적 연대, 즉 산별노조 건설과 민주노동당의 정치세력화의 확산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87년 이전에는 국가의 일부였던 노조, 노동자는 이제 시장의 일부로서 민주노총은 사회경제적 시민권을 획득하고 사회적 교섭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며 “사회적 의제제기, 제도개혁의 주체로서 노동자 계급, 빈곤층,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애정 어린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민주노조운동의 생존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면서도 민주노총 내 정파 문제에 대해서는 과감히 메스를 댔다.

“민주적 조직문화의 부재 속에서 정파조직의 과잉정치화는 제어될 수 없었고, 정파-조직간 대립 방식은 국가-자본을 상대로 한 투쟁방식과 차별화되지 않았다. 결국 정파조직의 과잉정치화는 상당한 폐해를 가져오며 민주노조운동 생존에 대한 최대한 제약 요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조돈문 교수는 이러한 정파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주체,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명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큰 자산은 조합원 대중의 ‘행동의지(willingness to act)'이며 이는 조합원 대중의 민주노조운동의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며 “이러한 신뢰마저도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공통분모 외에 정파조직들 사이의 이념적 차별성은 명분이나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비쳐지게 되며 권력투쟁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이어진 학계 교수들의 발제에 대해 토론에 나섰던 민주노총 간부들의 위기의식은 사실보다 심각했다.

조건준 금속연맹 조직부장은 최근 총파업 조직을 위해 현장순회를 진행한 상황을 소회하면서 “세상을 바꾸자며 총파업을 조직하고 내년 산별노조 건설을 말하고 있지만 과연 가능할지, 현장조직력 복원이 대안이라고 하지만 과연 간부들은 이를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라며 진정성조차도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역시도 민주노총의 최악의 위기를 거론하며 조건준 부장의 말에 동의했다.

10년의 역사를 가진 민주노총, 엄중한 시기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조돈문 교수의 말처럼 비록 최악의 위기이지만 다시 ‘희망’을 찾아야 할 시기다. 이날 토론회 역시 그동안 숱하게 진행됐던 토론회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정파 문제가 지적되고 산별노조건설 및 현장조직력 복원,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역할 제시 등이 수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역시나 민주노총,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바로 ‘자신’의 혁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원칙만이 중요하다는 것이 재차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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