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국회에서 점거를 불사하고 비정규법 처리를 막은 민주노동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저지’보다 ‘내용’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국회에서 비정규직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상 17대 국회에서는 비정규직법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비정규권리보장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태도다.

민주노동당의 법안 목표는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파견법 철폐 및 불법파견 고용의제 적용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등이다. 당은 노사 협상에서 이 목표가 최대한 관철되도록 양대노총과 ‘핫라인’도 개설할 방침이다. 당은 8일부터 양대노총, 비정규연대회의 등과 잇달아 간담회도 갖고, 당-민주노총 비정규법 대책팀도 가동한다.

하지만 이번 국회 심의과정에서 법안 내용을 합의할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이 민주노동당의 고민거리다. 노사 협상에서 합의해서 국회로 넘긴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미합의 상태에서 국회 심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합의 상황에서 법안을 심의하게 될 경우 민주노동당은 지난 6월 국회 때처럼 법안 처리를 반대하며 강제 저지에 나설 것인지, 기권 또는 반대표를 던지고 회의장을 뛰쳐나올지, 또는 적당한 수준에서 ‘묵인’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합의를 이유로 지난 6월 국회에서처럼 회의장을 점거하는 것은 당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법안 처리가 무산되고, 17대 국회에서 더이상 비정규직법을 심의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면 민주노동당은 17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이에 대한 모든 공과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도 민주노동당이 점거 등 물리력을 쓸 경우 최근 쌀협상 비준안 상정 당시 통외통위에서 발동했던 ‘질서유지권’을 써서라도 비정규직법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처리할 경우 향후 비정규직법과 관련된 모든 공과를 우리당이 감당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단 10일부터 20일까지 열흘 동안 진행될 노사 협상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하는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비록 합의 가능성은 낮더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원외의 노사협상 줄다리기를 지켜봐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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