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금을 통해서라도 지켜낸 은행이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을 배제하는 현재의 상황은 윤리적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에서 금융평가법 제정 운동을 펼치고 있는 야마구치 요시유키 교수(릿치대학)는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금융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금융정책 대안 모색 대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금융은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사회시스템'이며 이런 이유 때문에 은행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더라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일본 은행은 은행의 이익추구 원리 때문에 예금이나 대출에 있어서 중소기업을 포함한 일부 시민들에 대한 '배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마구치 교수에 따르면 고이즈미 정부는 일본 경제에 거품이 걷힌 뒤 과잉채무와 적자의 늪에 빠진 중소기업들을 빨리 정리하고 정리된 기업들로부터 흘러나온 노동자들은 다른 건강한 기업과 산업으로 이동, 일본 경제 전체가 건강한 체질로 변모시킨다는 경제정책을 갖고 있다.

이런 정책기조 아래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의 처리속도를 높이라고 은행에 재촉을 했고 은행은 부실채권 처리의 가속화로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면서 대출능력이 감소, 대출을 주저하게 된 결과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자금유통의 어려움에 빠져버렸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이 80억엔, 자산이 1000억엔인 A은행이 10억엔의 부실채권을 처리한다면 자산과 자기자본이 70억엔과 990억엔으로 줄어들어 자기자본비율이 8%에서 7.07%로 낮아진다. 이때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을 8%로 맞추기 위해 자산(대출)을 125억엔 줄이는 정책을 편다는 것. 즉, 10억엔의 부실채권 처리로 인해 125억엔 규모의 대출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야마구치 교수는 "일본 은행법 제1조에는 '금융의 공공성'이라는 용어가 나오며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은행국장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분야에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는 것'이란 의미라고 밝힌 바 있다"며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은 금융의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금융의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은행을 평가하자는 것이 금융평가법의 취지"라고 밝혔다.

금융평가법에 따르면 '지역의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노력하는 정도'란 관점에서 은행이 평가되고 평가 결과가 낮은 은행은 새로운 지점 설치와 합병 등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야마구치 교수는 "법률이 제정되면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을 통해 '경영의 건전성'을 평가받고 '금융평가법'을 통해 공공성을 평가받게 된다"며 "이는 현재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지역재투자법(CRA)'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특정 은행이 지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비율 10% 이상', '지역재투자법 평가가 '양호'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금융평가법은 일본 야당인 민주당이 두 차례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지만 결국 통과되지는 못했다.

야마구치 교수는 "금융평가법은 여당으로부터 사회주의적인 법률이라는 공방을 듣기도 했다"며 "하지만 법 제정 운동을 벌이면서 10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고 47개 행정지구 중 19곳이 만장일치로 '법제정 요구 의견서'를 채택했고 시군구 지방의회의 30%가 넘는 950곳에서 금융평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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