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민주노총은 중집회의를 열고 공공연맹에 가입한 서울대병원지부노조에 ‘보건의료노조 탈퇴 철회 권고’를 결정했다. 지난해 6월 촉발된 10장2조 논란이 ‘공공연맹-보건의료노조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산별협약, 산별구획, 산별집단탈퇴 금지여부 등 다양한 산별노조에 대한 논쟁도 일어났다. 지금까지 나타난 산별노조에 대한 쟁점과 관련해 노동계 인사들의 의견을 기고 형식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이제 산별노조로 가야한다는 데 대해서는 대세가 형성된 것 같다. 산별노조 건설이 대세를 형성한 것은 우리 노동운동에게는 커다란 다행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산별노조를 얘기하다보니 당위론적 접근에 치우쳐서 당연히 산별로 가야 한다는 선언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산별노조 건설구획도 여러 산업(업종)을 이렇게도 묶어보고 저렇게도 묶어보면서 다양한 제안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시도들에 깔려 있는 현실적 배경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접근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변화를 살펴보고 뒤이어 이에 대한 우리들의 대응 전략, 마지막으로 그 구체적인 결과로서 산별구획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런 내용은 여러 조직과 관련된 문제라서 어떤 사람 또는 조직에게는 거슬리는 말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제안하는 내용은 글쓴이가 속해 있는 조직, 글쓴이 직책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 활동가로서 개인의견이다.

노동자 다양성 증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산업구조 변화라고 하는 객관적인 상황변화이다. 한국 산업구조 변화, 그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를 잘 드러내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경제의 서비스화이다.

이런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종사업무 내용에 따라 그 성격이 다양하지만 조직률이 낮고 또한 노동성격이 개별적 노동이란 특성 때문에 조직이 어려운 특징이 있다. 특히 이들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기업별 종속성이 강하지 않아 이동이 심하기 때문에, 또 해당 기업이 소규모이고 기업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기업별노조로는 조직하기가 힘들다.

다음으로는 노동력 구성변화가 중요한 객관적인 지표가 될 것이다. 산업구조 변화, 인구구성변화, 사회의식변화에 따라 노동력 구성변화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지적할 것으로는 비정규직 증대이다. 이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론하지 않는다.

둘째로는 여성 노동력 증대인데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나 고용의 질을 놓고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여성이 대체로 단순직무, 저기술, 낮은 직위, 열악한 노동조건을 특징으로 하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비정규직 취업이 압도적이다.

다음으로는 이주노동자 증대, 고령화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노동력구성 변화를 가장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노동자 다양성 증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 증대가 노동조건 면에서는 양극화로 단순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여성, 단순서비스직, 이주노동자, 고령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 미조직노동자는 대체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데 비해 정규직, 남성, 전문직, 내국인노동자, 청·장년노동자, 대기업노동자, 조직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좋은 노동조건을 누리고 있다.

다음으로는 한국노동운동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때로는 주관적 평가일 수도 있는 '위기론'보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살펴본다.

첫째, 한국 노조조직률은 OECD 30개국 가운데 29위(30위는 프랑스, 그러나 단체협약적용률은 아주 높은 편이다)이고, 단체협약적용률은 30위로 가장 낮다. 한국노조는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아주 낮은 조직률, 특히 더 낮은 단체협약적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조가 노동계급 대부분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둘째는, 조직된 노조도 대체로 대기업, 생산직, 정규직, 남자 위주로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 하고 있다.

셋째로, 이런 대표성의 위기 또는 대표성 왜곡은 노조가 대다수 노동자, 시민사회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즉 초기업단위요구, 사회적 요구를 내걸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주요 쟁점은 아니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조차도 둘로 나뉘어져 있고 그 결과 대정부, 대사용자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공동투쟁의제 중심으로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단지 과거와 같은 운동기조와 조직방식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잘, 조금 더 열심히 하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하면서 전략적 대응을 할 것인가?

사실, 이 부분은 논쟁거리라기보다는 이미 결론이 난 부분이다. 우리는 이미 전략적 수준에서 대응을 하기로 했고 그 내용을 운동기조에서는 사회공공성강화투쟁으로, 조직방식에서는 산별노조건설로 방향을 잡았다. 위에서 산업구조 변화, 노동자구성 변화, 대표성 위기 등을 말했는데 이에 맞설 수 있는 조직화방안은 산별노조 건설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이다. 한국 노조는 새로운 도전에 맞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전략적 선택을 했다. 만일 노조의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후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사회운동, 정치영역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조직구획 기준을 가져가야 할 것인가?

첫째로, 최근 산업구조변화로 서비스부문 증대를 고려하여야 한다. 전체적으로 서비스부문이 증대하는 가운데 특히 공공서비스부문이 점차 비중도 커지고 그 중요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공공성강화투쟁도 이 부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둔 설계를 하여야 한다.

둘째는 제조업이 전체적으로 축소되면서 과거에 비해 산업간 경계가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 않게 되고 서비스산업 경우도 대다수 노동자가 비숙련비정규직으로 채워지면서 산업간 경계가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공동투쟁의제를 중심으로 묶을 수 있는 단위를 설정해야 한다. 사회공공성투쟁을 중심으로 한 공공서비스부문, 공동노동조건 개선투쟁이 유의미한 제조업부문, 현재 가장 열악한 부문으로 최저기준 설정이 시급한 민간서비스부문 등으로 공동투쟁의제가 조금씩 달리 묶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전세계적으로 노조들이 통합을 통해 힘을 모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전략적으로, 크게 나누자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앞으로 산별조직은 크게 다음과 같이 3개로 재편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공공서비스부문이다. 공공, 사회, 운수, 의료, 정보통신서비스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서비스 성격으로 본다면 장기적으로는 공무원과 교원도 함께 하여야 할 것이나 공무원과 교원은 그 나름의 독특성이 있기 때문에 별개로 조직을 가져가면서 대정부교섭이란 면에서 함께 하면 될 것이다.

둘째는 제조업부문이다. 과거, 그리고 현재 다양한 제조업산별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조금은 낯설어 보일 수 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과거 산업구조가 제조업중심이던 때를 중심으로 하던 사고를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 이들은 민간부문을 대표하는, 예를 들면, 경총과 전국 차원의 산별교섭을 진행하고 그에 뒤이어 업종, 지역별 교섭을 통해 세부화시켜 나가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민간서비스부문이다. 이 부문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노동조건이 상당히 열악하지만 현재 조직화가 가장 미진한 부문이다.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정규직, 비정규직에 상관없이 높은 노동이동률과 나쁜 노동조건, 고용불안정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부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조가 단 3개뿐이라는 것은 아니다. 공공서비스부문은 위 예를 보더라도 상당기간 3개 노조가 있고 그밖에 어느 부문으로 분류하기 적당하지 않은 업종, 직종별노조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산별노조 내에서 교섭단위는 조금 더 세분화될 수 있다.

과거 또는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이 안은 조금(!) 파격적인 안이다. 그리고 당장 실현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차피 산별노조로 가자는 것 자체가 파격이고 장기과제이다. 노동운동진영이 한 판 승부를 걸어야 한다면 조직구획 자체도 한 번 크게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여기에서 말하는 결론은 결국 크게 3개 부문으로 나누자는 것이지만 그 전에 왜 이런 안을 냈는가 하는 것에 더 큰 고민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구획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어떤 기준에 따라 이런 안을 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필자는 객관적으로, 전략적으로, 크게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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