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지고 있는 노동관련 이슈 가운데 핵심은 바로 ‘하도급 구조’로 인한 임금, 근로조건 등의 격차문제이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간 불공정 거래 등에 기인한 지불능력의 차이,
기획 연재 순서
1. 산업별 하도급구조 - 자동차산업
2. 산업별 하도급구조 - 철강, 소프트웨어산업
3. 우리나라 하도급구조와 고용관계
이로 인해 빚어지는 임금 격차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매일노동뉴스>는 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하는 ‘하도급구조와 고용관계’ 토론회를 계기로 3회에 걸쳐 하도급구조의 실태와 개선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어느 정도로 차별이 심각한 지는 더 이상 문제로 삼을 시기는 아닌 듯하다. 국내 완성차 A사 정규직과 비교할 때 A사의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같은 근속년수의 노동자 임금이 70% 수준, A사로부터 업무를 하도급 받은 사외하청업체 노동자 임금이 61% 수준이란 것은 놀랄 만한 수치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도 하청노동자들의 규모는 더 늘어나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통계청의 ‘광공업통계자료’에 따르면, 완성차 대기업 고용규모는 9만6,887명으로 최고치였던 97년 이후 계속 줄어 2001년 7만2,305명까지 떨어졌다가 2002년 7만7,554명으로 미약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부품산업의 고용규모는 99년(11만2,316명) 이후 계속 늘어나 2002년 12만9,498명을 기록했다. 결국 외주화, 모듈화, 사내하도급 확대를 보여주는 셈이다.

또한 최근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이라는 노동부 판정과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노동조합 조직 등으로 사내하청을 둘러싼 노사갈등은 사회전반적인 쟁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규직화냐, 아니냐’ 위험한 쟁점

현재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들로 조직된 노조들의 공통된 요구는 ‘불법파견 판정자 전원 정규직화’이다. ‘불법’적으로 제3자에 고용돼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일해 왔던 해당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일 수 있겠지만, 사내하도급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기에는 ‘위험한 쟁점 형성’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별 도급구조와 고용관계’라는 노동부 발주 프로젝트 가운데 ‘자동차산업’ 쪽을 수행한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홍장표 부경대 교수, 이시균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 팀은 “사내하도급(하청) 문제는 단순 비정규직 활용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뿌리 깊은 불신 및 생산인력 관리의 후진성과 연관된 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조성재 연구위원은 “고용조정의 안전판, 정규직이 기피하는 3D 직무의 배정, 저인건비의 활용, 투입인원(M/H·맨아워)을 둘러싼 작업장 갈등의 봉합 수단 등으로 위치지워진 사내하도급은 노사간의 구조적 담합행위에 의해 그 문제가 증폭돼 왔다”며 “이 때문에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화할 것인가, 아닌가로 쟁점이 좁혀지는 건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우려한다. 즉, 왜곡된 노사관계와 생산관리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한 점에서 관련된 현안들과의 일괄 타결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A사의 작업조직을 보면, 주요 공정 중 하나인 최종조립라인에서 정규직과 사내하청이 함께 근무하고 있고, 작업의 가장 말단 단위인 스테이션에서조차 혼재 편성돼 있다. 이는 작업에 관한 통제권과 (하청업체의) 자율권을 분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뜻한다. 그런데 이 같은 혼재작업조직이 발생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상시적으로 사내하청을 쓰는 경우인데, 적지 않은 수가 M/H 협상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정규직 인원 투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회사쪽과 노동강도를 완화하고자 하는 대의원들의 입장이 대립되면서 손쉽게 사내하청 투입으로 타협해 버린다”며 “결국 사내하청은 일상적으로 라인에 투입돼 ‘정규’업무를 담당하는 구조가 작업장 내에 고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연공급 체계, 기업별노조의 한계

사내하청에 대한 차별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이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사내하청이 끼우는데, 임금 및 근로조건 등에서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직무나 숙련 등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데 불합리한 차별이 유발되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서구에서 일반적인 산업별 노조체계와 이와 연관된 직무급 노동시장이 발달돼 있다면 굳이 사내하청 같은 고용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례로 독일 금속노조나 서구 산별노조를 보면, 개별 노동자의 임금결정에서 어느 기업에 속해 있는가보다 어느 직무나 직능등급에 속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임금결정에서 직무나 직능등급의 중요성보다는 연공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직무 혹은 생산성과 임금 간의 괴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연구팀은 “사내하도급은 기업별로 분단된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아래에서 노사간 담합의 의해 차별과 배제가 구조화된 하나의 형식”이라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더 나아가 업무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면 배제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정규직 고임금 “권위를 세워야”

그렇다면 사내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연구팀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조화’라는 클 틀에서 고용(조정)의 유연성 측면뿐 아니라 임금(체계)의 유연성, 노동시간의 유연성, 작업장 운영의 유연성 등을 짚으면서 이들이 상호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완성차들이 제시하는 대안 중 하나인 ‘완전(진성)도급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였다. 완성차 공정이 일관생산체제인 점에서 공정분리가 쉽지 않고 간접부서도 일정한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하청업체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 않다는 사정이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이나 철강, 화학 산업에서는 진성도급화도 일부 가능하지만 자동차는 기술체계상 곤란하며, 따라서 일본에서도 자동차나 전자산업의 불법파견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의 파견을 합법화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더욱이 완전도급화를 위해서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전환배치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노사관계상 쉽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연구팀은 도요타와 같이 기간제 노동자를 완성차가 직접 고용하면서 임금상의 차별을 피하는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계절적 요인, 또는 임시적 결원 대체 등을 위해 그야말로 비정규 고용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 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적용을 통한 차별억제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와 더불어 ‘그야말로 비정규 고용형태’를 취하더라도 정규직에 대한 유연한 활용 방안이 노사 협조적으로 도출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즉 노사가 시간 유연성, 임금유연성, 작업장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그 잔여 개념으로서 계약직을 최소한으로 활용해야 하며, 따라서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 간에 유연한 생산시스템에 대한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연구팀은 “현재와 같이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 중 하나는 정규직이 고임금을 받는 데 비해 작업장 내에서 숙련에 근거한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고임금에 걸맞는 역할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훈련, 임금, 승진체계가 고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질적 유연성을 중심에 두면서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양적 유연성 수단을 정비해야 하는데, ‘고용조정’이라는 최악의 상황만을 상정한 수단에 집착하지 말고 노동시간, 교대제, 임금체계와 구성 등 다양한 방식을 혼합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용어해설>
◇ M/H(Man/Hour) 협상
신모델 도입이나 새로운 사양의 증가, 작업량 및 라인속도 변동 등의 과정에서 투입돼야 하는 인원수를 둘러싸고 작업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노사교섭을 말한다.


◇ 시간유연성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달성하면서도 시간 유연성을 확보하는 수단 중 하나로 독일에서 발달한 노동시간 계정제를 들 수 있다. 이는 호황시에 잔업 등을 통해 자신의 시간 구좌에 저금해 두었다가 불황시에 꺼내 쓸 수 있는 제도로 노동자들은 임금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수요변동에 대응해 자유롭게 공장가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한·중·일 비정규직 활용, 어떻게 다른가
비정규직 증가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97년 22.9%였던 비정규직 비율이 2002년에는 29.6%로 늘었고, 2003년 현재 시간제 고용비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네덜란드(34.5%), 호주(27.9%) 다음으로 많은 26.0%였다. 또한 전기전자사업에서는 사내하도급 활용비율이 50% 내외에 이를 정도이며, 전통적으로 일부 기간공(계절공) 활용에 머물렀던 도요타자동차조차도 최근에는 9천명(25%)이 넘는 기간공을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중·일 자동차산업의 비정규직 직무와 처우 비교
 한국중국일본
직무동일직무/
주변직무 혼재
동일직무수행단순직무 중심
처우정규직과 격차 큼
(정규직 1년차의 80% 이하)
정규직과 거의 동일
(임금은 직접지급,
간접비는 파견회사에 지급)
정규직과 격차 적음
(정규직 1년차와 거의
유사하거나 많음)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이 지난 2일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 개원 16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동차산업의 비정규직 활용실태 한·중·일 비교’에 따르면, 일본의 2차, 3차 자동차부품업체들의 경우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내하도급(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그 비율이 50%를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이 같은 비정규직 증가는 90년대 이후 10여년간 불황을 경험한 자동차업체들이 최근 생산은 증가했지만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정규직 고용을 보호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국유기업 개혁 과정에서 고용관계에도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큰 과제였기 때문에 고용과 임금제도에서 상당한 정도의 시장과, 서구화가 진행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조 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 전체적으로는 한국 현지법인들을 포함, 10년 근속 이내에서는 1~4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같은 정규사원의 계약제 이외에도 노무공(파견노동자)을 상당한 정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사내하청, 일본의 사내하청 또는 기간공, 중국의 노무공 등 3국의 비정규직 가운데 정규직 1년차와의 임금격차는 한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 연구위원은 “일본 도요타의 기간공은 정규직 1년차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중국의 노무공은 정규계약직과 거의 유사한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고 5대 보험 등 간접비는 파견회사를 통해 지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자동차완성차 A사의 경우 정규직 1년차 월 인건비(4대 보험 등 간접비용 포함)는 277만4천원인 반면 하청업체 노동자는 186만6천원이었다. 정규직 1년차의 68% 수준인 셈이다.


이 같은 차별도 문제지만 조 연구위원은 “산업경쟁력과 관련해 정규직에 대한 조직적인 기능향상 프로그램이 빈약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임금 및 승진제도가 취약한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다능공을 육성해 이들의 현장 이상상황에 대처하고 조직적으로 개선활동을 하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직능자격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인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기계적으로 매년 인상되는 기본급과 이에 연동하는 잔업수당과 상여금 등으로 임금이 구성돼 있고 기능향상을 보상할 수 있는 승진경로는 미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조 연구위원은 “일본 자동차산업의 정규직이 현장의 조직능력을 지탱하는 ‘핵심인력’인데 비해 한국은 단지 비정규 주변인력과 구분되는 ‘중심인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정규직에 대한 고율의 임금인상이 이뤄질 경우 사용자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저임금의 사내하청을 확대하거나, 외주 확대를 통해 외부 중소기업의 저임금 계층을 활용하려는 유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후발주자인 중국의 변화와 맞물려 한국의 자동차산업 위협요인이 되기도 한다. 조 연구위원은 “아직은 중국 자동차 생산현장에 비해 한국의 기능수준이나 품질, 생산성이 우월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중국에 비해 한국의 자동차산업의 역사가 길고, 우수한 인력의 장기근속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기업특수적 숙련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오히려 이를 명시화, 체계화하는 것은 일본식 생산방식을 나름대로 해석, 전 세계 작업장에 적용하고 있는 상하이GM 등이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