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1만여명에 가까운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내하청인력 운용방안에 대한 몇가지 연구보고서들이 제출되고 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에서 '주체'의 관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보고서들에 대한 의견을 보내왔다. 특히 이 글은 본지를 통해 지난 6월8일 보도되기도 했던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다. <편집자주> 




최근 차별과 불법파견 등으로 사내하청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데에는 정규직노조와 상급단체들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차별과 억압을 떨쳐내며 스스로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입을 통해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지 않았다면, 사내하청 문제의 심각성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사자인 비정규직 주체의 관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불법파견 문제 역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제조업 대공장 비정규직노조들이 직접 불법파견 집단진정을 제기하며 저항에 나섰기 때문이다. 철강이나 조선업종의 사내하청 문제가 대단히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동차업종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떠오르고 있는데, 이 역시 상대적으로 자동차업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철강·조선업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저항을 전면화 하는 시점에 이 업종 사내하청 문제는 다시 한번 첨예한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성재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얘기하는 ‘노사관계’란 정규직노조와 원청 자본의 관계만을 뜻하며, 그가 말하는 해결대안 역시 - 직접고용과 유연성확보든, 이중고용시스템이든 - 어떤 것이 되었든 원청 노사간 합의를 전제로 한다. 어느 곳에서도 비정규직노조나 주체들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이며 고려대상이나 변수에서도 제외된다.

비정규 주체들이 없었다면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며, 해결방안 역시 문제제기 당사자인 비정규주체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조성재 연구위원의 관점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그가 얘기하는 해결책이나 분석이 비정규주체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 활용실태'?
자동차산업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사용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


조성재 연구위원의 글에는 한·중·일 ‘비정규직 활용실태’ 비교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다시 말해 자동차산업에서 ‘비정규직’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얼마전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설립한 앨라배마공장에서 비정규직을 사용한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아니, 현대 자본이 세계 각국에 설립한 현지공장에서 비정규직을 쓴다는 말 역시 들은 바가 없다.

조성재 연구위원이 한·중·일이 아닌 다른 국가의 사례를 얘기할 때에는 ‘비정규직 활용실태’가 아니라 ‘유연성 확보 방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동차산업에서 사내하청이란 형태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사례가 사실상 한·중·일에 국한된 예외적 사례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내하청 형태의 비정규직 사용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얘길 하나 덧붙이자면 현대차비정규노조의 영문명칭 중 ‘비정규직’이란 단어를 “Bijeonggyujik”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사내하청’이란 말을 적절히 표현해줄 외국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약직’이나 ‘도급’에 해당하는 외국어는 존재하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일에 투입되어 동일노동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를 표현해줄 단어가 전세계를 통틀어 한국어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용도 유연하고 임금도 차별받는 비정규직’ 사용은 세계적인 수치요 부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응당 이런 수치스런 형태의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는 논의가 앞서야지, 또다른 수치스런 비정규직 활용형태(일본, 중국)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정규직화인가 아닌가 하는 쟁점 형성은 위험한 현상?

조성재 연구위원은 “고용조정의 안전판, 정규직이 기피하는 3D 직무의 배정, 저인건비의 활용, 투입인원(M/H·맨아워)을 둘러싼 작업장 갈등의 봉합 수단 등으로 위치지워진 사내하도급은 노사간의 구조적 담합행위에 의해 그 문제가 증폭돼 왔다”며 “이 때문에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화할 것인가, 아닌가로 쟁점이 좁혀지는 건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논의에서 살폈듯이 사내하청이라는 존재 형태 자체가 세계적 비웃음거리에 속한다. 게다가 현대차와 GM대우차의 경우 현행 파견법이 금지하는 ‘불법파견’을 행하였음이 드러났고, 2000년 이후 불법파견 판정시 정규직 전환 사례(캐리어, 기아차, 금호타이어 등)도 상당히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는 세계적 수치를 씻어내고 불법파견을 해소할 수 있는 상식적인 주장이다.

문제는 자본측이 어떠한 합리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폭력적 탄압과 대화거부로 일관하기 때문에 “정규직화인가 아닌가” 하는 쟁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본측이 조금만 상식을 갖고 있었다면 정규직화는 기본 전제로 실행하고 정규직 전환 이후 인력활용방안을 놓고 대화를 하자고 나왔어야 옳다. 그러나 자본쪽의 태도는 “불법을 감수할지언정 단 한 명의 정규직화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고용 전환과 유연성 확보?

조성재 연구위원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정규직에 대한 유연한 활용방안 합의도출”을 전제로 “도요타와 같이 기간제 근로자를 사쪽이 직접 고용하면서 임금상의 차별을 피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직접고용 전환과 고용유연화를 빅딜(Big Deal)하자는 것이다. 어찌보면 사내하청의 직접고용 전환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본쪽의 ‘고용유연화’ 요구를 수용하고 ‘불법파견’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타협책에 불과하다.

묻고 싶다. 과연 자본쪽이 요구하는 ‘고용유연화’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저 아무런 근거없이 ‘정규직 고용이 경직되어 있다’는 자본의 거짓 주장에 불과하다. 생산물량의 잦은 변동을 계기로 정규직에 대한 배치전환, 순환휴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등, 자본이 요구하는 고용유연화 수준은 이미 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용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속하는 것은, 다름아닌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강화와 인원삭감’을 통해 노동자를 더욱 쥐어짜내기 위함이다.

조성재 연구위원도 지적하듯이 “국내에서 80% 이상의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1999년 하반기 이후 호황과 성장이 지속되고 있어 양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사용자의 공세가 나타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투입인원(M/H)협상 때마다 현대 자본은 노동강도강화(UPH UP)와 인원삭감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으며, 유연성 확보를 위한 공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즉, 자본측이 요구하는 ‘고용유연화’는 실체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원청사용자(사용사업주)의 사용자성 인정

조성재 연구위원의 논의 대부분에서 비정규주체 문제가 빠져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비정규노조들의 요구에 입각한 해결방안들은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자동차산업 ‘노사관계’란, 원청 노사간의 관계만을 의미할 뿐 비정규노조가 절실한 요구를 내걸고 원청 자본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하는 등 새로운 ‘노사관계’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조성재 연구위원의 논의주제가 ‘노사관계’ 쪽에 초점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가 원청 노사관계에 상당히 주목하면서 사내하도급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라는 논의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사내하청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 중의 하나인 비정규직노조와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완성차 공장에는 정규직 노동자와 자본만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존재하며 마찬가지로 노사관계 역시 이들 주체가 모두 포함되어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현행 파견법상 ‘고용의제' 조항에 의거하여 2년 근속 이상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자본에 대한 사용자성을 요구할 법적 정당성도 존재한다. 게다가 스스로의 문제를 ‘대리교섭’이 아닌 스스로의 요구와 행동으로 쟁취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불법파견·사내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대안은 마땅히 비정규노조라는 주체를 포함시켜야 하며, 비정규노조가 스스로의 요구를 내걸고 원청자본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틀이 확보되어야 한다. 조성재 연구위원이 제시하는 여러 해법들도, 사실은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바, 응당 해당 주체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실현가능한 것이 아닌가!

노사간의 구조적 담합행위

마지막으로 조성재 연구위원이 지적하는 ‘노사간의 구조적 담합행위’에 대해 몇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조성재 연구원은 사내하청 증가 요인으로 “외환위기 이후 생산량 증대에 대응하여 고용조정의 안전판을 마련하다는 차원에서 노사간의 담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규직이 기피하는 3D 직무를 사내하도급에게 맡겨왔으며” “사용자 역시 사내하도급을 상대적으로 싼 임금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의원과의 타협을 선호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사합의는 ‘있어선 안 될 잘못된 합의’로 인식되어 있으며,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이러한 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1월17일 전·현직 위원장 기자회견을 통해 "97년 이후 사내하청의 무차별적인 증가를 막기 위해 16.9%로 사내 비정규직 비율을 정하도록 합의한 것은 잘못된 관행이었다"며 비정규직 급증과 관련한 정규직노조의 잘못을 시인한 바 있다. 당시 전·현직 위원장들은 “현대차노조는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를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자기반성’만큼 혁신과제를 실천하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나, 수다한 노사합의의 직접당사자인 현자노조 전현직 위원장들이 조성재 연구원이 지적한 ‘노사담합’을 “잘못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합의 관행이 현장에서 100% 뿌리뽑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의원들이 이와 유사한 합의에 서명할 경우 현장에서 상당한 도의적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이러한 노사담합을 근거로 “정규직화인가 아닌가 하는 쟁점은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러한 ‘노사담합’을 노조운동진영은 ‘잘못된 것’으로 반성하고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자본쪽은 끊임없이 과거의 관행을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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