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수의'에서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울산구치소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5일간 구속집행정지로 일시석방 조치됐으나 버스를 놓쳐 이날 아침에서야 빈소인 서울 태릉 성심병원에 당도할 수 있었다.

“20년 전에 아들 역할하기를 포기했지만 임종은 지킬 줄 알았는데 할 말이 없다.”

다행히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억울한’ 수감사실을 모른 채 눈을 감았다. 빈소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는 그의 아버지도 구속사실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위원장은 구치소에서 삼성에 대한 특별검사법 통과를 요구하며 지난달 28일부터 15일간 단식농성을 해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있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그렇게 많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다.

억울한 너무나 억울한

울산지법은 지난 2월22일 삼성재벌과 삼성SDI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김성환 위원장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김 위원장을 포함해 삼성 전현직 직원이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당해온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이 기소중지 결정을 내린지 6일만이었다.

김 위원장은 보통 피의자의 주소지에서 진행되는 재판관행과 달리 인천집에서 멀리 떨어진 울산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울산에는 삼성SDI 울산공장이 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이 고소한 사건에 대해 다른 지역 법원에서 이겨도 재판이 울산에서 열리면 항상 내가 졌다. 울산은 삼성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2년 삼성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어 이번 선고는 3년10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는 억울하다. 삼성을 명예훼손했다는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에 실린 내용은 언론에서도 이미 취재했던 내용일 뿐 아니라 대부분 그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검찰은 ‘불법 위치추적’을 한 범인들은 윤곽도 잡지 못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위치추적’ 사건이 검찰에서도 기소중지된 것에 대해서 말이다.

김성환 위원장은 위치추적을 한 범인이 삼성SDI에 소속된 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물론 정황근거도 수도 없이 많이 갖고 있다.

“차라리 나에게 삼성 수사권을”

김 위원장은 삼성SDI가 자신의 동선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위치추적’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조직활동을 하러 다닐 때 삼성SDI 인사담당자가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현장 노동자 중 누군가를 만나려 하면 그 사람을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낸다거나, 나를 만난 다음날 그 사람을 불러 나를 만났는지 확인했다. 양산에서 현장 노동자를 만나고 터미널에서 헤어졌는데, 그 노동자가 나와 헤어진 직후에 회사 인사담당자로부터 ‘김성환은 터미널에서 잘 보냈냐’고 묻는 전화를 받은 일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위치추적 사실을 파악하고 노조활동에 연관됐던 전현직 삼성직원들이 위치추적을 당해온 사실까지 파악해 검찰에 고소하는 일을 주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직접 파악한 사실을 검찰에 모두 넘겼다. 빠른 수사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김 위원장은 “검찰 수사기록에서도 드러나듯이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안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조사해서 넘긴 사실들만 확인하는데 그쳤다는 것.

김 위원장은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을 검찰에 말해주기까지 했는데 정작 그 사람은 수사하지도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을 미행하던 삼성SDI 수원공장 직원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다. 이 사람의 통화기록만 분석해도 혐의를 잡을 수 있을거라고 예상했다. 피해자들을 위치추적 한 뒤 회사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위치추적을 한 발신기지국과 통화한 발신기지국을 대조하면 된다는 것.

김 위원장은 또 하나의 사실을 공개했다. 자신의 휴대폰을 불법복제한 범인을 찾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을 꺼놓은 뒤, 신호음이 울리는 휴대폰을 추적하자고 담당검사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삼성SDI 관계자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안이 비밀리에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열흘이나 지나서야 성사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오죽하면 차라리 나한테 수사권을 달라고 말했겠는가”고 검찰의 미진한 수사를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검찰이 기소중지를 결정한 다음에도 위치추적에 이용된 휴대폰의 주인으로 돼 있던 이미 사망한 사람의 유족을 만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유족들이 검찰조사를 받았는데 사실을 밝히기보다는 가족들을 죄인 다루듯이 해 피해의식을 많이 갖고 있었다”며 “가족들이 사망한 동생의 억울함을 벗기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지뢰밭 피해간 검찰 수사

검찰 수사가 허술했던 것은 검찰 수사기록에서도 드러났다. 수사기록을 입수, 분석한 <말>지 5월호에 따르면 “검찰은 지뢰밭을 피해가는 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말>지는 위치추적을 한 발신기지국을 분석해 하루 동선을 만들어보니, 범인은 수원 기흥읍에서 살면서 회사원들의 근무시간엔 삼성SDI 공장이 있는 팔달구 신동을 날마다 어슬렁거리는 인물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을 미행하던 삼성SDI 수원공장 직원을 의심하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말>지는 수사기록 분석 결과 결정적 단서를 포착하기도 했다. 범인은 위치추적에 이용한 핸드폰으로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친구찾기’ 서비스만 이용했는데 2003년 12월27일 오후 각각 다른 4개의 전화번호에 전화를 건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검찰은 이 4개의 전화번호 주인에 대해 조사를 하긴 했으나 모두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만 듣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이동통신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경태(가명)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펼친 바 있다. 휴대폰 복제를 하려면 단말기 고유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이경태가 이 고유번호를 파악할 수 있는 고객조회를 여러번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경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 중 016번호를 사용하는 모든 피해자들의 정보를 조회했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조사결과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말>지는 수사기록에 나타난 이씨의 계좌기록만 봐도 미심쩍은 점이 발견된다고 밝혔다. 2001년 7월2일 개설한 저축예금 통장에서 2004년 7월 7천만원이 인출되자 예금잔고가 0원이 됐다는 것. 이는 어느 시점에 7천만원이 한꺼번에 입금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휴대전화 판매사업 손실로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이씨의 7천만원에 대해 출처를 묻지 않았다. 이씨 부인 계좌에 몇백만원씩 몇차례 입금된 돈의 내역도 마찬가지였다.

멈추지 않는 삼성노조 조직화

하지만 김성환 위원장은 “이런 모든 일들이 삼성을 신비화하는데 이용되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삼성의 정보력이 대단하다,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말로 삼성 무노조신화를 깨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다.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삼성에 지는게 아니라,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양대노총을 향해 삼성 조직화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삼성에 대한 전담기구 없이 삼성에 대응하기는 힘들다. 민주노총 상집회의에서 삼성조직화를 결의했지만 실천은 안됐다. 삼성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도 ‘삼성한테 돈 받고 그만둘텐데’하는 의심을 갖고 있더라. 노조탄압이 악랄하니까 노동자들도 교활해지는거다. 그러나 왜 돈 받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지금 현장에서 계속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남아있다.”

김 위원장은 2심 재판에서도 형기를 줄이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가능한 모든 증인을 불러내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삼우제를 지내고 구치소로 돌아간다고 해도 재판준비에 여념이 없을 터였다.

모친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자, 김성환 위원장은 빈소를 찾은 삼성 노동자들에게도 짧은 시간이 아쉬운 듯 노조 조직화 불씨를 살리기 위해 현장조합원을 만나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김성환 위원장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삼성SDI가 어떤 수를 써서든 김성환 위원장을 ‘감시’하고 싶은 심정은 당연할 듯 하다. 무노조 신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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