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하청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5명이 최근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미 한달 전부터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5공장을 중심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100여명 전원은 파업 도중 이미 해고됐다.

지난해 노동부는, 현대자동차가 울산, 전주, 아산 공장 전 업체에 속한 1만 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해 왔다는 판정을 세 차례에 걸쳐 내렸다. 이 판정을 근거로 사내 하청노동자들은 파업, 구속, 단식 등을 불사하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측은 이러한 판정을 받고도 “현대차와는 상관없는 협력업체 소속 제 3자들이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며 이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현대차측은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확실한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파업과 농성을 하는 일부 협력업체 노동자들이나 이들이 속한 비정규직노조와 대화를 할 이유는 없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는 상태다.


정부, 불법파견 판정 후 추가 행정 조치 없어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불법파견 판정까지 받은 현대차측이 ‘시정’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강경한 대처를 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분위기다.

노동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면서 현대차에 불법파견 개선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등 고용안정 문제는 전혀 언급없이 ‘완전 도급전환’ 등의 내용만을 담은 계획서를, 그것도 세차례나 날짜만 바꿔 제출했다. 이에 해당 노동사무소는 이같은 계획서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현대차를 고발 조치했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이에 대해 “노동부는 ‘불법’이라는 판정만 내렸을 뿐, 현대차가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비정규직 노조를 탄압하고 있는데도 경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마치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손을 놓고 있다”며 “직접고용 지시 등 추가적인 강력한 행정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노동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강선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실장은 애초 불법파견 판정 당시 노동부의 시정명령 자체가 매우 허술했다고 지적한다.

“노동부는 과거 케리어나 금호타이어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릴 때는 해당 불법파견 노동자들에 대해 직접고용을 하도록 시정명령을 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경우는 한두 달 후에 ‘불법파견 개선계획서’만을 제출하도록 했고, 하청노동자들의 직접고용 문제는 강제하지 않는 등 매우 허술한 조치만 취했다.”

노동부는 지난 2001년 캐리어가 6개 업체 하청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했다며 이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명령, 결국 2년 이상 근무한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토록 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금호타이어의 경우에도, 노동부는 시정명령에 해당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정규직노조가 적극적으로 회사에 요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로써 금호타이어도 불법파견 노동자 28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했다.

강선희 실장은 이와 관련 “현대차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개선계획서를 내는 등 불법파견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에 고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불법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을 지시하는 추가적인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규모는 ‘최대’ 행정조치는 ‘허술’

노동부는 지난해 4월 사내하도급 실태 일제 점검 후 ‘불법파견 관련 사내하도급 점검지침’이라는 내부 지침을 마련한 바 있다. 이 지침의 ‘파견기간 초과근로자에 대한 지도’라는 항목에는 “불법파견의 경우 2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가 원청업체 고용을 희망하는 경우 파견법상 고용의제(원청이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한 것)가 적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원도급자의 고용을 적극 지도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대차 경우, 노동부는 점검지침에 따라 ‘원청의 고용을 적극 지도’하기 위한 행정지도를 한 적은 없었다. 또한 앞으로도 추가적인 행정조치를 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과거에는 각 지방노동사무소들이 임의대로 판단해 직접고용 등을 지시하기도 했고 안하기도 했는데, 점검지침이 마련된 후 지침에 의거해 개선계획서를 제출토록 하는 것으로 일원화됐다”며 “점검지침에 고용의제 적용을 지도하기로 돼 있기 때문에 어차피 내용은 같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그러나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사실상 정부 손을 떠났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불법파견 고용의제 적용을 부인하는 최근 판례 경향 등을 감안할 때, 현행법상 원청업체가 고용의제 적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찰에 고발하는 것 이외에는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털어 놓으면서 “적극적으로 (직접고용을) 지도하기에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제는 노사간 교섭으로 푸는 방법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불법파견->직접고용’ 행정지도 절실

그러나 노동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파견법 도입 초기에는 불법파견에 대해 파견법상 ‘직접고용 간주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의 판례는 또 다르다. 지난해 11월26일 서울지법은, 그랜드힐튼호텔 청소용역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다가 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계약해지된 룸메이드 여성노동자 7명이 호텔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청구소송에서 원청이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불법파견 형태로 고용됐다 해도 파견기간이 2년 지난 시점부터 호텔이 이미 직접 고용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해직기간 임금 전체를 원청에서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법정다툼까지 갔을 때 노동자들에게는 ‘버틸 수 있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길게는 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그 사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하청노동자들은 계약해지를 당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소송에 이긴다 해도,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사용자확인청구소송이나 해고무효확인소송 등을 지난하게 진행한 소수의 노동자들만이 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뿐이다.

다시 말해, 노동부가 ‘과거’ 사법부의 판단을 이유로 ‘직접고용’을 강제하지 않는 것은, 불법파견으로 사용된 것만으로도 억울한 하청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것이 된다.

순천향대 조경배 교수(법학)는 이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개선과 함께, 행정지도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에도 직접고용 간주조항을 적용한다는 것을, 법개정을 통해 파견법에 명시해야 해야 한다. 그러나 법을 고치는 것에 앞서 노동부가 행정감독과 지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힘없는 노동자들이 법정싸움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더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자리조차 없다”며 절규하고 있는 현대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들은 지금 웃옷을 벗어던지고,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으며 저항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전업체 불법파견’이라는 획기적인 판정을 내렸던 정부는 칼바람 몰아치는 겨울 내내 전기도 난방도 들어오지 않은 농성장을 지키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놓아버려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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