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주, 송경동, 김용만, 문영규, 서정홍, 손상열, 문동만, 오도엽, 김기홍, 김명환, 김해자, 조태진, 김해화.

이들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하면서 시를 쓰는 ‘노동자 시인’들. 한 때 노동 시로 대표되는 노동문학은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무기로 인식되며 대접을 받았다. 특정 시인은 ‘스타’가 되기도 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일까. 90년대를 건너오고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노동 시는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시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다수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회는 불평등하고, 노동은 힘들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 시를 고집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일과 시’(93년 결성) 동인들이다. 철도노동자, 건설현장 일용노동자, 정비, 용접, 출판, 언론노동자 등 ‘일과 시’ 동인들은 모두 일하며 시를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인지 어느덧 12년째. 겨울이 그냥 가기 아쉬운 모양인지 한바탕 추위가 밀려온 지난달 29일 동인의 8번째 시집 ‘저 많은 꽃등들’ 출판기념회가 인천 ‘삶이 보이는 창’ 카페에서 있었다. 이날 인천노동자문학회 회원인 조혜영씨 첫 시집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마산, 순천 등 전국에 흩어져 사는 ‘노동자 시인’들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문학은 마음에 남아야 한다”

학생시절 문학축제와 비슷한 분위기다. 음악이 흐르고 다소 부끄러운 모습으로 손마디가 거친 40대 시인들은 무대로 나와 시를 낭송한다. 축하 인사들이 오고가고 술잔도 건네진다. 늘 그렇듯 사는 얘기, 문학 얘기로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일과 시’ 동인들은 모두 13명이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당시에는 8명이었는데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절반인 8명이 참석했다. 처음 동인을 만들었던 김기홍, 김해화, 김용만, 서정홍, 조태진, 김명환, 손상열 시인 등 ‘형님’ 멤버들이 그대로 ‘일과 시’를 지키고 있다. 지난 2002년 들어온 30대 중반의 문동만 시인이 가장 신입 회원이다.

12년을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시는 무엇이며, 이들이 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순천에서 올라온 김기홍(48) 시인이 먼저 말을 시작한다.

“한 마디로 명예를 위한 문학, 문학을 위한 문학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희망을 줄 수 있는 문학을 하죠.” ‘일과 시’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김기홍 시인.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시인의 삶은 고되지만 시를 통해 희망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문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제가 살아온 대로 또 느낀 대로 쓰려고 합니다. 가능한 이해하기 쉽게 생활 속의 말로 시를 표현합니다. 예쁘고 잘 다듬어진 시보다 다소 거칠더라도 진솔함, 땀과 눈물, 슬픔과 사랑이 녹아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고 있죠. 문학은 마음에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기홍 시인의 마음은 고스란히 그의 시에 담겨있다.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을 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8번째 시집 ‘저 많은 꽃등들’도 김기홍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또 한 명의 맏형 김해화(48) 시인. 그도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82년부터 공사장에서 철근노동자로 일하다가 97년 산재사고로 발목을 다친 시인은 3년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장해가 남은 채로 2000년 다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이 절망스러웠지만 김해화 시인은 끊임없이 시를 썼다. ‘시란 생활에서 나와 생활로 돌아간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어려웠던 그의 삶만큼이나 그는 많은 시를 내뱉었다. ‘일과 시’ 동인지(8권) 말고도 ‘인부수첩’(86년), ‘우리들의 사랑가’(91년),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2000년) 등 개인시집도 여러 권이다. 김해화 시인에게 시는 곧 삶이었다.

죽을 때까지 서서 견뎌야지
철근을 세우다가 철근에게 속삭인다
하루 철근 메고 났더니 어깨가 내려앉은 모양이야
너무 아프고 무거워서 내려놓고 싶어
철근은 말이 없다 안다
얼마나 단단해져야 말을 잃고
온몸으로 부딪혀 말끔하게 울음을 우는지
나는 아직 멀었다

- 김해화 ‘나는 아직 멀었다’ 전문 -

술 한 잔에 시인들 얼굴이 불콰해지다

몇 순배씩 돌아간 술잔들로 어느새 시인들의 얼굴이 불콰해진다. 제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철도노동자 이한주(41) 시인은 말을 잘 못한다면서도 시에 관한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는다.

“기쁘고 슬프고 분노할 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각이 떠오르면 시를 씁니다. 시는 특별한 게 아니라 살아가는 얘기거든요. 물론 진정성이 있어야죠. 삶과 시는 같아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시는 저렇게 사는 것처럼 쓰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래서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시인에게 시는 삶을 살아가는 ‘나침반’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철도노조 조합원이기도 한 이한주 시인에게 다소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시를 보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한데 시만 쓸 것이 아니라 직접 노동운동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인의 답변이 이어진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말을 잘 못하거든요.(웃음) 그러니 선동 뭐 이런 것은 영~ 꽝이죠. 다만, 시를 통해 그런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것, 이것도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노조에서 하는 집회, 선전전 등에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합니다.” 신기하게도 이한주 시인의 시에서는 이런 소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승강기 정비 일을 하는 문동만 시인. ‘일과 시’ 동인 중 가장 젊은 그이지만 시를 대할 때만큼은 ‘형님’들보다 더 진지하다. “우리들(일과 시)이 말하고 싶은 것은 뒤돌아보면서 나아가자는 것, 또 낮게 바르게 가자는 겁니다. 노동의 고단함을 견디는 것도 무조건 견딤과 참음이 아닙니다. ‘꿈꾸는 노동’이어야 하죠. 사회변화에 대한 믿음과 실천, 개인적 꿈이 아닌 ‘공공적인 꿈꾸기’를 함께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 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죠.”

‘고참 선배’ 조태진 시인도 말을 거든다. “우리가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순정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사실 역사의 격동기에는 한 획을 긋는 결정적인 대중적 정서이지만 요즘의 일상 속에서는 지켜내기에 급급한 현실이 됐죠. 설사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가는 사람들이 되고 싶습니다.”

선동과 구호만이 아닌, 삶을 기반으로 보여주는 어둠 속 등대 불빛 같은 희망. 이들이 직접 삶의 벼랑 끝에서 변화와 희망을 노래하는 노동자이기에 ‘일과 시’ 동인들의 시는 공감과 감동이 있다. 그리고 ‘잡음’ 많은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시를 쓴다
종일 서서 나는 시를 쓴다
일 년 열두 달
목장갑 까뒤집어 땀을 닦고
손비비며
망치 움켜쥐고 시를 쓴다

온몸으로 시를 쓴다

책상도 없이
종이도 없이
종일 서서 시를 쓴다

몸뚱이에 시를 쓴다

- 용접노동자 김용만 시인의 ‘날마다 시를 쓴다’ 전문 -

가끔 행복하고 자주 우울한 시대에서, 자주 행복하고 가끔 우울한 세상을 꿈꾸며 ‘일과 시’ 동인들은 12년 동안 쉬지 않고 희망의 노래를 불렀다. 이제 우리가 그 노래를 듣고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문의: 02-868-3097, 삶이 보이는 창)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