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산하 조직 간부들의 63.6%가 현재를 ‘위기’라고 진단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노동계를 제외한 사회 각계 원로 165명은 ‘희망선언’을 발표했다. 나는 상상력을 동원해 이 두 가지 사실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최근 노조운동이 정치세력화와 민중연대투쟁 등의 활동은 잘한 반면, 현장조직력이 약화되고 산별노조 전환이 미흡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가장 시급한 과제로 현장조직력 강화를 지목하면서 단기적 이익중심의 조합원 실리주의, 기업별 노조체계의 기본적 한계, 조직내 정치적·조직적 입장 차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전략 부재, 상급단체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 불신, 상급단체 간부들의 관료주의 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노조간부들은 민주노총이 앞으로 튼튼한 현장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되,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기업별노조운동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어찌보면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도 있고 사람과 관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꼼꼼히 그 함의를 되새겨 보게 된다.

한편 ‘희망선언’의 참가자들은 “우리 경제와 사회가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며 현 사회 난국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고용 없는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불안을 짚고, 사람중심의 경제ㆍ사회 발전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사회협약을 통한 국민적 힘의 결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당국 및 정치권에는 ‘2005 희망제안’을 실천에 옮기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기업에는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경영패러다임 구축을, 노동조합에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 자제 등을 각각 호소했으며, 이후 ‘2005 희망선언’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2005 희망포럼’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것은 종교계·시민사회·재계·학계·언론계·법조계 165명의 인사 가운데 비록 개인 자격이기는 하지만, 참여연대와 민변, 여연 등 대표적인 재야 시민단체 대표들이 노동계가 빠진 이 선언에 재계 대표들과 함께 핵심 주체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뉴패러다임센터를 이끌고 있고, 이형모 <시민의신문> 사장이 뉴패러다임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희망선언이 어떤 점에서는 노·사·정이 아닌 ‘시·사·정’의 사회적 협의의 모태로 구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과도한 해석은 금물이겠지만, 내친 김에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민주노총이 1월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틀 참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 더 이상 노동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양극화, 사회통합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신호는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제안자들은 노동운동과 사회지도층에 대해 “노조는 국민경제의 주요 주체로 기업과 함께 과로해소 및 산재예방, 일자리 나누기, 평생학습에 참여할 것”과 “지식인은 과거에 안주하고 분열에 앞장서거나 위기 상황 앞에서 몸을 숨기는 행태에서 벗어나 변화와 사회통합에 앞장서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을 주문했다.

그렇다. 노동계 역시 양극화와 빈곤화, 사회적 배제의 문제를 풀기를 원한다. 그리고 시민운동이나 사회원로들 이상으로 전투보다는 평화를 원한다. 어느 누가 매일 힘겨운 싸움에 매달리기만을 원하겠는가.

‘희망선언’의 제안자들은 지난해 11월21일 첫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보고됐다. 그 때는 정부의 비정규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난 뒤 한국노총이 천막농성에 돌입했고 민주노총은 총력투쟁을 펼치며 11월26일 총파업을 경고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공무원노조의 파업에 대한 대량징계 방침이 발표된 이후 각 지자체가 징계대상자를 추려내고 있던 시점이기도 하다. 시민운동의 지도자들이 그 시기에 정부 여당의 강경일변도 정책을 비판했고, 노동계와의 대화를 촉구했던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과거에 안주하고 분열에 앞장서거나 위기 상황 앞에서 몸을 숨기는 행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미래를 빙자해 갈등의 원인을 모른체하거나 이름만 내세워 위기를 봉합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헤아리기를 바란다.

민주노총이 조직의 ‘위기’를 냉정히 파악해야 하듯, 시민사회운동도 노동운동의 ‘희망’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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