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한진중공업 마산공장에서 촉탁직으로 근무하다 계약해지를 앞두고 자살한 고 김춘봉씨와 관련한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의 특별단체교섭이 30일 오전 6시45분 타결됐다.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은 29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한 마라톤 협상 끝에 △회사 사과문 작성 △사내하청 비정규 문제 해결 방안 마련과 노조활동 보장 △촉탁직 정규직 전환 등을 주요내용으로 합의를 이뤘다.

이번 교섭에서는 사내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됐다. 노사는 회사는 정규직 업무를 파견, 용역, 하도급으로 전환하지 않고 신규인력은 정규직을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노사는 사내하청노동자의 비율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며 처우개선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노사동수의 공동기구를 구성해 2005년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사는 촉탁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특수직종(간호사,영양사) 및 사무보조 촉탁계약자 25명은 촉탁 만료시점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희망퇴직 후 촉탁계약자는 담당업무의 지속적 운영시 현 고용형태를 정년까지 보장하기로 했으며, 단기소요 촉탁직은 현업무가 계속되는 한 현재의 고용형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노사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조활동 보장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이로 인해 원청이 해당업체를 계약해지하거나 해당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 밖에도 회사는 불법파견노동자를 사용하지 않으며 불법파견이 발견되면 해당업체와는 계약을 해지하고 해당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또한 회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작성하기로 했다. 유족보상과 장례대책은 별도 합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 대책위원회’는 곧바로 장례위원회로 전환하고 31일 오전 10시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 노동자장'으로 한진중공업 마산공장 정문 앞에서 영결식을 진행한다. 고 김춘봉씨의 시신은 마산 진동화장장에서 화장한 뒤, 가족 납골당에 안치된다.
 
한진중 1년새 노동자 3명 자살 부담…노조 요구 대부분 수용

이번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사망 사건이 4일 만에 마무리된 것은 지난해 10월 역시 한진중공업 고 김주익 지회장 사망 관련 협의가 1달 이상을 끌어온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일단 합의내용을 보면 금속노조 쪽에서 요구하던 내용이 거의 다 수용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외주화 추세가 지배적인 조선업종에서 현재 정규직 업무를 파견, 용역, 하도급 등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후 사내하청 규모를 줄여가도록 한 것은 매우 파격적이다.

이는 지난해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시작으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3명의 노동자가 자살한 것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느낀 회사쪽에서 적극적인 조기 타결 의지를 갖고 협상에 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고 김춘봉씨의 자살사건에 대해 긴급 진상조사단을 꾸려 지난달 27, 28일 양일간 조사를 했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30일 기자회견<사진>을 갖고 “김춘봉씨의 죽음이 사전에 충분히 예방될 수 있었지만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자본과 이를 방조해 왔던 정부의 ‘구조적 타살’이다”라고 밝혔다.



당과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은 한진중공업이라는 단위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정부가 진심으로 고 김춘봉 노동자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지금이라도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정부 비정규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회사쪽과 합의를 이뤄 장례를 치루기는 했지만 죽음 앞에 깊은 슬픔과 함게 견디기 힘든 분노를 느낀다”며 “그가 생명을 던지면서 남겨준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우리 사회가 당장 만들어 내야 할 것은 비정규직의 앞날에 대한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노사 특별단체교섭 합의서 전문.

1. 사과문 제출
회사는 고 김춘봉 사망관련 사고경위와 사망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사과문을 작성 후 노동조합에 전달한다.

2. 재발방지 대책

가.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
(1) 특수직종(간호사, 영양사) 및 사무보조직 촉탁계약자
회사는 특수직종(5명) 및 사무보조직(20명)에 대해서는 개인별 촉탁계약 만료 시점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보장한다.
(2) 희망퇴직 후 촉탁계약자(12명)
회사는 담당업무의 지속적 운영시 현 고용형태를 정년시까지 보장한다.
(3) 단기소요 촉탁계약자(5명)
회사는 업무 필요에 의해 단기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에 대해서는 현 업무가 계속되는 한 고용형태를 유지한다.

나. 비정규직 확대방지 대책
회사는 현재 정규직의 업무를 근로자파견, 용역, 하도급 등으로 전환하지 않으며 신규채용시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는 조합과 합의한다.

다. 사내협력업체노동자 대책
회사는 사내협력업체의 실태를 공개하고, 사내협력업체 노동자의 비율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며 처우개선에 최선을 다한다. 이를 위해 노사동수로 공동기구를 구성하여 2005년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

라. 사내협력업체노동자의 노조활동 보장
회사는 사내협력업체노동자의 노조가입 및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사내협력업체가 소속 노동자에 대해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계약해지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협력업체가 부당노동행위를 할 경우 노사가 구제방안을 강구한다. 또한 노조가입 및 노조활동을 이유로 물량을 축소하거나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다.

마. 불법파견노동자 사용금지
회사는 불법파견노동자를 사용하지 않으며, 노조와 합의되지 아니한 불법파견이 확인되었을 경우 불법파견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바. 회사는 마산공장 시설관리자에 대해 보직변경을 한다.
 
 
<1신>한진중공업, 비정규직 죽음 ‘책임 인정’

고 김춘봉씨 죽음 관련 첫 교섭…노조 "김주익 열사 투쟁 당시 합의만 지켰어도"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춘봉씨의 죽음에 대해 한진중공업 회사쪽이 잘못을 인정했다. 김씨의 유족으로부터 장례 및 보상 절차를 위임받은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은 29일 오후 2시 부산공장 본관에서 김씨의 죽음과 관련한 첫 교섭을 가졌다.

이번 교섭에는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 한진중공업 김정훈 사장을 노사 대표로 하고 노사 각각 10명이 교섭위원으로 참석했다. 참석했다.

교섭에 앞서 노조쪽 제안에 따라 노사양쪽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묵념을 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정훈 사장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회사쪽은 노조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요구에 대해 “회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노조의 또 다른 요구인 ‘재발방지대책’에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다시는 이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사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한진중공업 내 촉탁 계약직 노동자 뿐 아니라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회사가 처우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금속노조는 한진중공업이 지난해 11월 ‘김주익·곽재규 열사투쟁’ 당시 맺은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한진중공업 김정훈, 홍순익 두 사장이 28일 오후 마산 삼성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자살한 고 김춘봉씨 두 자녀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와 함께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창한 위원장은 “한진중공업지회는 지난해 김주익·곽재규 열사 투쟁 당시 맺은 합의에 따라 지난 5월 회사에 촉탁직을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했다”며 “회사가 이것을 이행했다면 한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고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11월15일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는 단체교섭에서 합의했다. 이 합의 내용 중에는 “금속노사가 작년 8월22일 맺은 ‘기본협약 및 조합통일요구안 합의사항’을 올해 3월부터 한진중공업에도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 이 ‘기본협약 및 조합통일요구안 합의사항’에는 “촉탁직을 3개월 이상 고용할 수 없으며 그 이후로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이에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지난 5월27일 회사에 공문을 보내 촉탁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인수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은 “지회장이 몇 차례 회사에 건의하기도 했는데 계약기간을 핑계대며 차일피일 미뤄오기만 하더니 결국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노사합의 미이행 논란과 재발방지 대책 등에 노사가 이견을 보이면서 당분간 고 김춘봉씨의 장례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조에 따르면 한진중공업 내 촉탁직 노동자는 40여명 규모이며 사내하청 노동자는 부산공장에 1천여명, 울산·다대포·마산공장에 1천여명 등 2천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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