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이 있는데 왜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공무원노조특별법을 따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 국제기준을 지켜라.”(한스 엥겔베르츠 국제공공노련 사무총장)
 
국제 노동계 지도자들과 열린우리당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들이 29일 오후 국회에서 만나 공무원노조법을 둘러싸고 1시간이 넘도록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 준수를 강조해 왔는데도, 정작 국제 노동계 지도자들은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을 지키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만남에는 한스 엥겔베르츠 국제공공노련(PSI) 사무총장과 론랜드 슈나이더 경제협력개발기구 노조자문위(OECD-TUAC) 사무부총장, 옌스 안드레센 아이슬란드국가공무원노동조합(SFR) 위원장, 크솔릴 응크슈 남아공지방공무원노조(SAMWU) 수석부위원장 등이, 열린우리당에서는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과 제종길 환경노동위 간사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국제 노동계 지도자들은 간단한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날카로운 질문을 잇달아 던졌다. 한스 엥겔베르츠 PSI 사무총장은 “공무원노조 법안을 만들기 전부터 국제노동기구(ILO)가 수차례 한국정부에 지원과 협력을 해주겠다고 타진했는데 정부가 이를 묵살했다”며 “한국 정부는 한국 헌법과 ILO가 인정하고 있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국제적 기준에 맞지도 않은 공무원노조특별법 같은 예외를 많이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곧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총회에서 이 문제를 반드시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론랜드 슈나이더 OECD-TUAC 사무부총장도 “TUAC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 후부터 한국의 노동문제를 눈여겨 봐왔는데, 96년 노동법 개정 후 2000년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노동권이 약간 진전된 것으로 보고됐으나 2002년 두 번째 보고서에서는 실망스런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내년 1월에 한국에 사절단을 파견해 노동권이 국제기준에 맞는지 다시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내년 1월중에 한국의 노동법이 국제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조목조목 따지게 될 것이고 한국정부에 ILO 협약 준수를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옌스 안드레센 아이슬란드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과 크솔릴 응크슈 남아공지방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도 각자 자신들의 나라에는 공무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고 있음을 설명하며 우리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크솔릴 응크슈 부위원장은 “남아공은 한국과 유사하게 독재를 겪으며 흑인들의 노조가입 금지 등 노동권의 제약이 심했지만 현재는 민주화와 더불어 노조활동과 노동권의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며 “노동기본권은 인권이며,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은 인권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이목희 위원장은 “마치 경찰이나 검사한테 신문을 받는 느낌”이라며 “한국은 집회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이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집회를 하다가 연행되기도 했지만 이는 현행법상 불법행위여서 그런 것일 뿐, 공무원노조법이 통과되면 그런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무원노조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가 ILO 등과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정부에 물어보고 제대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책임을 묻겠다”며 “이는 각 나라마다 특수한 사정이 있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를 벗어나 정치적 민주화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수구기득권 세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어, 반인권 악법의 대명사격인 국가보안법 철폐조차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국민들의 50% 정도만이 공무원들에게 단결권을 줘도 된다고 하는 데 비해 20% 미만이 단체행동권을 줘도 된다고 답하는 게 현실”이라며 “어느 나라에서도 완벽하게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나라가 없으며, 공무원노조도 일단 합법화 된 후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활동을 해서 행동권을 획득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종길 의원도 “정부여당이 이 정도 수준의 정책을 추진하는데도 야당에서는 좌파니 사회주의니 공격하고 있다”면서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원들의 말을 들은 국제 노동계 지도자 일행은 “국제기준으로 봤을 때 노동권 보장을 향한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노동권이 미흡한 인도네시아나 일본에 한국이 모범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국제 노동계 지도자들은 29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만난 후 곧바로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를 찾아 이석행 사무총장과 김영길 공무원노조 위원장 등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졌다. 30일에도 국회를 찾아 이경재 환경노동위원장에게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고,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31일에는 공공부문 노동자 집회에 참석해 국제연대를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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