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노동자를 살리려고 파견법을 만든 게 아니야, 있는 놈들 더 잘 살게 하려고 만든 거요.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가. 대통령도 공약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더 늘리겠다니, 이럴 수는 없어요.”

“자기네들도 자식이 있잖아요. 자기 자식들이 어느 회사에 파견노동자로 있다고 생각해봐. 물론 없겠지. 다 잘난 집들이니까. 당하지 않으면 절대 모르지. 빼앗겨 본 사람만이 이 심정을 알 거예요.”

22일 오후 서울의 한 찻집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호텔 룸메이드 노동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파견업종 전면 확대’ 내용이 담긴 정부 비정규직 법안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현실을 전혀 모르는 법안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규직-비정규직은 ‘천국과 지옥 사이’

화려한 호텔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객실을 청소하는 이들. 13년간 정규직으로 일했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파견노동자로 전락했다. 경영위기로 회사가 망하게 생겼으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업주의 말만 믿고 이들 여성노동자들은 ‘전적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르네상스호텔이 막 개장할 당시인 지난 88년부터 호텔을 집 안방보다 더 아꼈다는 룸메이드 노동자들은 지난 2001년 말,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삶이 변할지 예상조차 못한 채 파견노동자의 길을 걷게 됐다.

“월급이 반 이상 깎였어요. 내가 딸 하나 데리고 살아요. 지금 대학 공부시키는데 (내가) 정규직이었으면 우리 딸 잘 가르쳤을 거예요. 학비가 300만원인데, 내 월급이 고작 100만원에 못 미치니 정말 미치겠어요. 어디에 호소를 해야 하나요. 그 동안 부었던 적금, 보험도 모두 해약한 상태예요. 파출부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김옥희씨(가명)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려고 할 뿐이다.

4명의 룸메이드 노동자 가운데 3명이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집안의 ‘가장’이다. 룸메이드를 10년 이상 한 것도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런 이들에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이라고 말한다.
 
더 힘든 일을 하는데 임금은 절반이나 깎이고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 오래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이영미씨(가명)도 차라리 처음부터 파견노동자였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간의 삶 자체가 한 순간에 하류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쉰다.
 
이들은 매년 계약기간이 다가오면 두려움 먼저 앞선다고 한다. 더 낮은 임금을 들이대고 “남아 있을 것이냐, 일을 그만 둘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도저히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견이 전면 확대될 경우, 어찌됐든 자신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노동자들이 많을 것 아니냐며 정부 법안은 ‘보호’가 아니라고 못 박는다.
 
차별시정은 ‘그림의 떡’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차별이 큰 고통이라며 정부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불합리한 차별 금지’를 이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파견노동자들의 ‘싸늘한 분노’뿐이다.

“룸메이드 업무 자체가 모두 파견직으로 대체됐는데 우리는 누구랑 비교를 할 수 있죠. 이전에 정규직일 때 임금과 비교해도 되는 건가요?” 이들 룸메이드 노동자들은 “정부가 노동자를 바보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허탈해 한다.

그나마 노동조건이 낫고 차별을 비교할 수 있는 정규직과 함께 일하고 있는 사무직 파견노동자도 차별 금지 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대형 증권회사에서 웹 디자인 및 관리 업무를 보고 있는 파견노동자 김수연씨(가명)는 정부가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대체로 파견근로자는 파견업체와 임금 등 계약이 끝난 다음에 일할 회사로 출근합니다. 입사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이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근데 이미 저는 파견업체 요구조건에 수긍하고 입사를 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회사(사용사업체)에 파견된 근로자는 모두 2명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정규직이죠. 그렇잖아도 눈치를 보면서 일하고 있는데, 차별받고 있다고 정부기관에 신고를 하라구요. 1년 뒤에 1년 연장이 가능할지 안할지도 불투명한 상태가 우리 처지입니다. 그나마 편하게 일하려면 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죠. 차별 신고를 한다면 아마 ‘왕따’를 당할 것 같은데요?”
 
김씨는 어차피 1,2년 근무할 것이라며 꾹 참는 편이 사회생활 하기에는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노조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차별의 문제를 가지고 자신의 생존권(일자리)을 걸 수는 없다는 것이 파견노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당신들이 차별을 알아?”

임금과 노동조건은 그래도 ‘보이는’ 차별에 속한다. 그러나 일하는 곳과 계약을 맺은 사업체가 다른 파견노동자들에게는 인격적인 모멸감과 소외감 등 보이지 않는 온갖 차별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토로한다. “속 좁아 보일 수도 있지만 회사 회식이나 체육대회가 있는 날은 정말 미묘한 감정이 듭니다.” 김수연씨(가명)는 차라리 임금과 노동조건은 애초 정해진 것이니 참을 수 있지만 회식에 가지 못하고 명절에 선물을 받지 못할 때는 ‘굴욕감’마저 든다고 고백한다.

“명절 선물을 정규직이 하나씩 들고 가는데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괜히 저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모멸감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정규직이지만 SK에서 파견노동을 했던 왕종현 인사이트코리아노조 전 사무국장도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실감이 상당했다고 한다. “사업주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용업체) 정규직한테 받는 상처는 더 큽니다. 우리더러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느끼도록 합니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거죠. 시키는 일은 해야 한다는 주종관계 비슷한… 암담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해도 파견노동자들은 마땅히 호소할 곳이 없다. 왕종현 전 사무국장은 일을 하면서 불합리한 점이 있어 사용사업체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다고 한다. “넌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 너희 회사에 가서 얘기해라.”

호텔 룸메이드 노동자들도 비슷한 경우다.

“노동부에서 지난 5월 르네상스호텔이 불법(위장도급)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해 왔다며 우리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어요. 그렇지만 호텔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호텔 앞에서 전국여성노조와 함께 집회를 했죠. 그랬더니 호텔 직원도 아닌데 호텔 앞에서 업무를 방해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16년간 줄곧 이 호텔에서 일해 온 그들에게 “호텔 직원이 아니다”라는 ‘싸늘한’ 대답을 돌려줄 수 있는 상황도 파견노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들은 묻는다. 이런 차별도 정부가 시정해줄 수 있냐고.
 
“정부는 현실을 외면 말아야”

왕종현 전 사무국장은 파견노동자에서 정규직으로 단지 고용형태만 바뀌었을 뿐인데 “자신의 삶에 희망과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견노동자가 다른 계약직보다 조건이 나아 파견업종을 전면 확대한다는 것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소속감 없이 남의 사업장에서 주기적으로 해고를 감수하며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패배감에 젖게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건지.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배처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호텔 룸메이드인 박은숙씨(가명)도 정부가 현실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비정규직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어떻게 보호할까에 초점을 맞춰야죠. 더 늘리겠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러다 우리나라 망합니다. 법안을 만든 사람들이 단 한번만이라도 파견노동자로 일 해보길 바랍니다. 당하지 않고서는 모르거든요.”

“법과 제도는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법과 제도는 낮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파견노동자들의 눈빛들은 간절해 보였다. 너무도 고단한 자신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켜 주길 바라는 듯, 애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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