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달력을 받아보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아마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씩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짜들을 세어 볼 것이다. 일요일이 국정공휴일과 겹치는 날이 많을수록 “어떻게 이 한 해를 보낼까” 지레 아득함마저 밀려오게 마련이다. 반대로 이번 추석 연휴처럼 화요일 추석날 앞뒤로 낀 공휴일을 포함해 ‘주5일근무’를 하는 사업장이라고 하면 5일을 내리 쉴 수 있다는 기대감이란.

그런데 노동부 일일취업센터에서 근무하는 일용직 상담원들은 추석 연휴가 낀 9월이 지옥이다. 일당 3만9천원을 받는 일용직인데 휴일이 5일이나 되니 19만5000원이란 돈이 일당에서 날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7월부터 모든 관공서가 격주 휴무를 실시하는 탓에 다른 공무원들이야 여유 있게 여가를 즐기겠지만 일용직 일일취업센터 상담원들은 한 달 평균 2~3일의 일당이 삭감됐다. 그래서 9월에는 예전보다 약 40만원 정도 급여가 줄어들었다. 명절에는 집안 어른들 선물도 사야하고 차례도 지내야 해서 다른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명절 성과급은커녕 급여가 3분의 1은 줄어든 셈이다.
 
일일취업센터 상담원, 명절 연휴에 월급은 더 줄고

노동부 고용안정센터에서 구인구직연계와 상담을 담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직업상담원 뿐만 아니라 ‘일일취업센터 상담원’들도 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건설경기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이 대거 노숙자로 전락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노동부는 이들 일용근로자들의 일자리 알선을 도와주고 정보공유와 휴게 공간 마련을 위해 일일취업센터를 설치했다. 이후 전국의 건설현장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일일취업센터에서 일하는 48명의 상담원들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알선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일취업센터 상담원들은 직업상담원처럼 노동부가 직접 고용한 인원이 아니라 고용안정센터에서 개별적으로 채용한 인원들이며 계약직도 아닌 일용직이어서 각 지방노동청 소속의 직업상담원과는 또 다른 각종 차별을 겪고 있다. 이들도 노동부직업상담원노조에 30여 명이 가입되어 있지만 지난 2003년 직업상담원노조와 노동부의 임·단협 합의 때 그들의 고용안정 문제는 합의대상에서 제외됐다. 노사는 이후 일일취업센터의 처우 개선은 ‘직업상담원 제도발전 협의회’에서 논의하기로 했지만 채용과정 등의 차이로 직업상담원과 동일한 처우를 하는 것에 노동부는 난색을 표해 왔다.

그런데 최근 각 지방노동청은 건설일용직 취업알선을 맡고 있던 16개 일일취업센터 중 13곳을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폐쇄하면서 취업센터에 고용돼 있던 상담원들에게 해고예고 통보를 했다. 직업상담원노조가 이에 항의한 끝에, 각 고용안정센터에 분산해서 재고용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급여가 대폭 줄어들었다. 기존에는 포괄임금으로 120만원에 원천공제 후 실 수령액으로 100만원 남짓을 받았다. 그러나 재고용 되면서 일당으로 임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마저도 휴일 수에 따라 깎이게 된 것이다.

말이 재고용 약속이지 이렇게 급여수준이 ‘뚝’ 떨어지자 고용안정을 요구하던 노조 일일취업센터 조합원 33명 중 10여 명이 자진퇴사하기도 했다. 일일취업센터 폐쇄에 따른 구조조정 계획은 어느 정도 달성 된 셈이다.

저임금 등 열악한 처우에도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 알선을 위해 현장을 오가며 바쁘게 뛰고 있는 일일취업센터 상담원들은 그들 역시 노동부 직제 어디에도 없는 ‘일용잡급’신세로 불안한 노동을 해 왔고 오히려 처우조건이 개선되는 것은 고사하고 휴일도 즐거워 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던 것이다. 한 일일취업센터 직업상담원은 이렇게 말한다.

“4년 동안 일일취업센터에 근무하면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비록 임시일용직 일이라도 알선을 해주면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며 나의 손을 꼭 잡아주던 돌덩이 같은 그 투박한 손을 잊을 수 없습니다”며 “그래도 나보다 구직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내 직업에 대한 보람도 있기에 스스로 위로하며 오늘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자리마저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비참하게 합니다”

김영진 노조 부위원장은 “일일이 건설현장과 식당 등을 찾아다니며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구인구직을 했던 일일취업센터를 실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폐쇄하는 것은 상담원의 고용을 위협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장 힘든 시기인 동절기를 앞두고 이들 일용노동자들의 구인구직을 노동부가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기 안의 비정규직 차별’도 못보는 정부

열악한 공공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의 처지는 비단 일일취업알선센터 상담원뿐이 아니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계약직 노동자들. 그들은 올 여름 내내 정규직 전환 시험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에 따라 앞으로  570명, 사상 최대규모 정규직 신규채용을 한다.
 
3년간 세 차례 치러지는 정규직 채용 시험에서 최종적으로 탈락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고통지서’밖에 없기 때문에 계약직 노동자들은 생존을 걸고 시험을 준비했다. 그 때문인지 지난 7월31일 치러진 시험에서는 외부 응시자까지 함께 응시한 시험인데도 계약직 330명이 합격해 정규직이 됐다.
 
또 지난 18일 내부 계약직들만을 상대로 실시한 2차 정규직 전환 시험에서도 또 합격자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무하는 700여명의 비정규직 중 약 110명 정도의 일용직들은 최종적으로 불합격 처리되면 보따리를 싸야 하더라도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지는 계약직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내부 전환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3년 후 시험에 탈락한 계약직들과 함께 무조건 공단을 떠나야 한다.

정종우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3년 후 공단은 일용직들이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아웃소싱이나 파견 등으로 전환할 것이 뻔하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은 정부가 비정규직을 사용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기존 비정규직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더 나아가 간접고용으로 전락하게 하는 사실상 개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재계는 벌써 수년 째 ‘귀족노동자’로 치부되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를 지적하지만 정부기관이 직접 고용하고 있던 비정규직노동자들마저 이처럼 1년 단위 계약직, 일용직으로 나뉘어 정규직과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이는 앞서 대표적 사례들로 소개한 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무하는 기간제 노동자들 뿐 아니라 학교 기간제 교사, 영양사, 조리사들이나 각 지방자치단체의 일용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정부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한을 3년으로 확대하는 입법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계약직이나 파견직에 대해 차별대우를 해선 안 된다고 입법안에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고용하고 있는 일용직들부터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데, 정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원삭감과 해고의 칼날을 휘두른다. 정부가 사용하는 일용직들이 이러한데 민간업체의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들은 어떨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윤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민간기업들이 계약직을 3년 이상 고용하고 또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보는가? 그 답을 지금 정부기관 비정규직들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