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잃을 것도 없었다. 열린우리당의 비정규법안 관련 공청회는 질의응답도 없이 2시간도 안돼 파행으로 끝마쳤고, 비정규 대표자들은 ‘입법예고안 철회’를 요구하며 당의장실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16일 오후 2시 열린우리당 당사 1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되는 비정규법안 관련 공청회를 막고자 나섰다. ‘차별철폐대행진’ 종묘집회를 마친 비정규 노동자들이 속속 공청회장에 들어서서 좌석과 통로를 메웠다. ‘단결투쟁’ 조끼를 입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대거 등장하자, 공청회장의 열린우리당과 정부 관계자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공청회가 시작된 지 20분 뒤인 2시 40분경,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상황은 일순 험악하게 돌아갔다.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경찰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공청회장의 노동자들은 ‘우르르’ 2층 당의장실로 달려갔다.
 

 
“니기미, 공청회 왔으면 그것만 할 것이지…”
 
“이 새끼들 다 끌어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당 의장실을 기습 점거하자, 당황한 열린우리당측은 경찰력을 동원해 이들을 끌어내려 했다.
 
“노동자를 무시하고 왜 끌어내냐. 책임자 나와라.” 박대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이하 전비연) 의장 권한대행이 경찰들에 의해 사지를 붙잡혀 끌려나오고 있었다. “비정규직 남용을 규제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전체 노동자 다 죽이는 최악의 법안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얘기는 왜 한마디도 없냐.” 박 의장 권한대행은 거침없이 항의했다.
 
건설노조, 화물연대 등 6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대표자들이 연행되지 않도록 2층 복도 입구를 막아섰다. 전경들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2층 소회의실과 국참본부장실의 얇은 합판벽이 깨졌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완강했다. “더 이상 못살겠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노동법 개악 철회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노동자 다 죽이는 비정규 개악안 저지하자!” 구호와 함께 ‘철의노동자’ ‘단결투쟁가’를 외쳤다.
 
“니기미, 공청회 왔으면 그것만 할 것이지. 왜 소란이냐.”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의 막말이 곳곳에서 오갔다. “니들만 애국자냐. 나도 투쟁해봤어.” 일부 당직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노동자들과의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휘발유통에 불을 붙여라. 이 새끼들아.” “책임자 나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찾아와 보자는데 왜 안나와, 선거 끝나니까 주인행세냐.”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이내 복도를 막아서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열린우리당은 전국의 비정규 노동자의 외침과 절규에 귀 막은 채,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고 있는 정당이다. ‘보호’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노동자 말살의 야만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자.” 김진억 민주노총 비정규국장은 경찰을 동원해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을 끌어내려는 열린우리당의 ‘반노동자’적 행태를 비난했다.
 
오후 3시 30분경, 열린우리당사 2층에서 노동자들과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당사 밖에선 심각한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열린우리당 당직자의 폭언을 들어보자.
 

 
“썅년아, 너는 뭔데” 우리당 당직자의 ‘막가파’ 폭언
 
노동자들의 기습 농성에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구사대 투입해서 싹 쓸어버려야 돼.” 대화 중에 나온 한 당직자의 말은 노동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문경근 기획실장은 이 당직자의 말을 듣고 가만있지 않았다. “정부 여당이 그렇게 마음대로 이야기해도 되나.” “노동자들의 민원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네들은(노동자들) 우리 안 찍을 놈들이니까. 필요 없다.” 돌아온 답은 기가 막히고, 더욱 더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곁에 있던 이소연 노무사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이 당직자는 한 술 더 떴다. 아니 막 나갔다. “썅년아, 너는 뭔데 끼여 드냐.”
 
부근에 있던 노동자들은 막말에 성희롱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이 당직자의 폭거에 항의했다. “해도 해도 너무 심하구만.” “빨리 사과해라. 당직자가 그 따위로 막말해도 되냐.” 곳곳에서 몸싸움과 입 싸움이 벌어졌다. 다른 당직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당직자는 맛이 간 듯했다. “좆 까는 소리 하지 말고, 됐어 네들 알아서 해.”
 
문 실장이 ‘사실관계’를 재확인해주는 순간 열린우리당의 또 다른 당직자가 말을 거들었다. “어느 당직자가 그렇게(네들은 우리 안 찍을 놈들) 말할 수가 있겠냐. (기자들) 소설 쓰면 안돼요. 그거 다 지어낸 얘기라.” 이 당직자는 자신의 신분은 물론, 폭언을 일삼던 당직자의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의 고약한 발언에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60여명의 노동자들은 3시 30분경 당사 앞에 연좌한 채 열린우리당의 ‘반노동자’적인 작태와 당직자들의 폭언을 성토했다.
 
화물연대 전북지부의 한 간부는 “화물노동자들 알게 모르게 죽어가고 있고, 운행을 하면 할수록 적자다. 비정규직 철폐하면 되는 데 무슨 공청회냐. 비정규철폐에 앞장서 줄 정당이 오히려 백성들의 피와 땀도 모자라 이제 뼈까지 짜내려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노무현 대통령 미국 갔다 오더니 완전히 맛이 갈 때부터 알아봤다.” “총선 때 열린우리당 찍어줬더니 지금 작태가 너무나도 한심하다.” “여당의 당직자들이 이런 수준인지 참으로 놀랍다.”
 
같은 시각, 열린우리당의 비정규직 법안 관련 공청회는 서둘러 정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목희 의원은 공청회의 마무리 인사를 하며 노동자들의 당의장실 점거사태에 대해 발언했다. “당에서 빨리 끝내 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해서, 일찍 마치겠다. 열린우리당이 대화할 조건이 충분한데도, 그분들(노동자들) 심경은 이해하나 유감이다.”
 
오후 4시경, 당의장실 2층의 경찰병력이 철수했다. 노동자들도 합의에 따라 비정규노조 대표자들만 남고 조합원들은 건물 밖으로 물러났다. 노동자들은 열린우리당에 대해 ‘유감’을 넘어 ‘무감’에 빠져있는 듯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법률안을 가지고 ‘보호’를 하겠다니. “씨발놈들. 휴~우.”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우리의 투쟁의지 확실히 보여주겠다”
 
16일 비정규직들의 분노는 열린우리당 기습 점거농성으로만 표출된 것이 아니었다.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에서 시작된 비정규직들의 ‘차별철폐대행진’.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출발한 200여명의 노동자들은 전태일열사기념동판을 지나 종묘공원으로 향했다. 애초 오후 6시까지 예정되어 있던 이 행사는 오후 1시 종묘공원에서의 약식 집회로 마무리 되었다. 오후 2시 열린우리당 대회의실에서 ‘비정규직 법안관련 공청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비정규 개악안에 대한 연사들의 투쟁 발언수위는 대단히 높았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하반기 비정규 투쟁의 대격돌이 예상된다. 투쟁으로 돌파하자”며 “열린우리당의 공청회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우리의 힘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정규직 다 없애고, 비정규직 되어 앞으로 당해야 할 많은 시간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오늘 열린우리당에서 우리의 투쟁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자”고 말했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어진 투쟁사에서 “10월초 비정규직 입법안이 예고되면 환노위에서는 10월말이나 11월초에 본격 논의가 될 것이다. 쟁점이 될 때 대응하면 이미 늦는다”며 “지금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투쟁을 조직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결연한 함성은 매 연설마다 넘쳐흘렀다. 200여명의 노동자들은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아 보였다. “수 십 년, 아니 무기징역을 받더라도 투쟁하겠다”는 김달식 화물연대 부위원장의 발언은 모든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오전 비정규차별철폐 대행진 집회에서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각오와 결의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오후 8시, 당의장실을 점거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을 지원하러 달려온 30여명의 노동자들은 열린우리당사 입구에서 전경들에 막혀 당사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었다. 
 
“왜 못 들어가게 막냐” “하늘같이 받들겠다면서 우리는 국민이 아니냐” “음식물도 전달을 못하게 하다니”…. 당사 출입을 막는 열린우리당과 전경들에게 노동자들은 거칠게 항의했다.
 
“열받고 울화통이 터진다”
 
“한마디로 개판이다. 비정규 확대법안에 맞서 결연히 싸워나갈 것이다.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제약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시설관리노조의 한 조합원은 “굿모닝신한증권에서처럼 노조설립에 계약해지와 각종 노동탄압을 자행하는 자본가와 정부의 비정규확대 등에 맞서 더 이상 굴종의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늘 정말 열 받고, 울화통이 터진다.” 화물연대의 한 지부장은 “노무현 뽑고 잘되기를 바랬지만, 우리에게 닥친 것은 노예이기를 강요하는 것뿐이다”며 “더 이상 속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보랏빛 감언이설에 우리는 속았습니다. (중략) 비정규직은 보호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권리를 찾고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습니다.” 박대규 전비연 의장권한대행의 ‘편지글’은 지원 나온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의를 더욱 높였다.  
 

 
오후 9시 30분경, 30여명의 노동자들은 ‘단결투쟁가’, ‘파업가’를 부르며, 매일 오후 2시 열린우리당사 앞에 모여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돌아서는 노동자들의 등 뒤에는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습니다’는 열린우리당사 벽의 현수막이 흉물스레 펄럭이고 있었다. ‘이제는 속지 않는다’ ‘차별을 철폐하자’.
 
비정규 노동자들의 ‘차별철폐’ 함성과 노도와 같은 투쟁은 그렇게 밀려오고 있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