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늘이다. 이렇게 끄적거리고 있는 오늘이 아니고, 이렇게 끄적거린 이 칼럼이 게재되는 그날이다. 드디어 2024년 3월12일 오늘,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대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된다. 하루를 남겨두고 대법원 재판부가 갑자기 선고 연기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전에 금속노조 간부로부터 ‘별일 없이 선고될 것이냐’고 묻는 전화가 왔는데, 나는 ‘아직까지는 별일 없다’고 대답해 줬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지난주 피고(현대제철)가 대법원에 선고연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래서 걱정이 돼 문의하는 것일 텐데, 원고들이 속한 지회로부터도 연락이 왔었다. 그만큼 오늘을 기다렸던 것이다.

일요일이던 지난 10일에는 일간지 법조출입기자가 전화해서 ‘어떻게 예상하느냐’고 물었다. 원고 당사자들과 노조는 당연히 대법원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돼 승소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믿으며 ‘선고가 연기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 소송대리인인 변호사에게 전화했지만 기자의 질문은 그렇지 않았다. 12일 대법원에서 선고될 사건이 두 건인데, 각각 원고가 몇 명이고, 어째서 별도로 나눠 소송을 진행해 온 것이며, 사건별로 청구취지가 다른 이유는 무엇이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보는지 등.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보도하기 위해 필요한 팩트에 기자는 관심이 있었다. 원고 노동자들과 노조, 그리고 나는 대법원 선고가 ‘오늘이다’하고 있지만, 기자는 사건 내용과 판결 결과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인데, 뭐 그렇다고 원고 노동자들과 내가 어떻게 선고되든 연기되지 않고 오늘 선고돼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당연히 대법원에서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로 판단해 원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체절 근로자지위가 인정돼야 한다. 이렇게 당연히 대법원에서 판결돼야 한다고 보기에 원고 노동자들과 노조는 오늘 선고되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고, 이것은 소송대리인인 나도 마찬가지다.

2. MES(생산통합관리시스템)다. 이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서 원청 현대제철이 원청 노동자들은 물론, 사업장 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작업 수행을 통제·관리했던 것인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원청 사업주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수행을 지시하는 등 지휘명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광주지법 순천법원에서 법정에서 변론하고, 현대제철 순천공장에서 현장 검증하면서 이렇게 반복 주장했다. 당시는 포스코 광양제철 사내하청 사건이 1심 순천지원에서 파견근로가 아니라며 패소해서 광주고등법원에 항소한 상태였다.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제철소의 사내하청으로서 크레인 등 작업을 MES를 통해서 하고 있던 터라 포스코 사건에서 파견근로로 인정하지 않았던 순천법원에서 MES를 통한 원청의 통제, 관리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으로 전향적으로 인정해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차례 재판부가 변경되고, 수도 없이 변론을 진행하고서 마침내 1심 판결이 선고됐다. MES를 통한 원청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지휘명령을 인정한 최초의 법원 판결이었다. 크레인 작업자뿐만 아니라 MES를 통해서 작업이 수행되는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사내하청 공정 모두가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단됐다. 원청 노동자와 혼재해서 작업하지 않아도 MES를 통해서 원청 사업장 내에서 작업을 수행한다면 파견근로라고 보는 것이니 이제 웬만해서는 이 나라에서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파견근로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리였다. 이 판결이 나오자, MES를 통한 원청의 통제, 관리를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며 법원 판결이 부당하다는, 경총 등 사용자들 단체의 주장이 쏟아졌다. 이 법원 판결 법리가 최종 판례 법리로 인정되기라도 하면 이 나라에서 더는 사내하청은 존재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이런 사용자 자본을 대변해서 주장했던 학자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하도 요란해서 혹시 상급심 법원이 이런 주장에 넘어가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그러나, 구두로든, 무전으로든, MES로든 원청이 지시해서 사내하청노동자가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원청 사업주가 사용사업주로서 지휘명령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아닐 수 없고, 당연히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로 인정돼야 한다. 이 사건 1심 판결이 나온 뒤, 광주고등법원은 포스코 사건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파견근로라고 판단했다. 광주고등법원도 MES를 통한 원청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지시를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포스코 사건에서 광주고등법원에서 파견근로라는 판결이 나온 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인 나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는 현대제철 사내하청만 유별나게 MES를 통한 작업수행이 파견근로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방식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의 경우 파견근로로 인정한 것이니 말이다. 항소심 광주고등법원에서도 1심에서 판결한 대로 MES를 통한 현대제철 순청공장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라고 판결했고, 이에 불복해서 피고 현대제철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바로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오늘이다. 그런데 현대제철 사내하청 사건 재판이 진행되던 중, 앞서 진행했던 포스코 사건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었다. 광주고등법원이 판결한 대로 포스코에서 MES를 통한 사내하청 근로를 파견근로로 대법원은 판결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고 노동자들과 노조는 현대제철 사내하청 근로도 대법원이 파견근로로 인정하는 판결을 할 것이라고 여기고 오늘을 기다렸다.

3. 오늘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은 불법파견 주장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운동이 처음부터 이렇게 불법파견 투쟁으로 전개됐던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조를 조직해서 투쟁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원청 현대자동차가 실질적으로 근로계약상 사용자라고 주장해서 투쟁했다. 원청 현대자동차가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라며 불법파견을 주장해서 투쟁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 당시 사내하청노조를 조직해서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대한 드높은 결의를 가지고 있었던 비정규직 활동가의 눈으로 본다면, 오늘 나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렇게 파견근로라고 주장하면서 법적 투쟁하는데 못마땅하게 볼 것이 분명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003년 노조를 조직했을 때부터 변호사로서 투쟁을 변호하고 변론했던 나도 현대자동차가 실질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라고 주장했었다. 물론 파견근로라며 불법파견을 주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그 주장을 덧붙여 주장하긴 했다. 불법파업을 했다며 업무방해로 구속·기소된 비정규직 노조간부의 형사재판에서, 불법파업으로 사내하청업체에서 징계해고된 비정규직 노조간부의 해고무효 사건 등 민사재판에서 나는 수도 없이 그렇게 주장하고 덧붙여 주장했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수백 건의 재판에서 주장하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법원의 판사도 주장을 듣지 않았다. 원청 현대자동차와 도급계약을 체결했으니 사내하청업체의 소속 노동자는 원청 현대자동차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유죄 판결하고, 각하하고 기각했다. 그랬던 것이 2007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처음으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근로를 파견근로로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고, 이후 2010년 7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근로를 대법원이 파견근로에 해당할 수 있다며 최병승 사건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그 뒤 2010년 말 현대자동차에서 약 2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견근로를 주장하며 원청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이러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소송에 크게 영향을 받아 소송한 것이다. 그동안 사측의 압박 등 여러 가지 사유로 많은 원고들이 소 취하하는 일도 있었고, 이러한 상태에서 사내하청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소송을 계속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이다. 현대제철에서 사내하청 노동은 파견근로라고 인정받는 날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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