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리운전기사인 ㄱ씨는 지난해 봄 배차를 받아 전동휠을 타고 이동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넘어져 양쪽 무릎을 다쳤다. 걷기 힘든 정도의 통증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집에서 요양했지만 낫기는커녕 더욱 악화됐다. 결국 지난해 7월21일 병원에서 ‘양측 월발성 무릎관절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10년간 대리운전기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동시 항상 킥보드와 전동휠 등을 이용한다. 이동시 완충장치가 없어 양쪽 슬관절과 주관절이 휜 상태로 노면 상태와 턱에 따라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다가 사고를 계기로 질병이 발병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이동시 경로가 매번 달라지고, 노면에 의한 충격이 지속적이라고 볼 수도 없어 업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승인했다.

사고 555건 중 532건 승인 , 대부분 ‘교통사고’ 추정

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지난해 7월 대리운전기사의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이 폐지된 뒤 접수된 업무상 질병 3건이 모두 불승인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재보험 확대의 취지를 고려해 전향적인 산재심사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근로복지공단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7월1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대리운전기사의 산재신청은 558건이다. 이 가운데 업무상 사고는 555건으로, 532건이 승인됐고 23건이 불승인됐다. 승인율은 95.8% 수준이다. 2022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업무상 사고 산재승인률(96%)과 비슷하다.

업무상 사고가 어떤 유형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공단 통계에 따르면 신청 558건 중 496건이 업무수행 중 사고다. 대기 중의 사고 2건, 휴게시간 중의 사고 1건이다. 공단 관계자는 “업무수행 중 사고를 대리운전기사 업무에 비춰 운전 중 사고, 즉 교통사고로 볼 여지가 있지만 특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산재신청이 3건뿐인 업무상 질병 산재승인율의 경우 따지는 게 큰 의미 없지만, 대리운전기사를 비롯한 비정형 노동자가 확대하고 있는 만큼 업무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년 야간 대리운전기사 ‘뇌경색증’도 불승인

본지가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을 통해 불승인 3건 판정서를 살펴본 결과 불승인된 또 다른 사례는 이런 대목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15년 경력의 또 다른 대리운전기사 ㄴ씨는 지난해 7월17일 야간 일을 위해 집을 나서던 중 힘이 빠지고 어지러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상세불명의 뇌경색증’ 진단을 받은 ㄴ씨는 업무상 질병 산재를 신청했다. 장시간의 야간 대리운전 업무로 병이 났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 평균 8시간, 주당 5~6일, 한주 40~48시간가량을 일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휴게시간은 따로 없고 발병 하루 전까지 특별한 사건도 없었다. 평소 혈압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약을 따로 복용하진 않았다고 한다. 공단은 “야간근무로 인한 교대제 업무가 확인되지만 근무시간을 고려할 때 업무적 요인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업무와 상병 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불승인했다.

판단에 영향을 준 것은 업무시간으로 보인다. 조사에 따르면 발병 전 12주간 업무시간은 주당 평균 26시간22분, 4주간 1주 평균 22시간42분으로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단기부담 요인이나 만성과로 인정기준에 미치지 못 한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야간근무에 따른 교대가 있었지만 근무시간이 짧아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되레 고혈압이 있었는데도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공단은 지적했다.

야간·교대·장시간 노동에 감정노동
“대리운전기사 업무 특성 살펴야”

전문가들은 대리운전기사를 비롯한 비정형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확대 취지를 살려 업무특성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3건의 사례로 판정의 경향성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르다”고 전제하고 “다만 대리운전이 주로 야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야간노동 자체의 문제, 천차만별이지만 일정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한다는 점, 그리고 투잡을 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는 점 등 업무상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취한 고객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감정노동 스트레스의 수준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 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류 이사장은 “이번에 뇌심혈관계 불승인 한 건이 올라왔지만 비슷한 질병으로 산재신청이 추가될 여지가 있고,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행정당국이 선제적으로 관심을 갖고 실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쪽의 관심도 필요하다. 현재 대리운전노조 등 관련 단체가 업무상 사고 처리를 지원하고 안전한 대리운전 노동을 위한 단체협약 등을 제안하고 있지만 업무상 질병과 관련한 접근은 미흡한 편이다. 노조 관계자는 “업무상 사고와 과도한 고객의 갑질 등에 대항하는 작업중지권 등을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업무상 질병 승인 신청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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