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후 렛츠런파크에서 열린 2024년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 참석자들이 노동의례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한국노총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유연화와 직무·성과급제를 노동개악 정책으로 규정해 저지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노동기본권 향상 투쟁에 전 조직적 역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전직 임원 금품수수 의혹과 건설 노동계 비리 문제로 드러난 조직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범죄경력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규약에 추가했다. 22대 총선에서는 친노동 후보를 지지하고 반노동 후보를 심판하는 선거투쟁에 나선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한국노총은 28일 오후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2024년도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대정부 투쟁 방향을 포함하는 사업계획과 조직혁신안을 담은 규약 개정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집행부는 상임부위원장·부위원장 인준에 이어 첫 번째 심의 안건으로 규약 개정안을 올렸다. 사업계획보다 앞에 배치하면서 규약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한국노총은 전직 임원 금품수수 의혹 사건과 옛 건설산업연맹 조직 제명 등 건설 부문 노조에서 불거진 비리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가맹조직의 민주적 조직 운영을 지도·감독하기 위해 한국노총 중앙차원의 개입력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조직혁신위원회를 꾸려 혁신안을 논의했다. 같은해 9월부터 12월까지 규약 및 규정개정위원회를 가동해 혁신안의 현실화 방안을 준비했다.

범죄 인지시 즉각 직무정지

규약 개정안에는 임원선거 관리와 회원조합의 민주적 운영을 강화하기 위한 14개 혁신 방안을 담았다. 범죄 경력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이 눈에 띈다. 현재 한국노총은 노조활동 중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중앙집행위원회 의결 등을 통해 피선거권을 부여할 수 있게 돼 있다. 개정안에는 성폭력 범죄자를 피선거권 제한 사유에 포함하고, 기존에 있던 피선거권 특별 사유 인정조항은 삭제했다. 범죄 경력자는 무조건 피선거권을 제한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피선권 제한은 연맹·지역본부 간부 모두에게 적용한다.

윤리위원회의 활동과 권한은 더욱 강화했다. 조합비 횡령·금품수수·성범죄 등 사건접수 즉시 해당자에 대한 직무정지를 할 수 있도록 윤리위에 직무정지 의결권과 진상조사, 징계방안 권고 기능을 부여했다. 다만 권고 이행은 연맹과 지역본부 차원에서 몫이다.

조직 간 갈등을 예방하는 조처도 포함했다. 회원조합 신규 가입조건이 기존에는 1만명이었으나 앞으로는 2만명이다. 조합원 중 10%는 한국노총 가입 이력이 없어야 한다. 연맹을 깨고 새로운 연맹을 설립하기 까다롭게 만들었다.

위원장 선출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인단 규모를 지금보다 늘리기 위한 첫걸음을 뗀 점도 눈에 띈다. 현재 선거인대회 선거인단은 의무금 납부 기준으로 조합원 200명당 1명을 배정한다. 김동명 집행부는 100명당 1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선거인단 규모는 7천명을 넘는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는 온라인 회의·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했다. 7천명이 한날 한자리에서 회의를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선거인단대회를 할 수 있게 하려는 조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앞으로 내부 숙의·토론을 거쳐 선거인단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며 “김동명 집행부 임기 내 완료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에 불이익한 사회적 대화 합의 없을 것”

한국노총은 올해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기치 삼아 사회적 대화와 조직투쟁을 병행하기로 사업방향을 정했다. 고용안정과 노동권사각지대 해소,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목표로 △주 4일 근무제 도입 및 장시간 노동 근절 △정년연장 △최저임금 인상 및 제도개악 저지 △임금불평등 구조 개선 △산업안전보건 예방 및 보상 강화 등 10대 정책과제를 추진한다. 플랫폼·특수고용직을 대상으로 조직화 사업을 집중하고, 공무원·교사 30만명을 노조로 포섭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고 총선에서 친노동 후보 당선 운동을 한다는 기본 방향도 제시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과거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아픈 기억도 있는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조합원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합의나 전체 노동자의 삶을 악화시키는 양보를 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정부의 들러리로 사진 찍는 한국노총의 모습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다음달 중순 임시대대를 열고 총선 정치방침을 정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원칙은 친노동자 후보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반노동자 후보에 대해서 철저히 심판하는 것”이라며 “총선에 임하면서 현장의 자존심과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근본적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사를 마친 후 “준비하지 않은 발언을 하고자 한다”며 정치방침과 대정부 투쟁 방향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재차 밝혔다. 김동명 위원장은 “탄압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노동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이고, 지난 1년 투쟁의 시기 동안 조직 안팎의 압박 속에서 정말 힘들었다”며 “총선(정치방침 논의)에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갈등, 내부적 토론이 있을 테지만 노동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개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내고 “정부는 노동계를 비리집단, 혐오세력으로 낙인찍고 자주적인 노조를 회계공시와 국가보조금 삭감으로 회유·겁박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며 “한국노총은 다시, 현장의 힘을 모아 반노동정책을 심판하고 노동중심성을 되찾기 위한 대장정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박갑용 식품산업노련 위원장, 최응식 외기노련 위원장을 상임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총선 준비로 사임한 이충재·김현중 전 상임부위원장의 공석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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