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가 지난해 1월12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뒤 택배노조가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원청 사용자성’에 대한 사법부 판단의 방점은 ‘노동 3권’에 찍혔다.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 소송의 1·2심은 일관되게 헌법상 노동 3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택배기사가 CJ대한통운(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인 근로계약의 당사자 여부로만 사용자를 단정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단체교섭 거부’ 부당노동행위 최초 인정

25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CJ대한통운 부당노동행위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원청의 지배·결정 권한에 대한 법리를 16쪽에 걸쳐 구체적으로 설시했다. 서울고법 행정6-3부(부장판사 홍성욱·황의동·위광하)는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CJ대한통운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단체교섭 당사자는 ‘개별적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에 국한된다는 CJ대한통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 3권을 토대로 ‘지배·개입’뿐만 아니라 ‘단체교섭 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도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청을 ‘지배·개입’ 금지 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인정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는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2심 설명이다. 재판부는 “부당노동행위는 근로계약상의 위법행위가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특유한 위법행위”라며 “현실적인 근로계약 당사자 여부로 사용자 개념의 기준을 도출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조건 결정권자 불응시 단체교섭권 무력화”

특히 단체교섭 대상인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자와 단체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집단적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교섭권이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CJ대한통운이 주장한 ‘단체협약 체결 우려’도 일축했다. 재판부는 “원고(CJ대한통운)가 사용자로 인정되더라도 발생하는 구체적 의무는 참가인 조합(택배노조)과의 교섭에 성실하게 응하는 것일 뿐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까지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실질적 지배력설’을 적극 인정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가 사용자가 된다’는 학설을 재차 확인했다. CJ대한통운은 집배점이 독립적인 물적·인적 시설을 갖춰 서브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지배·결정권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 이후 서브터미널 운영시간과 월 배송물량을 기준으로 집배점에 분류작업 비용을 지급하는 점 등을 근거로 여전히 지배·결정 권한을 행사했다고 봤다.

교섭의제 모두 원청 결정 “원청 실질적 지배”

택배노조가 단체교섭 의제로 요구한 ‘서브터미널 배송상품 인수시간과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은 CJ대한통운이 결정하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은 집배점에 공통적으로 당일배송의무, 의무이행 CS(고객서비스) 평가 등을 부과했다. 재판부는 “(노조 의제는) 원고가 구축한 유·무형의 택배시스템 운영방식에 수정을 가하거나 원고가 마련한 위수탁계약의 내용·매뉴얼·지침 등의 변경이 필요한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작업환경 개선·주 5일제 실시·급지수수료 인상·사고부책 개선 등 나머지 4개 의제도 CJ대한통운이 직접 응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헌법의 노동 3권 보장 취지를 중요하게 고려한 점에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노조를 대리한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항소심은 현실적인 근로계약 당사자로 사용자 개념의 기준을 도출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했다”며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교섭에 응해 사용자 의무를 다하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이 상고 의사를 표명해 상고심에서 최종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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