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소송 포기하고 자회사 가거나, 일자리 잃거나”. 이런 제목으로 22일 매일노동뉴스는 “한전이 도서 발전노동자를 자회사인 한전MCS로 전적을 조건으로 항소심 포기를 압박하고 동시에 30년간 이어져 온 하청업체와 수의계약 종료를 결정”하면서 “30여년간 도서지역에서 전력발전 업무를 맡아 온 도서지역 발전노동자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기고도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6월 JBC 노동자 145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등 소송에서 불법파견이라는 1심판결이 나온 뒤 한전은 민간상생협의회를 만들었다. 그 뒤 이 협의회에는 한전, JBC, JBC도서발전노조(위원장 박정윤)와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지부장 이재동)가 합류해 도서 발전노동자의 고용문제를 논의해 왔다. 협의회 회의에서 “도서전력지부의 경우 직접고용을 원하지만 불가피하게 자회사로 전환할 경우 소송을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JBC도서발전노조는 한전에서 모든 인력의 고용을 보장하고 처우개선을 약속한다면 자회사 전적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비쳤”으나, 한전은 4차 회의를 끝으로 지사별로 설명회를 강행하면서 자회사 전적동의서를 받겠다고 밝혔다. 한전의 자회사 한전MCS는 전력 검침과 전기요금 송달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이 소속된 자회사로서, 한전의 하청인 JBC보다 처우가 하락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전 자회사 중 민영화 1순위로 꼽히는 곳 중 하나여서 고용이 지금보다 불안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2.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파견근로라고 주장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하게 되면, 이 나라에서 빈번히 연출되는 풍경이었다. 하청노동자를 대리해서 소송하다가 수시로 겪는 일이기도 해서 ‘또인가’하면서 나는 기사를 읽었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서는 자회사 전환이 하청노동자들의 파견소송에 대한 사용자들의 대응 무기가 돼 버렸다.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통해서 수행해 왔던 업무를 자회사에서 하게 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해 주면서 파견소송에 대한 부제소합의서를 받거나 진행하고 있는 소송에 대한 취하서를 받아 하청노동자들이 파견법에 따라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소송을 하는 걸 막는다. 이런 사용자들의 행태를 지겹도록 보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소송 포기하고 자회사 가거나, 일자리 잃거나”를 강요받게 된다. 파견소송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100% 장담할 수 없는 것이고, 승소한다 해도 사측의 상소로 확정판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하청노동자들은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 가지 않으면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되니”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감히 누가 주저 없이 ‘끝까지 소송을 통해서 권리를 주장해 보겠다’고 할까. 그래서 이 나라에서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선택했던 것이고, 오늘은 또다시 한전에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이렇게 하청노동자들에게 전적 동의서와 함께 소 취하서나 부제소합의서를 받는 방식으로 원청 사업주가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지만, 파견소송을 하다 보면 사용자들은 하청노동자가 소송 취하서도 부제소합의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자회사로 전적에 동의했으니 파견소송은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온다. 노조 등 하청노동자들의 대표가 사측과 협의해서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하고 하청노동자가 전적에 동의한 경우에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인데, 실제로 한전KPS사건에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사측 주장을 받아서 판결하기도 했다. 하청노동자들의 대표가 참여해서 원청 사업주와 자회사 전환에 합의하고, 하청노동자가 이러한 합의를 수용해서 자회사로의 전적에 동의한 것이니 파견법에서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가 인정되지 않는 예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해당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온 뒤부터 자회사로 전환한 사업장에서는 사용자들은 파견소송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용자의 주장과 법원의 판결은 하청노동자가 원청 근로자로 고용에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자회사로 전적에 동의하는 의사를 밝힌 것을 가지고 이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명백히 파견법 규정에 반한다. 따라서 하청노동자가 자회사로 전적에 동의했다고 해서 대법원에서까지 파견법상 사용사업주 근로자로 고용되는데 명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고 판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지만, 어쨌거나 자회사 전환은 하청노동자의 권리 주장에 골치 아픈 일이다. 어쩌겠는가.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판사들이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사업주에게 파견법상 고용의무 이행을 계속해서 촉구하고, 자회사 전환에도 불구하고 원청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파견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혀둘 필요가 있겠다.

4. 이 나라에서 자회사 전환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도 하지만, 논의에 노조가 참여해서 합의하기도 한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공약을 이행하겠다면서 대대적으로 자회사 전환을 추진했다. 당시 원·하청노조가 그 협의기구에 참여해서 논의하고, 심지어 합의하기도 했다. 한전에서 자회사 전환에 협의했다는 협의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공공기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은 더욱더 그렇다. 근로자파견이 문제되는 사업장들에서는 사용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들고나온다. 자회사 전환을 통해서 원청 사용자는 자신을 상대로 한 파견소송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인데, 그럴 때면 원·하청노조가 그 협의에 참여해서 합의하기 일쑤다. 하청노동자들에게 “자회사 가거나, 일자리 잃거나” 선택을 강요해서 굴복시킬 수 있다고 보고서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이렇게 자회사 전환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인데,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사합의를 했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자회사 소속이 됐다. 이렇게 자회사 전환에 노사가 합의할 때면 노조가 하는 말은 같다. 수많은 노조가 자회사 전환에 합의하는데, 그 합의에서 노조의 말은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해서 다르지 않다. 하청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 자회사 전환에 합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원청 사용자가 직접 고용을 받아주지 않는 상태에서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되는 것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고,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합의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물론 원청노조에서 이를 비난하는 조합원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의를 되돌릴 정도는 되지 못한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조의 투쟁은 언젠가부터 자회사 전환을 위한 노사 간 협의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변명해도 자회사 전환을 두고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오랜 기간 투쟁해 온 비정규직 철폐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청노동자를 위해서 했다는 말은 말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는 직접고용을 쟁취해야 한다고, 그걸 해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히 하고서 전진해 나아갈 수가 있다.

5. 자회사 전환은 원청 사업주가 하청업체를 통해서 수행하는 일을 자회사를 통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오늘 자회사 전환을 보면, 이렇게 하청업체의 일을 자회사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청노동자가 파견법상 파견근로를 하고 있다면 같은 방식으로 자회사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고 해도 파견근로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나는 자회사 전환한 뒤에 원청 사업주가 하청업체에 대해서 했던 방식과 다르게 자회사를 통해서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여전히 파견근로인 것이고, 파견법 위반이다. 그러니 비정규직 철폐를 외친다면 노조는 여전히 자회사 전환 뒤에도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을 위해서 투쟁해야 마땅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그러한 노조를 나는 보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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