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이글에서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를 정리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구성 및 운영원칙과 그것을 반영한 경사노위법을 근거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민주노총도 참가한 ‘완전체’였다.

양대 노총이 빠진 노사정위원회로 출발하다

상임위원으로 취임한 건 2017년 8월29일, 노사정위(현 경사노위)는 한 마디로 잡초 우거진 폐가였다. 민주노총은 18년 전인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를 떠났다. IMF 외환위기의 충격 속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한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노사정위 합의사항의 불이행에 따른 불만이 증폭된 탓이었다.

한국노총은 2016년 1월, 노사정위를 마지막으로 떠났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2015.9.15.)는 한 중집위원의 분신 시도까지 겪어가며 한국노총 중집회의를 통과했다. 박근혜 정부는 합의 이튿날에 ‘노동개혁 5개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근로시간 연장 및 비정규직 사용 기간 확대 등 9·15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2016년 1월에는 ‘양대 지침’을 발표했다.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의 변경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한국노총은 9·15 합의의 파기를 선언하고 노사정위를 떠났다.

뒤이어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물러날 뜻을 밝혔다. “9·15 노사정 합의를 관리해 온 사람으로서 총괄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사퇴의 변이었다(사직서는 6월 초에 수리됐다).

노사정위가 감당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관건은 양대 노총의 참여. 한국노총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문재인 후보와 ‘대선승리-노동존중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뒤 설치된 국정기획자문회의에도 2명의 위원을 파견했다. 정책협약에서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재편을 요구했고 국정운영과제에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존중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자리위원회에는 참가했지만 노사정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노사정 사이의 대화보다는 노정교섭을 통해 5대 개혁입법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게 민주노총의 입장이었다. 거기에는 노조할 권리의 보장과 장시간 노동의 근절, 그리고 ILO 결사의 자유협약 비준 등이 포함됐다.

”노사정위원회 상태는 한마디로 고장 난 시계가 아니라 다시 고쳐 쓰기 어려운 부서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 모델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노정 간 신뢰회복을 위한 노정교섭과 협의 추진,…에 우선적으로 힘을 집중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의 취임을 맞아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다(2017.8.23). 문성현 위원장이 취임 인사차 방문하겠다는 것도 거부했다.

공공부문이 아닌 한 정부는 노조의 ‘교섭’당사자가 아니다. 사용자단체를 배제한 ‘노정’교섭을 정부가 받을 수도 없었다. 민주노총은 개혁입법을 요구했지만 그 자체가 사회적 대화의 대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 이후의 정부이지만 혁명정부는 아니었다. 정부의 권력이 헌법에 따라 분점된 제한정부였다. 국회는 여소야대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개문 발차’인가 ‘완전체 발차’인가

정부도 사회적 대화기구의 복구에 나섰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양대 지침을 폐지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2017.9.25.). 그다음 날엔 한국노총의 김주영 위원장이 ‘대통령이 참여하는 노사정 8자 회의’를 제안한다. 대통령과 노사정위원회, 양대 노총, 한국경총과 대한상의, 기획재정부와 노동부가 대상이었다. 8자 회의에서 노사가 공감하는 쉬운 의제부터 합의해 노사정 간 신뢰를 회복하고 마지막으로는 한국 사회의 대전환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하자는 계획이었다.

민주노총은 일축했다. “노정 간의 신뢰를 담보할 만한 상황이 아닌 조건에서 새로운 사회적 대화 제안은 적절치 않으며 시기상조다”(2017.9.26.).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노동계를 초청하는 간담회를 개최해 김주영 위원장의 제안에 공감을 표시했다(2017.10.24). 민주노총은 불참했다. 노사정위원장이 배석하는 것도 유감이지만 청와대가 ‘민주노총과 상의 없이’ 초청대상인 산별노조와 직접 접촉해 참여를 조직했다는 이유였다. 대통령이 초청한, 그것도 첫 행사에 불참하는 사유로서는 군색하고 예의도 아니었다.

노사정위원회로서도 결단을 해야 했다. 일단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것으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고 민주노총의 참여를 기다릴 것인지(‘개문발차론’) 아니면 민주노총이 참여할 때까지를 기다렸다가 완전체 형태로 시작할 것인지(‘완전체 발차론’)가 그것이었다.

민주노총의 참여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봤다. 들어올지조차 알 수 없는, 들어오더라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민주노총을 기다리느라 ‘대통령의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민주노총이 연말에 임원 선거를 치른다고 하나 그 결과를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적 대화를 선호하는 그룹이 이기더라도 사회적 대화기구에 복귀하는 게 대의원대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복귀 과정에서 어떤 전제조건을 내밀지,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이 참가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한국노총은 이미 ‘문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해 본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면 거부할 명분도 없었다. 경총이나 대한상의도 한국노총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개문발차해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위한 과제를 논의하면 그것이 민주노총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지도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민주노총이 대통령 초청 간담회에 불참한 이후 노사정위는 민주노총 임원선거와 무관하게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10월 하순이었다. 이번에는 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이 참여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노동부와 노사정위원회 사이에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두 수장은 취임 이래 한 번의 식사도 같이한 적이 없었다. 소문낼 수도 없는 물밑 갈등이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던 매일노동뉴스의 연윤정 기자가 뭔가 눈치를 챈 듯 두 사람 사이의 불협화음을 캐물었다. “뭐, 이견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요”, 범상한 척 둘러댔다.

개문발차론과 완전체 발차론을 둘러싼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두 고래 틈새에 낀 노동부 담당국장만 노사정위 회의에 참석과 불참을 거듭했다. 갈등은 두 달을 넘기고 있었다. 자리를 걸고서라도 결정해야 했다. “더 이상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연기하지 않겠다. 장관이 오지 않더라도 노사정위는 6자가 참가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제안하겠다”. 날짜도 잡았다. “1월24일을 디데이로 잡아 1월11일 기자회견을 하겠다”. 청와대는 노사정위의 손을 들었다.

노사정위는 5자 실무협의회를 잇달아 열어 2018년 1월 중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한다는 방침을 공유했다. 한국노총과 대한상의, 경총, 노동부와 노사정위가 참가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의제보다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개편방안부터 논의하겠다는 방침도 확인했다.

반전은 그 이후였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김명환·김경자·백석근(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후보조가 당선됐다(2017.12.29). 선거 기간 중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그룹이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tjpark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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