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모비스 홈페이지 갈무리

15일 미만 근무한 노동자는 정기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정한 취업규칙은 무효이므로 임금 차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법원이 재차 판단했다. ‘근무일수’라는 조건을 달아 상여금을 지급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다. 판결이 확정되면 ‘조건부’ 상여금 지급에 대한 논란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 동의 없이 급여규정 개정” 소송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윤강열·정현경·송영복)는 현대모비스 전·현직 직원 A씨 등 3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최근 현대모비스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3개월 만이다.

소송은 현대모비스가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제외하고 각종 수당을 지급하면서 시작됐다. 쟁점은 ‘근무일수’를 지급조건으로 삼은 급여규정이었다. 회사는 2015년 12월 상여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한 직원은 상여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A씨 등은 2010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급여에서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재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미지급 법정수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개정된 급여규정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고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했다”며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주장했다. 퇴직자들의 경우 미지급 법정수당을 평균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퇴직금에서 이미 지급한 퇴직금을 공제한 차액을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근무일수 신설 조항’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모비스위원회와 별도 합의를 체결해 유효하다고 반박했다. 정기상여금은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 한다는 불확실한 지급요건이 있으므로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갖춰야 한다.

1심 “조건 단 상여금, 사전 포기 마찬가지”

1심은 2022년 9월 노동자들의 청구를 인용했다. 정기상여금은 업적·성과에 관계없이 확정된 금액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영성과와 근무성적에 따라 상여금의 지급률과 지급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급여규정을 정했더라도 이에 따라 차등 지급할 이유는 없다”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핵심 쟁점인 ‘근무일수 신설 조항’에 관해 무효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정된 급여규정은) 임금을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 지급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43조)에 반하며,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노동의 대가가 발생했는데도 조건을 달아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취지다.

2심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개정된 급여규정은 정기상여금 지급 조건을 추가로 신설한 것으로서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현대모비스측은 2015년~2017년 노조와 별도 합의를 거쳐 현대자동차 대표소송에 따른 합의내용을 동일하게 적용키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임금체계가 유사한 만큼 같은 기준을 담은 별도 합의서만으로도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2심 시효·신의칙 주장도 배척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만약 노조가 조항 신설에 동의했다면 급여규정 개전 이전에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 범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며 “법정수당 감액은 물론이고 법정수당을 기초로 산정되는 퇴직금까지 줄어드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2015년 12월과 2019년 1월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도 지급 비율과 시기를 정하고 있을 뿐, 근무일수 조항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만약 노조가 단체교섭 관련 별도 합의서를 통해 조항 신설에 동의했다면 그 내용이 이후 단체협약에 반영되지 않을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측이 주장한 소멸시효(소송제기 기한) 완성도 일축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임금채권 시효(3년)가 끝난 뒤 소송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초로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노사 회의가 진행됐던 2012년 9월부터 역산해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소송 제기는 2012년 9월 합의 내용을 위반해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웠다는 사측의 ‘신의칙 주장’ 역시 배척됐다. 현대차 노사는 2012년 9월 대표소송의 대법원 판결 결과를 전 직원에게 적용키로 했다가 2019년 9월 대법원 선고 전 소 취하에 합의했다. 재판부는 “노사는 현대차 대표소송의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적용범위를 정하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그런데 대표소송은 소 취하로 종료됐으므로 원고들의 청구가 노사합의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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