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애진 변호사(법무법인 시대로)

대상판결 : 창원지방법원 2022구합52919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사건

1. 사실관계

망인은 2005년 1월17일 증권사에 입사해 그때부터 2008년 3월23일까지는 A지점, 2008년 3월24일부터 2017년 12월17일까지는 B지점, 2017년 12월18일부터는 C지점에서 근무하다가 2018년 7월3일 오전 주거지 방에서 목을 맨 상태로 발견돼, 배우자가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같은 날 오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원고(망인의 배우자)는 망인이 영업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고, 2017년 12월18일 소속 지점 변경으로 인한 업무환경 변화를 겪었으며, 업무 특성상 소정 근로시간 외에도 고객을 응대하거나 우리나라와 시간대가 다른 외국의 증시현황을 검토하는 등 업무를 수행했고, 투자실적 부진으로 고객들의 항의와 폭언에 노출되는 등 극심한 업무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취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를 했다. 피고는 망인이 업무상의 사유로 인해 ‘정신과적 진료’를 받지 않았던 점, 망인의 업무량 및 업무시간이 가중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점, 업무적 요인 외에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스트레스 가중 요인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했고, 피고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2. 대상판결의 내용

가. 우울증의 발생 시점 추정

망인은 약 6개월간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동네의원에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했고, 망인이 사망하기 약 4개월 전부터 배우자에게 보낸 문자메세지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게시한 글 등에서 업무실적 관련 부담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드러나는 점, 망인은 배우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문자메세지 등을 발송하면서 애써 긍정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6개월 동안 점차 우울감과 불안감을 추단할만한 부정적 표현이 증가했고 표현 수위도 점점 심각해지는 양상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에게 2017년 11월25일경부터 우울증상이 발생했고, 그러한 증상이 사고에 이르기까지 점차 악화됐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나. 정신건강의학과적 진료를 받지 못한 이유

망인이 사고 몇 달 전 죽고 싶다고 호소해 병원 진료를 권유했다는 전 직장 동료의 진술이 있는 점, 배우자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했으나 ‘자산관리사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고 소문이 나면 누가 재산을 맡기겠냐’고 하면서 정신과적 진료를 거부하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망인이 낙인효과를 염려해 적극적으로 정신과적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다. 실적 중심의 가혹한 노무관리와 초과근로가 만연한 조직문화

피고는 망인이 발령 전 지점에서보다 실적이 좋아졌으며, 인사평가 결과는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실적 압박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법원은 망인이 현 지점 전입 직후와 달리 점차 실적 순위가 하락해 사망시점에 근접해서는 지역본부 소속 지점 중 최하위 실적을 낸 점, 자신의 실적이 드러나는 문서를 작성해 이를 소속 지점장으로 해금 열람하게 해야 했던 점, 지점 전보 후 자신을 격려해 주었던 지점장에게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업무실적을 높여 기대에 부응하려 했으나 좌절돼 죄책감을 갖게 된 점 등 망인이 심리적 부담을 느꼈을 만한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하며 처분 근거를 논박했다.

법원은 원고가 증거로 제출한 각종 신문기사 등을 토대로 이 사건 증권사가 해외 주식투자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해 해외주식 자산이 현저히 증가했단 점을 지적하면서, 피고가 조사한 실적 평정 기준 이외에도 해외 주식투자 유치 실적 등 회사 내에 존재하는 다층적 평가지표들로 인해 망인이 상당한 실적압박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보았다. 노사협의회 회의록을 통해 조직 내 만연한 초과근로 문화가 존재함을 인정한 뒤, 망인의 휴대전화 내에 있는 통화나 문자메세지 기록, 주거지 입·출차기록 등을 근거로 망인이 특근신청 내역이 없다는 사정만으로 초과근무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망인의 과로사실을 인정했다.

라. 업무 외 사유에 따른 스트레스 요인

피고는 망인이 체중감량 목적으로 동네 병원에서 처방받아 복용한 의약품이 부작용을 일으켜 망인에게 우울증이 발병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설령 망인이 복용한 의약품의 부작용이 망인의 우울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망인이 평소 비만이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의사에게 말한 점을 들어 체중감량을 위해 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한 행위 자체도 업무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피고는 배우자의 갑상선암 진단이 망인의 처지를 비관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주장을 했으나, 망인의 자살사고 표현시점과 배우자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 사건의 선후관계를 고려하면 배우자의 암 진단은 우울증의 발생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전제한 후, 설령 이러한 사정들과 함께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3. 대상판결의 의미

근로복지공단은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정신질병은 신체손상이나 질병 혹은 정신적 부담에 의해 발생이 가능하나 개인의 성격적 특성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특징이 있기에 업무관련성의 판단을 위해서는 정신질병을 유발하는 업무관련 위험요인이나 그 밖의 다른 원인들에 대해 보다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공단은 조사 지침을 마련함으로써 재해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업무의 통일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고자 했으나 지침에 충실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다소 의문스럽다.

대상 판결이 정신질환 자살 사건에 있어서 새로운 법리해석 기준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재해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데 처분 기관이 마련한 지침을 처분 기관보다도 더 충실히 따랐다는 데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지침은 자해 및 자살사건 조사시 재해자의 이메일, SNS, 일기, 유서, 메모 등 당시의 심리적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 수집함과 아울러 가족, 직장동료 및 상사, 친구 등 지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심리적 상태와 사회적 기능에서의 변화, 체중 및 수면, 식이의 변화 등을 파악하라고 하고 있다. 특히 재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 또는 임상심리검사를 받을 수 없음이 분명하기에 직무스트레스를 확인할 수 있는 기타의 근거, 예컨대 내과, 가정의학과, 한의원 등의 의무 기록 등도 확인하고, 개인 상담내역이 있는 경우 상담일지까지 확인할 것을 명시해 두고 있다. 업무상 스트레스의 심각도에 대해서는 유형별 조사 양식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처분 기관은 만연히 망인이 정신과적 진료를 받지 않았다는 점, 업무량 및 시간이 가중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점, 전년대비 업무실적이 상승했고 최종 순위도 중위권이었던 점을 들어 업무 외적 요인에 의한 개인적 사유가 스트레스 가중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말았다.

법원은 피고가 종종 객관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 증거들, 이를테면 망인과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는 가족, 친구, 동료의 진술, 당연히 노동자의 편일 것이라 전제하는 노동조합의 의견, 환자와 ‘라포’를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주치의사의 소견에 대해서도 함부로 신빙성을 배척하지 않았다. 특히 망인의 실적 순위가 중위권에 속해 있었다고 해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았을 것이라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매우 세심한 논증을 펼쳤고, 그 논증과정은 객관적 증거란 무엇이고 객관적 판단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친절한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처분 기관이 스스로 정한 지침에 충실히 따르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일까. 만약 이 사건의 판결에서와 같은 사실관계 조사가 처분단계에서 이뤄졌더라면 유족이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긴 싸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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