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산재환자를 ‘나이롱’이라 부르며 증거도 없이 ‘카르텔’을 잡겠다고 산재보험 제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전문가들이 5차례 걸쳐 문제점을 짚는다. <편집자>
 

김민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 김민호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근로복지공단의 ‘2022년 소송상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행정소송의 공단 패소율은 무려 34.3%다(판결 14.4%·패소가 예상돼 공단 스스로 원처분 변경 19.9%). 공단이 불인정한 10건 중 3건 이상이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된 것이다. 공단은 패소 원인을 증거 판단의 견해 차이(78.2%)와 범죄행위 등에 대한 법령해석의 견해 차이(21.4%)라고 분석했다. 영업비밀 장벽 등으로 더 입증이 어려운 첨단산업에서는 차이가 더 크다. ‘반올림’에서 2007년부터 2023년까지 공단의 불인정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의 공단 패소율은 무려 82.35%다(34건 중 28건). 공단이 불인정한 10건 중 8건 이상이 법원에서 인정된 것이다.

공단의 분석 자료에서도 드러나듯 공단의 패소 원인은 소송 중에 새로운 증거가 나와서가 아니다. 기존 증거 판단의 견해 차이, 즉,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법원과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단이 법원과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는 의사 중심의 불합리한 판정구조도 한몫하고 있다.

법원은 법관이 의학적 소견에 구애받지 않고 규범적인 관점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른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기준으로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한다. 이 법리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이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확립된 법리다(대법원 1992. 5. 12. 선고 91누10022 판결,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두5501 판결, 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등 다수).

반면에 공단은 의사 위주로 구성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공단의 높은 패소율의 핵심 원인이다.

그런데 매년 이렇게 위법·부당한 불인정으로 노동자와 유족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높은 패소율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공단의 주무부처 고용노동부는 되레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달 20일 “(속칭) 나이롱 산재환자 뿌리 뽑는다. 부조리 근절을 위해 산재 제도 혁신 추진” 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재정건전성 운운하며 산재노동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작 뿌리 뽑아야 할 진짜 산재보험 부조리는 공단의 불합리한 업무상 질병 판단기준과 판정구조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산재보험법 취지에 맞게 공단이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도록 법제도 및 판정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부가 할 일이다. ‘산재보험 부조리 근절’은 바로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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