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산재환자를 ‘나이롱’이라 부르며 증거도 없이 ‘카르텔’을 잡겠다고 산재보험 제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전문가들이 5차례 걸쳐 문제점을 짚는다. <편집자>

▲ 조승규 공인노무사 (노무사사무소 씨앗 대표노무사)
▲ 조승규 공인노무사 (노무사사무소 씨앗 대표노무사)

지난달 20일 고용노동부의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중간결과에서 눈에 가장 띄었던 부분은 부실한 감사내용도, 과한 문구도 아니었다. 발표 막바지에 갑자기 추정의 원칙에 대한 재계의 문제제기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장관의 언급이었다. 노동부가 야심차게 제기한 ‘산재 카르텔’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으면서, 개연성도 전혀 없이 재계의 일방적인 문제제기를 검토하겠다니. 감사 이후 노동부가 진행한다는 ‘산재보험 제도개선’의 방향성이 매우 우려됐다.

추정의 원칙에 대한 재계의 문제제기는 타당한 것일까. 현재 근골격계질병과 직업성암에서는 근무기간·직종 등 일정한 기준에 해당하면 어느 정도 업무환경을 예상할 수 있으므로 조사 과정을 간소화해 빠르게 처리하고 있다. 재계는 일정한 기준으로 업무환경을 추정할 경우 개별 노동자와 개별 사업장의 상황이 반영되지 않으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에도 개별 사건에 대한 공단의 조사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부당한 비판이다.

재계는 추정의 원칙을 폐지하고 조사 과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나 무책임한 주장이다. 개별 산재신청 모두에 대해 특별진찰이나 역학조사와 같은 별도의 조사를 거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역학조사의 경우 180일 내에 끝낸다는 규정이 무색하게 초장기간 진행되고 있다. 2022년 평균 소요기간은 직업환경연구원 조사의 경우 436.7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는 664.4일이었다. 역학조사에만 이 정도 기간이 소요되니 산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3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근골격계질환 또한 산재 처리 기간이 2022년 108.2일에서 2023년 8월 137.7일로 증가했다.

현재 산재 인정까지 오래 걸리며 기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큰 문제 상황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산재신청건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업무상 질병 신청이 2배 이상 증가하기는 했지만, 비슷한 피보험자 규모를 가진 프랑스나 미국 캘리포니아와 비교해 보면 여전히 적은 수준이다. 늘어나는 산재신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추정의 원칙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적용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

노동부가 진행한 연구들이 이미 그러한 답을 내놓고 있다. 2018년 수행된 ‘직업성 암 재해조사 및 역학조사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제시한 개선방안 1번이 자문위원회 역할 강화로 역학조사 생략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5년 뒤 올해 수행한 ‘역학(전문)조사 처리절차 업무량 분석 등을 통한 개선방안 연구’ 또한 개선방안 1번으로 역학조사를 생략하는 패스트트랙을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하다 다쳤기에 정당하게 치료받는 노동자들을 별다른 근거도 없이 ‘나이롱 환자’라 모욕하는 것은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법원에서 확립된 법리대로 개선한 것을 두고 ‘모럴 해저드’라 폄하하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은 2024년에는 산재처리 지연 비판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산재처리 지연 현실이 어마어마하다고 인정한 장관의 말이 빈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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