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작은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위험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빼앗겨야 하는 것일까.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더 쉽게 해고되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데도 근로기준법이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안전보건관리체계와 안전보건교육도 제외된다. 전체 산재사망자의 60% 이상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하는데, 정부는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또다시 2년 유예하겠다고 말한다. 처음 시행을 유예할 때 작은사업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달더니 지금에 와서도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고 한다.

도대체 작은사업장에서 안전을 위한 준비는 언제 되는 것일까?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유예한 것은, 그동안 정부가 책임있게 지원해 작은사업장에 안전보건체계를 갖추도록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작은사업장 시행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정부가 지난 2년간 자신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잘하려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2년 더 유예하자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유예를 전제로 내놓은 대책이 지난 대책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12월 27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당정협의를 통해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소규모 사업장 안전관리대책에 1조5천억원을 투입한다고 하니 대단히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 같지만, 해마다 지원되는 예산 규모에서 조금 더 늘어난 수준이다. 신규 사업은 협회나 단체가 컨설팅하고 가이드라인을 보급하는 예산뿐인데, 이런 컨설팅은 지난 2년간 진행했던 것이고,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 사업이다. 83만7천곳에 안전진단을 하는 ‘산업안전대진단’을 한다고 하니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제력도 없는 사업장 자체 안전진단이 실효성이 있겠는가. 안전보건인력 양성과 교육 활성화도 여러 차례 말만 하고 있다.

이런 대책을 내놓고 이것을 빌미로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유예하자고 한다. 그런데 이런 대책을 제대로 시행하려고 해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다.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은 안전조치만 제대로 지키면 예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에게 뭔가 더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관계법령을 잘 지키고 안전보건체계를 잘 갖추라고 요구할 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업장의 안전관리는 경영책임자가 어떤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야 사업주들이 안전관리에 더 힘을 쓰게 되고 그래야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다.

2021년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서 9명이 죽고 8명이 다친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는 50명 미만 기업들이 공사를 맡았다. 업체들은 비용을 적게 들이기 위해서 해체 계획서대로 공사를 하지 않았고, 감리는 현장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였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들도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메탄올을 사용할 때 보안경과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하지만 사용주가 목장갑과 일회용 마스크만 지급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사업주가 중대재해 위험을 인식하고 지켜야 할 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말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중대재해는 기소를 하지 않거나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하게 만들고, 대다수 노동자가 일하는 작은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함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을 있으나마나한 법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힘 그리고 민주당이 정말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과 재해를 예방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 이 법이 잘 적용되도록 제대로 감독하고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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