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매일노동뉴스 기자

1주간 연장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주 40시간)을 초과한 나머지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도가 성탄절(25일) 오전 일제히 쏟아졌다. 현재까지 270건이 넘는 보도가 이어지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의 상반된 시각에 이어 고용노동부가 발 빠르게 행정해석 변경을 시사하는 등 후폭풍이 상당하다.

대법원 계산법이 사실상 ‘크런치 모드’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하루 연장근로시간 한도’ 입법 미비에 따른 한계 역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반대로 이른바 ‘주 69시간’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한 정부는 반색했다. 각 정당과 양대 노총은 논평을 쏟아냈다. 그만큼 이번 판결이 사회 각계에 미친 파장은 매우 컸다. 빠른 정보 전달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이 선고된 날은 지난 ‘7일’이다.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기 무려 18일 전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선고 5일 만에 최초 보도했다. 다음날에는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짚는 후속보도가 이어졌다. <본지 2023년 12월12일자 2면 “하루 21.5시간 일해도 된다? ‘주 단위 연장근로 계산’ 대법원 첫 판결” 기사 참조>

본지 보도 이후 판결은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금속노조와 진보당이 즉각 성명도 냈다. 하지만 2주 넘게 이를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대부분 매체는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 25일 밝혔다”라고만 적었다. 많은 독자가 25일 전까지 대법원 판결을 몰랐을 개연성이 크다. 선고일을 밝힌 매체는 극히 일부에 그쳤다. 왜 25일일까.

이는 ‘대법원 기자단’의 독특한 엠바고(보도 시점 유예 혹은 시한부 보도 중지) 관행에 기인한다. 기자단은 선고 당일 보도할 사건을 정한 다음 나머지 사건은 ‘선고 2주 후’로 보도 시점을 미루기로 정하고 있다. 속보 경쟁을 지양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대법원이 선고 당일 미리 주요 판결문을 기자단에 전달하면 매체별로 주요 내용을 공유한 뒤 순차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이다. ‘연장근로시간 계산법’ 법원 판결도 엠바고가 걸렸다.

2주간의 비밀은 이렇게 숨어 있다. ‘묵혔던’ 판결은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 기자단의 ‘선별적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했을까. 대법원 기자단에 중요 사건을 선택할 권한이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대법원 판결문은 현행법상 ‘공개’가 원칙이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정하고 있다. 민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올해 1월부터는 확정되지 않은 민사·행정·특허 사건 판결문도 열람할 수 있다.

판결문 공개를 명문화한 것은 ‘모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를 부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현실은 한참 괴리가 있다. 대법원 공보가 기자단에 편의를 제공하면서 몇몇 매체에 ‘판결문 전달자’ 역할을 맡기는 형국이다. 심지어 대법원은 이번 사건 선고 며칠 전 홈페이지에 ‘사안개요’를 올렸다. 쟁점은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했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이라고 버젓이 적었다. 이미 국민에게 판결 내용을 사전에 예고한 셈이다.

법조기자단의 ‘폐쇄성’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엠바고 대상인 판결도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매체를 통해 보도가 되면 엠바고가 해제되는 경우도 있다. 일관성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사안과 같이 노동자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는 판결의 경우 ‘신속한 공개’로 활발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판결문은 사법권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 판결문을 신속하고 쉽게 전달할 책무가 여기에 있다. 판결 기사 보도 이후 한 취재원이 이렇게 물었다. “대법원 판결에 관한 기사를 이미 봤는데, 왜 이제야 한꺼번에 보도가 나오는가요.” 지연된 알 권리는 ‘알 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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