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최근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던 원·하청 노동자 4명이 비소 중독 진단을 받고, 이 중 1명이 사망했다. 사실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영풍 석포제련소 노동자 투입

② 비소 급성중독

③ 사망자와 환자 발생

①③은 논란의 여지가 없으므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②다. 어쩌다 비소 급성중독 사고가 발생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제련소에서 비소가스를 발생시키는 원인물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무사안일> 세 번째 사연은 ‘침묵의 살인자’ 비소에 관한 이야기다.

사약의 원료 비소, 가스형태 흡입 ‘치명적’

비소(Arsenic)는 지구표면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준금속류(Metalloid)다. 인체에 작용하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아 오래전부터 독극물로 사용됐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수도원장이 책장 사이에 비소를 묻혀 책을 읽는 수도사들을 죽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맛과 냄새가 없는 흰색의 가루 형태여서 밀가루 등에 섞어 놓으면 티가 나지 않는다. 비소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과거 사약의 원료로 쓰인 비상(砒霜)도 비소화합물인 삼산화비소(As₂O₃)다.

㈜영풍 홍보영상 <환경과 개발, 공존을 꿈꾸다> 화면 갈무리
㈜영풍 홍보영상 <환경과 개발, 공존을 꿈꾸다> 화면 갈무리

석포제련소에서 문제가 된 것은 가루가 아닌 가스 형태의 비소, 아르신(Arsine)이다. 비화수소(AsH₃)로도 불리는 아르신은 마늘 냄새가 나는 무색의 기체다. 주로 아연·구리·카드뮴 같은 금속 원석을 제련할 때 원석에 불순물로 섞여 있던 금속비소가 산(Acid)과 반응해 발생한다.

아르신은 극소량에 노출돼도 인체에 치명적이다. 적혈구를 집중적으로 망가뜨린다. 혈관 내 적혈구의 세포막을 파괴해 헤모글로빈을 혈구 밖으로 방출시키는 용혈현상을 일으킨다. 이때 깨진 적혈구가 소변으로 배출되면서 콜라 색의 혈뇨를 보인다. 죽은 적혈구가 신장에 쌓이면 급성신부전을 일으킨다. 치료 시기가 중요한데 복통과 함께 혈뇨가 보일 때 즉각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급성신부전으로 진행할 때 곧바로 투석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관건은 환자의 증상과 직업 사이의 연관성을 포착하는 일이다. 직업병인지 모르면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석포제련소 노동자들도 공통적으로 복통과 혈뇨 증상을 보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달 6일 제련소에서 일한 노동자 4명이 복통과 혈뇨·호흡곤란·황달 등의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에 내원했다가 아르신 중독 진단을 받았다. 두 명은 설비 유지·보수업체 하청노동자, 나머지 두 명은 제련소 정직원이다.

퍼즐 맞추기 1 
사고는 어디서 났나

노동자들은 이날 어떤 작업에 투입됐을까.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노동자들은 ‘원재료를 정제한 찌꺼기에서 남은 아연을 재추출하기 위해 중성액을 섞는 탱크의 모터를 교체하는 작업(연합뉴스)’ ‘아연가루와 화학물질을 섞는 탱크의 모터를 교체하던 작업(JTBC)’에 투입됐다.

그렇다면 일단 ‘중성액’과 ‘아연가루’가 등장하는 공정을 찾아봐야겠다. 용어가 다소 생소하지만 ‘외계어’ 수준은 아니니 함께 알아보자.

㈜영풍 홍보영상 <환경과 개발, 공존을 꿈꾸다> 화면 갈무리
㈜영풍 홍보영상 <환경과 개발, 공존을 꿈꾸다> 화면 갈무리

광석에서 아연을 추출하는 공법은 건식 제련공법과 습식 제련공법이 있다. 석포조련소는 습식공법을 도입했다. ‘배소(Roasting, 굽기) → 용해(Leaching, 고체를 용액에 담가 우려내기(침출)) → 정액(Purification, 정화하기) → 전기분해(Electrolysis) → 주조(Melting & Casting)’ 과정을 거쳐 고순도 아연괴를 생산한다.

먼저 배소공정에서 아연 함유 광물을 950도씨의 온도로 구우면 아연배소광과 이산화황, 자석의 원료가 되는 아연페라이트 등이 만들어진다. 이산화황은 추가 공정을 거쳐 ‘황산’이 된다.

아연배소광과 아연페라이트는 용해공정으로 넘어간다. 황산용액에 담가 아연성분과 불순물을 뽑아낸다. 아연페라이트의 경우 진한 황산을 사용하는 강산용해 방식으로 아연을 회수한다.

용해공정을 거치고 남은 용액이 바로 중성액이다. 중성액에는 구리·카드뮴·코발트 같은 유가금속이 아직 남아있다. 유가금속을 마저 뽑아내기 위해 중성액은 정액공정으로 보내진다. 정액공정에서는 반응조(reactor)에 아연분말을 투입해 반응시키는 작업이 이뤄진다.

드디어 찾았다. 아르신 급성중독 사고장소로 알려진 ‘중성액을 섞는’ ‘아연가루를 섞는’ 공정은 정액공정일 것이다.

퍼즐 맞추기 2 
사고는 왜 났나

장소를 찾았으니 사고 원인을 알아보자. JTBC 보도에 따르면 사고가 난 탱크는 지난해 환경부가 오염물질이 샐 틈이 있다며 내년까지 밀폐를 지시했던 장소와 일치한다. 따라서 석포제련소는 안전관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슷한 예로 두성기업 집단 독성간염 사건이 있다. 지난달 창원지법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소사건인 두성산업 사건에서 이 회사 대표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두성산업은 트리클로로메탄이 섞인 세척제를 사용하면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노동자 16명이 독성간염 증상을 보였다.

석포제련소도 사전에 사고 탱크를 밀폐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의 경우 회사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으면 죄를 깎아주는 경향이 뚜렷하니, 향후 재판에서 산재사고 예방의 형식과 실질을 둘러싼 공방이 예상된다.

한편 이번 사고에서 가장 의아한 대목은 ‘사고는 났는데 원인물질이 없다’는 정부당국의 발표다. 환경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탱크에선 비소 화합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내부를 다 조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르신은 금속비소가 산(Acid)과 반응했을 때 발생한다. 유해가스를 흡입한 노동자 4명이 연이어 병원에 실려 갔고, 비소가스 중독 진단을 받았고, 그중 한 명이 사망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팩트다.

거기에는 분명 비소와 산이 있었다. 용해공정에서 사용한 진한 황산, 정액공정에서 사용한 아연가루 등이 어떻게든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황산의 사용과 처리가 안전하게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사고 당일 사용된 아연가루에 비소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급성중독 사고는 100% 예방이 가능하다. 전제조건은 철저한 안전관리와 노동자에 대한 적정 보호구 지급이다. 사고 당일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보호구가 적정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기술지침(KOSHA 가이드)은 아르신 발생 공정의 경우 송기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송기마스크 대신 방독마스크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유해물질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밀착해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부가 제시한 엉뚱한 단서 “현장에 비소 없다?”

필자는 평소 형사물 드라마를 즐겨본다. 몇 개의 단서를 가지고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형사물을 찍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국내외 논문과 유튜브 동영상을 뒤지면서 제련공정을 ‘상상’해야 했다. 정부가 사고 발생 위치의 공정명이라도 정확하게 밝혔다면 더욱 설득력 있는 추리가 가능했을 텐데 몹시 유감스럽다. 그러면서 합동점검도 하기 전부터 사고현장에 비소가 없었다는 불필요한 정보를 흘리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은 비소와 산이 거기 있었다고 가리키고 있다.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부는 스스로 무능을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형사물 마니아의 자존심을 걸고, 정부의 조사과정과 결과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통쾌한 사필귀정의 결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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