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혜경 노동법 박사

박정희 정권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를 중심으로 한 유신개헌으로 유신체제를 구축했다. 유신체제에서 박정희 정권은 고문, 폭력, 살인 등의 방법으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성마저도 보호받을 수 없을 만큼 억압·통제적 정책을 자행했다. 머리 길이와 치마 길이를 국가가 제한하는 등 인간의 자유를 철저하게 탄압하고 통제했다.

1970년대의 한국경제는 중화학공업의 육성이라는 전략 속에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양적 측면만 성장했을 뿐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개념에는 적합할 수 없었다. 철저한 탄압과 억압 속에서 박 정권은 국가보위법 9조와 1973년 개정한 노동조합법을 통해 단결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단체행동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억압과 통제를 실행했다.

국가보위법 9조는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전에 행정관청에 필수적으로 조정신청을 하도록 하고, 그 조정결정에 강제적으로 따르게 했다. 실질적으로는 강제중제만 허용하는 것으로 단체행동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했다. 1973년 노조법 개정 중 핵심내용은 행정관청에 의한 쟁의 적법성 판정인데, 쟁의의 적법 여부를 노동위원회가 정하는 구법과 달리 개정법에서는 행정관청이 쟁의의 적법 여부를 판정하도록 했다. 쟁의의 결의가 조합원들의 자주적인 결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심사 판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에 관한 전문적인 기관이지만 그 전문성과 독립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기관이다. 사전에 쟁의의 적법 여부를 심사·판정하는 것은 단체행동권의 행사에 대한 외부 개입이다. 쟁의행위의 사전제한이나 통제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위원회의 쟁의 적법 여부 판단도 문제인데 하물며 행정관청이 쟁의의 적법 여부를 사전에 판단하는 것은 명백한 단체행동권에 대한 외부개입이다. 쟁의행위에 대한 억압으로서 본질을 띤다

폭력적·억압적 노동통제, 대정부 투쟁으로 발전

1970년대 주요 노동운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정보부가 노동쟁의를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해 단결옹호 투쟁이나 생존권 투쟁을 안보적 차원에서 대응했다. 핵심 노조활동가를 국가보위법 위반으로 구속하는 등 폭력·억압적 노동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렇게 폭력·억압적 노동정책 아래 개별 자본가에 대항한 투쟁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도시산업선교회나 가톨릭노동청년단체의 활동을 통한 노동자 의식화 투쟁·생존권 투쟁이나 노동단체 지원 투쟁이나 연대투쟁으로 확산해 반독재민주화투쟁과 결합하는 양상을 띠었다.

셋째, 동일방직노조 건설 투쟁 같이 한국노총이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집행부의를 대표권 배제하는 어용화 정책을 취하면서 강한 반발을 불렀다. 한국노총에 대항한 지부·분회 차원의 투쟁, 조합원 차원의 투쟁이라는 형식으로 발전하는 양태를 가진다.

넷째, 여성노동자가 노조 활동의 선두에 섰다. 이들은 1980년대 노조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경공업 중심인 서울·인천지역 노동자가 여성노동자 대중을 기반으로, 진보적인 종교세력과 결합을 통해 여성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의 중심을 차지하는 특징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유신체제는 고문·폭력·살인 등으로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마저 보장받을 수 없는 폭력적인 억압·통제 체제였다. 국가보위법 9조와 노동관계법은 단체행동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본질을 가진다.

안보 차원에서 노동운동에 대응
국가보위법 위반 혐의로 노조 간부 구속

1970년대의 노동운동의 특징은 정부가 노동운동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해 중앙정보부의 개입과 국가보위법 위반에 따른 구속 등으로 점철된 점이다. 1960년대 노동정책의 억압과 통제라는 본질은 1970년대 노동정책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됐다. 단지 양적으로 그 정도가 폭력적이고 반동적인 방식(1960년 4·19혁명을 뒤집는 반동으로서의 성격)으로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노동정책으로 노동운동은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반독재민주화의 의지로써 자유를 열망하는 자유권을 지향했다. 도시산업선교회나 가톨릭노동청년회 등 종교단체와 노동운동의 연대를 통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의 확산, 그리고 경공업 중심의 여성노동자 활동이 노동운동의 중심을 이뤄 반독재민주화운동과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1970년대 노동운동이 주로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유권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노동자들은 일제 식민통치 체제로 그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때, 그들의 권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자본가와 대립하는 것에서 나아가 일제 식민통치 자체에 대항하는 반일 민족해방투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식민통치 체제 에서 노동운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반일 민족해방투쟁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유권을 본질로 하는 이유다.

정권의 반인간적 독재정책에 맞선 노동운동
자유권 본질로 하는 정치투쟁

1980년대의 신군부정권에서 노동운동도 살인적이고 폭력적인 억압통제에 대항한 “노동조합의 대규모 전면 공격”이라고 할 만큼 ‘대사용자’라기보다 “대정부” 성격이 강한 정치투쟁이었다. 이런 점에서 1980년대 신군부정권 시대 노동운동도 본질적으로 자유권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자유권을 본질로 하는 노동운동은 유신체제를 통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YH무역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투쟁을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전면 분쇄하려 했던 단적인 예는 1970년대 노동운동이 대사용자 투쟁에서 나아가 정권의 반인간적 독재정책에 대항한 투쟁으로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결국 △일제시대 노동운동이 반일 민족해방투쟁으로서 정치적 성격을 갖는 점 △미군정 시기 노동운동도 친일파 척결을 주요하게 내세우며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하려는 열망으로 나타난 점 △이승만 독재체제에서 부패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나아간 점 △1980년대 신군부정권에서 살인적·폭력적 통제에 반항해 “대규모 국가에 대한 전면 공격” 양상으로 노동운동이 발전한 점에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자유권을 본질로 하고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도 반독재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노동운동이 확산해 자유권을 본질로 하는 성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노동법 박사 (labork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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