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규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
▲ 정상규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

부산에는 법인택시 회사가 100개 가까이 있다. 그중 하나인 한남교통주식회사 앞에서 택시노동자들은 2년 넘게 부당한 징계를 규탄하는 피케팅을 매일 이어오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택시노동자가 기본 생활을 위한 임금조차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납금제를 철폐하고 ‘완전 월급제’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완전 월급제를 제도화한 전액관리제를 꼼수로 회피해 사납금제를 유지하려는 목적의 징계처분에 항의하는 것이다.

사납금제는 운수노동자가 매일 일정 금액의 사납금을 운수회사에 납부하고 남는 운송수입금과 소액의 고정급을 지급받는 제도다. 이 경우 회사는 안정적인 고정 수입을 얻지만, 운수노동자는 손님이 적을 경우 생기는 운송수입 감소의 위험을 떠안게 된다. 1995년 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여객은 택시운송사업자가 운송수입금의 전액을 납부받고 운수노동자에게 안정적으로 고정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면서 사납금제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사가 전액관리제 규정을 위반해 체결한 단체협약 규정을 유효하다고 해석하면서(대법원 2005도8221 판결), 전액관리제는 사문화된 제도로 존재했다.

전액관리제는 만들어진 후 25년만인 2020년 1월부터 구체적인 금지 조항을 추가해 강화 시행됐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운수법)은 ‘운송사업자는 일정 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해 수납하지 말고 운수종사자는 이를 납부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그러자 운수회사들은 사납금을 ‘성과급 산정을 위한 기준금(기준금)’이라고 명칭만 바꾼 다음 기준금을 납부하지 못한 운수노동자들을 ‘불성실 근로자’로 징계하는 규정을 두는 꼼수를 쓰고 있다. 지난 수년간 전국적으로 유행한 변형 사납금제이다.

한남교통은 기준금에 미달하는 돈을 납입한 두 운수노동자에게 불성실 근로를 이유로 주의·경고를 거친 후 견책의 징계처분을 했다. 한남교통은 ‘성실 영업시간’에 미달한 경우에도 징계하는 규정을 단협에 추가했다. 여기서 ‘성실 영업시간’이란 손님을 태워 택시 미터기가 작동되는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신종 변형 사납금제다. 택시 운수노동자가 손님을 찾아 배회하거나 대기하는 시간 역시 노동시간인데 회사는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택시 회사는 손님을 태워 운송수입이 발생하는 시간을 달성하는 것만 관심을 두고 이것을 강제하는 징계규정을 둔 것이다.

이어 한남교통은 두 노동자가 기준금 관련 규정보다 적은 돈을 납부한 사실, 성실 영업시간 관련 기준보다 적은 시간을 운행한 사실 등을 이유로 정직 30일의 두 번째 징계처분을 했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한남교통이 내린 징계의 사유가 모두 적법하다며 정직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30일 한남교통이 징계사유로 삼은 주요 내용들이 불합리하다며 정직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했다. 법원은 기준금 미납을 이유로 징계하는 단협 규정이 강행규정인 전액관리제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성실 영업시간 미달을 이유로 한 징계규정 역시 전액관리제 규정을 위반한 것이어서 무효라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실 영업시간 위반과 관련한 두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사유가 잘못됐다고 봤지만, 관련 징계규정 자체가 여객운수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객운수법에서 ‘기준 운송수입금 수납과 납부’를 전면 금지한 이상 운송수입금이 발생하는 시간인 ‘미터기 작동 기준 시간’의 달성을 징계 기준으로 삼는 것 역시 똑같이 위법하다. 택시노동자에게 일정 기준의 미터기 작동 시간 동안의 운행을 강요하는 것은 운수사업자의 경영상 위험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택시회사가 사납금이라는 ‘금액 단위 강제’를 사납금 납부에 필요한 미터기 작동 시간이라는 ‘시간 단위 강제’로 치환해 사납금제를 유지하는 꼼수를 막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택시회사에 또 다른 사납금제 꼼수 유지 방법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 자동차운수사업법이 전액관리제를 처음 규정한 후 28년이 흐르도록 사납금제가 진화한 과정을 보면, 엄격한 법 해석과 적용 없이는 사납금제 철폐를 달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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