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1월 13일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문제라고 개선하겠다고 지난 대선에서 공약하더니 윤석열 정부는 노동부가 중심이 돼 집권 초부터 이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국민 여론을 반영해 추진하겠다고 물러섰던 것인데,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일정 부분 이런 정권의 정책 추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노동부는 이번 설문조사에서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노사 및 일반 국민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이 비동의한다는 응답보다 크게 많았다”며 이러한 국민 의견을 수용해 “현행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노사와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설문조사로 확인된 국민 의견에 따라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종전과 같이 일괄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제조업 등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2. 도대체 이번 대국민 설문조사는 어떻게 한 것이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설문조사를 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근로자 3천837명, 사업주 976명, 국민 1천215명 등 총 6천30명을 대상으로 방문 면접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개편 방향, 현행 주 52시간제에 대한 인식, 근로시간 실태 등에 관한 설문을 구성해 조사했다. 첫째, 근로시간 개편 방향은 “현행 주 52시간제와 같이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총량은 유지하되,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은 노사와 국민 모두 동의 비율이 비동의 비율보다 약 10%포인트 이상 높았다”고 발표했다(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동의, 근로자 29.8%, 사업주 26.3%, 국민 29.8%가 비동의). 둘째,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인식은 “현행 근로시간 제도로 근로자 48.5%, 사업주 44.8%, 국민 48.2%는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는데 근로자 45.9%, 사업주 45.1%, 국민 48.5%는 업무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지만 “근로자 28.2%, 사업주 33.0%, 국민 39.0%는 업무량이 갑자기 늘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답했고, “근로자 44.2%, 사업주 44.6%, 국민 54.9%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이상은 노동부 지난달 13일 보도자료에 첨부돼 있는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관련 브리핑 내용이다.

이러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듣자면, 그동안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가 국민 여론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국민 여론을 확인했으니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기게 될 지경이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대단하게 떠들었던 나로서는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다. 설문조사에 응한 국민은 누구기에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인지, 법정 근로시간제, 노동제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서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인지 나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겠다. 그래서, 보도자료에 첨부된 구체적인 설문조사의 질문 사항과 답변 사항을 살펴보았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관한 의견은 표32로 그 질문 사항과 답변 사항이 정리돼 있었다.

노동부 보도자료에서 밝힌 대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관한 질문에 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동의하고, 근로자 29.8%, 사업주 26.3%, 국민 29.8%가 비동의하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정리돼 있긴 했는데, 답변 사항에는 ‘동의’와 ‘비동의’ 외에 ‘보통’(근로자 23.4%, 사업주 28.9%, 국민 19.7%)), ‘모르겠음’(근로자 5.4%, 사업주 6.5%, 국민 4.0%)이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노동연구원은 “현행 주 52시간제와 같이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총량은 유지하되,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에는 노사와 국민 모두 동의 비율이 비동의 비율보다 약 10%포인트 이상 높았다”고 발표하고, 노동부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에 노사와 일반 국민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이 비동의한다는 응답보다 크게 많았다”고 발표하고서, 연장근로 관리단위의 확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러나 설문조사의 질문과 답변 사항을 냉정히 읽어보면 과반수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일일이 노동부의 위탁을 받은 정부 연구기관의 조사자가 면접 방문조사를 벌였는데도 과반수가 정부 정책 추진에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 만약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 등 노동단체가 설문조사를 했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근로자 28.2%, 사업주 33.0%, 국민 39.0%는 업무량이 갑자기 늘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답했고, “근로자 44.2%, 사업주 44.6%, 국민 54.9%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과반수가 동의를 표한 것도 아니고, 조사기관과 조사자가 달라질 경우 설문조사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가 현행 주 52시간제로 장시간 근로가 감소하고, 업무시간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한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업무 유연성과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 곤란에 관해서 설문하고 대답하도록 추가 설문조사하고서 그 결과를 덧붙여 마치 현행 주52시간을 업무 유연성과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을 위해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것처럼 발표했다.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최장의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는 업무량이 갑자기 늘었을 때 추가로 연장근로를 금지하고, 일정 업종이나 직종에서 추가로 연장근로도 금지함으로써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는 제도인데, 설문은 잘못됐다.

3.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노동부는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이다. 어차피 연장근로를 해서 연장근로수당 등 임금을 더 받기를 원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노사가 원해서 할 수 있도록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보는 것이다. 사실 이런 태도는 지난 대선에서 사업장에 따라 주 12시간을 넘어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한 것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노사가 원해서 하는 것이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노사가 원해서 하는 것이라도 위법하고 부당한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노사가 원한 것이라도, 노사합의로 체결한 근로계약, 단체협약이라 해도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특별히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있고, 그 대표적으로 근로기준법이 그것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를 제한하기 위해서 법정근로시간, 노동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최장 근로시간을 정해서 규제하는 것인데, 오늘 이 나라에서는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1주일의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그것이다.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 나라 법률이 정한 최장 근로시간이 이 1주 52시간제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이를 위반해서 안 되는 것이니, 노사가 원해도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최장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의 역사는 1일 8시간, 1주 48시간제에서 40시간제로, 나아가 35시간제로 단축돼 왔다. 나라에 따라서는 법률로, 어떤 경우는 법에 준하는 단체협약로 노동자의 최장 근로시간은 이렇게 단축한 것인데, 대한민국에서도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일제강점기 이래 노동운동의 요구였던 1일 8시간, 1주 48시간에 관한 근로시간제를 도입, 규정했다. 이를 초과해서 연장근로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 이 나라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 48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돼 노동제는 엉터리가 돼버렸다. 그래서 기껏해야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주 52시간제가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라고 볼 수 있겠는데, 오늘 이 나라에서 권력은 이 마저도 업무 유연성과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을 위해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통해 완화하겠다고 야단인 것이다. 노동제에 무지인 채 설문하고 답한 결과를 내세워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추진해 노동제를 무력화시키겠다고 하는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