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워킹맘’이 수습기간에 어린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새벽 근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본채용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오전 이른 시간에 근무할 경우 자녀를 보육시설에 등원시킬 수 없는데도 회사가 새벽 근무를 강제함으로써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저출산 시대에 육아하는 노동자의 근무환경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고속도로영업소 ‘초번 근무’ 제도에 ‘갈등’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고속도로영업소 관리 용역업체인 M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지난 16일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소송이 제기된 지 5년여 만이다.

사건은 2017년 고속도로 관리 용역업체가 바뀌며 시작됐다. 여성노동자 A씨는 종전 용역업체에서 2008년부터 8년여간 일하다가 M사가 용역을 입찰받으며 2017년 4월부터 고속도로영업소 서무주임으로 고용승계됐다. 단 이전 근무기간과 무관하게 3개월간 수습기간을 뒀다. 그러면서 ‘문제가 있는 경우’ 사용자가 본채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정했다.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조건은 취업규칙인 현장직 복무규정에 담겼다. 복무규정은 ‘일근직 사원의 근로시간은 현장의 특성에 맞춰 정하고, 사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근무시간 변경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정했다. 회사는 ‘초번 근무(교대제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매달 일정 횟수로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 제도를 운영했다. A씨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A씨는 만 1세와 6세인 자녀를 키우고 있어 새벽 근무가 쉽지 않았다. 종전 회사에서는 초번 근무를 면제받고, 공휴일에는 연차휴가로 대체해 쉬었다. 그런데 용역업체가 변경되며 회사가 초번 근무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다행히 고용승계된 첫 달에는 유치원 등원시간에 맞춰 외출을 허락받아 초번 근무 3번을 모두 수행했다.

‘공휴일 출근’ 지시에 초번 근무 거부, 근태 감점

갈등은 사측이 2017년 4월 말부터 공휴일 출근을 지시하면서 불거졌다. A씨는 ‘예전 회사에서는 다른 영업소 서무주임도 공휴일에 근무하지 않았는데, 근무형태를 하루아침에 변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경위서를 냈다. 그러자 사측은 ‘무단결근이 계속되면 초번 근무시 외출을 허용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다. 이에 반발해 A씨는 2017년 5월부터 초번 근무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측은 이를 빌미로 본채용을 거절했다. 3개월 후 본채용 평가에서 A씨가 총 9회의 초번 근무를 거부하고 공휴일과 근로자의 날에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근태 항목에서 50점 가까이 감점했다. 그 결과 총점 100점 중 70점에 미치지 못했다. 회사는 2017년 6월30일 A씨에게 정식채용 거부를 통보했다.

A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휴무일 설명을 들었는데도 무단결근을 계속했다”는 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회사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노력하지 않았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M사는 2018년 1월 소송을 냈다. 사측은 “초번 근무시 외출하도록 허용하며 A씨 사정을 배려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측은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사정을 배려받지 못했다”고 맞섰다.

엇갈린 하급심, 대법원 “육아기 노동자 배려 없어” 질타

쟁점은 자녀 양육이라는 사유로 노무제공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본채용 거부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상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1심은 A씨에게 초번 근무와 공휴일 근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본채용 거부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형식적으로 관련 규정을 적용해 실질적으로 A씨가 ‘근로자로서의 근무’와 ‘어린 자녀의 양육’ 중 하나를 택일하도록 강제되는 상황에 처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은 ‘초번 근무’와 ‘공휴일 근무’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A씨가 이행하지 않은 것이 본채용 거부통보의 원인이 됐다는 취지로 사측의 청구를 인용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다시 뒤집었다. 중노위가 2019년 11월 상고한 후 대법원에서만 4년간 심리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A씨가 초번 근무와 공휴일 근무를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먼저 “A씨는 영업소에서 약 8년9개월 동안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 온 숙련된 근로자로서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며 “A씨 입장에서는 본채용 거부통보가 실질적으로 수 년간의 고용이 종료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력을 갖는 점을 고려하면 거부통보의 합리적 이유와 사회통념상 상당성은 신규 근로자 본채용 거부보다 다소 엄격하게 판단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육아기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고 질타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공휴일 근무의 횟수·빈도나 근무시간을 조절해 연차휴가·외출 등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하거나 A씨가 바뀐 근로조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한 유예기간을 부여했더라도 영업소 운영에 큰 지장이 있었으리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업소에는 교대제 혼합형태 근무자가 7명이 더 있어 A씨가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직원도 아니었던 점도 근거가 됐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법원 “공휴일 출근 강요는 양육에 큰 저해”

특히 A씨가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나 공휴일에 근무할 경우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정을 회사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영업소의 여건·인력 현황 등을 고려해 보면 일·가정의 양립 노력이 과도하거나 무리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수년간 지속해 온 근무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서무주임인 A씨에게 공휴일 근무를 지시해야 할 회사의 경영상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입법취지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남녀고용평등법(19조의5)은 사업주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업무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 조정·연장근로의 제한·근로시간의 탄력적 운영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발생하는 근무상 어려움을 육아기 근로자 개인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볼 수 없고, 사업주는 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업주의 ‘배려의무’는 △근로자가 처한 환경 △사업장 규모와 인력 운영 여건 △사업 운영상의 필요성을 종합해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박삼성 변호사(박삼성 법률사무소)는 “회사가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리하게 공휴일 근무와 초번 근무를 지시한 점을 상고심 과정에서 계속 강조했다”며 “대법원이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배려의무를 설시하며 바로잡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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