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혜 안전관리 노동자

안전이 중요한 시대다. 사회이슈마다 안전이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안전은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산업재해에 대한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안전과 관련한 법도 꾸준히 재·개정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적용되는 대표적인 안전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훨씬 다양한 법을 적용받고 있다.

정유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정유공장은 대표적인 화학물 취급 공장이며, 원유를 정제해 가스·액체류·고체류 제품을 생산한다. 생산공정에 따라 위험물안전관리법(위험물관리법), 고압가스 안전관리법(고압가스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 위험물안전관리법(위험물관리법)을 비롯해 다양한 법을 적용받고 있다. 또한 대량의 전기를 사용하기에 전기안전관리법, 설비 관리는 건축물에 해당되기에 건축법과 건설기술 진흥법을, 사업장 내 연구시설은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안전법) 적용 대상이다. 다른 사업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론 산업안전을 고용노동부만 맡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론 웬만한 정부기관 모두가 산업안전과 관련한 법률을 담당하고 있다. 일례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산업재해의 경우)은 노동부 소관이지만, 화학물질관리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은 환경부 소관이다. 또한 연구실안전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건축법과 건설기술 진흥법법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하고 있다. 또한 승강기 안전관리법(승강기법)은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현장 안전관리자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본이며, 유관 법령을 서너 개씩 숙지할 수밖에 없다. 사업장에 적용받은 법률들을 모두 파악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중복되거나 충돌하는 법령이나 우선하는 법령이 있는지 검토하는 게 중요한 업무가 됐다. 폭발·누출·질식·독성중독 위험이 있는 화학물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가스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고압가스법,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물론 화학물질관리법에서 고압가스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기준을 충족하면 화학물질관리법 기준을 준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화학물질관리법 적용 대상이 아닌 화학물질을 보관하더라도 화학물질관리법을 기준으로 설치하는 식의 문제 아닌 문제가 있으며, 화학물질관리법 기준을 충족하려다 보니 산업안전보건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화학물 저장 탱크 설치시 방유제 설치도 마찬가지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위험물관리법의 설치 기준이 다르다. 물론 위험물관리법은 법에 명시된 화학물질이 기준이지만, 차후 용도 변경 가능성과 관리의 용이성으로 많은 현장에서 저장 탱크 신설시 위험물관리법을 우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각 법마다 안전관리자 선임기준을 두고 있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안전관리를 해야 하지만, 사실상 무력화된 경우가 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고압가스 제조사인지, 액화석유가스 판매사업자인지에 따라 안전관리자 선임기준이 각각 별도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 조치법(기업규제완화법)으로 대상자 중 한 명만 선임해도 다른 법령의 안전관리자를 고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해당 법안이 90년대에 통과된 법임을 염두에 둔다면, 결국 선임 기준에 대한 법개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심지어 연구실 안전관리자의 경우엔 별도 자격증까지 있지만, 유관 기사자격 소지자가 관련 경력을 쌓는다면 연구실 안전관리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복잡할 필요가 없는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형국이다.

화학물을 이송하는 데 쓰이는 배관 안전관리는 훨씬 더 복잡하다. 화학물 이송 배관 누출 사고 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배관 두께를 측정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고압가스법, 위험물관리법 모두 다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법안을 검토해서 배관을 관리해야 하므로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각 안전 법안들의 내용이 충돌하다 보니 우선순위가 생기고, 우선순위가 꼬이면서 안전관리 난이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부분이 있다. 더구나 사업장 구성원 참여를 강조하는 상황이기에 자격과 경력이 없는 타 직군 종사자의 경우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사업장 구성원들이 안전관리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유관 법령들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안전관리 노동자 (heine03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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