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그녀는 2019년부터 현대해상의 자회사 현대C&R 콜센터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비대면 금융거래가 늘어나면서 콜센터로 업무가 집중되고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비대면 상담을 받아 온 그 길고 어두웠던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자, 금융권은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이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4년을 넘게 회사를 다녔지만 그녀는 몰랐다. 현대해상이 해마다 경영성과급을 모회사 정규직 및 자회사 사무직 노동자에게만 지급해 왔다는 사실을. 올해에도 현대해상은 지난해 경영성과급을 모회사(750%)와 자회사 사무직(400%) 노동자에게만 지급했다. 콜센터 상담사만 제외한 채로 말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3년 동안 죽도록 욕먹어 가며 비대면 상담을 받아 온 상담사에게 회사는 ‘차별’과 ‘배제’란 단어로 노동의 가치를 돌려줬다.

모회사 현대해상은 보험업과 이에 기반한 부가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자회사인 현대C&R 콜센터에는 장기 및 자동차보험의 가입·해지·계약 변경, 계약대출, 장기보험 보상상담을 담당하는 상담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보상상담, 사고접수, 긴급출동을 담당하는 현대하이카손해사정 콜센터 상담사들도 현대해상의 자회사 소속이다.

현대해상 콜센터 상담사들이 고객응대를 통해 수행하는 업무는 보험업에 필수적인 신용조회와 보험계약 변경, 해지업무 등이다. 보험업이 주요 사업인 모회사의 본질적인 업무들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해상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회사 현대해상은 콜센터 상담사들을 현대해상의 얼굴이라 내세우면서 사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한 것이 아닌가.

콜센터 노동자에 대한 고객의 폭언과 갑질, 감정노동으로 인한 건강손상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콜센터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강도 노동, 간접고용,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콜센터의 모든 문제는 원청(모회사)-하청(자회사) 구조에서 시작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권 회사들이 직접 콜센터를 운영하지 않고 자회사 형태 또는 외부 콜센터 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운영한다. 기업은 당연히 저비용·고효율 업체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콜센터 상담사의 급여는 최저임금(기본급) 수준으로 고정된다.

하청업체들이 원청업체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절감해야 하고, 비용절감을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을 뽑을 수 없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휴게시간은 물론 생리적 요구를 해결할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콜 처리에 매달려 일상적으로 실적 압박을 받고 있다. 낮은 기본급을 받는 상담사들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관리자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콜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실적압박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관리자에서 상담사로 내려온다. 원청은 실적을 통해 하청을 통제한다.

금융권 콜센터 노동자에 대한 실적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상담업무를 하게 되면 상담이력을 남겨야 하는데(이를 ‘후처리’라 함), 후처리는 통화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후처리 중에도 관리자가 계속 온라인 쪽지를 보내 ‘후처리가 3분 이상 발생하면 개별면담 해라’ ‘어떤 사유로 후처리가 길어지는지 사유를 작성하라’고 독촉한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근무시간 내내 미친 듯이 ‘콜’을 받으라는 얘기”라고 호소한다.

이렇게 자회사·하청회사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실적을 압박하고 쥐어짜서 금융기관이 남긴 수조원의 이익은 어디로 갔는가.

2023년 현대해상 콜센터 노동자들은 ‘불평등 타파’를 내걸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하나은행·KB국민은행 콜센터 노동자들과 함께 역사적인 파업에 나섰다. 빼앗긴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대가를 찾아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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