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근로복지공단 대전서부지사 직원 A씨가 지난달 19일 사무실에서 투신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동료들은 과중한 업무와 감정 노동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업무상 재해를 입은 노동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공단 노동자들이 병들고 있다. 산재보험 대상자는 확대되는 추세지만, 인력과 예산은 오히려 축소됐기 때문이다. 근로만 있고 임금은 없는 근로‘착취’공단이란 오명까지 붙었다.

근로복지공단노조(위원장 박진우)는 지난 16일부터 국회 앞 무기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적정 인력·예산 배정을 촉구하고 있다. 19일 오전 국회 앞에서 만난 박진우(58·사진) 위원장은 “공단 직원들의 노동환경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모든 노동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최근 조합원이 업무 중 사업장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애꿎은 생명이 안타깝게 희생됐다. 재활보상부 재해조사팀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유족이 조만간 산재신청하면 공상처리위원회에서 객관적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A씨처럼 재활보상부에서 일했던 다른 지역지사의 B씨가 지난해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음에도 사측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 고인들의 업무적 스트레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
“먼저 업무 과중이 있다. 최근 5년간 산재신청은 증가 추세다. 2018년 13만8천576건에서 2022년 18만1천792건으로 5만건 가까이 늘었다. 특히 사고·출퇴근에 비해 업무량이 많은 질병 신청은 2018년 1만2천975건에서 2022년 2만8천796건으로 폭증했다. 지난 8월 기준 질병 신청은 이미 2만건을 넘어섰다. 직원 1명당 처리 중인 사건이 기존 20~30건이었다면, 이젠 70~80건에 달한다.”

- 업무량 증가에 따라 인력이 충원됐나.
“내년도 인력 증원은 8명뿐이다. 공단은 정부에 1천100여명 증원을 요청했다. 특히 지난 7월1일부터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130만명이 고객이 됐다. 재해조사 대상이 2만여명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374명 증원 요청했다. 하지만 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200명을 감축하고 인건비 43억원을 삭감하기까지 했다. 전속성 폐지에 따른 산재신청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심지어 기준보수가 아닌 실보수로 산재보험료를 계산하는 방식이 바뀌어 분쟁 소지가 많아졌다.”

- 최근 공단 직원들이 ‘흉기 난동’을 겪는 일도 있었다.
“악성 민원들 때문에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지난 8월부터 사건 처리에 불만을 품고 흉기를 사용한 사례가 잇달아 발생했다. 8월 서울지역본부에서 민원인 2명이 주방용 칼로 자해를 시도했고, 9월 청주지사에서도 민원인이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려 했다. 울산본부에서 민원인이 직원에게 유리병을 던져 목을 맞는 일도 있었다. 폭언도 심각하다. 직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 악성 민원 해법은 없나.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이달 16일 조합원 안전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공공기관 최초다. 사측과 노조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 직원 트라우마 검사를 추진한다. 기초 검사에서 2차 검사 대상으로 분류되면 병원과 연계하려고 한다.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외부 안전요원을 고용하고 출입문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된 사업장에 3개월 한정이다. 결국 이 모든 것도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 고강도 업무에 상응하는 처우인가.
“지난해 공단의 평균연봉은 공기업·준정부기관 90개 중 77위다. 특히 4대 보험기관 중 최하위다. 인력 유출이 심각하다. 유관기관인 건강보험공단과 동일 직급, 동일 호봉 대비 79~82% 수준이다. 신규입사자 17%가 1년 이내 퇴사한다. 최근 공단 7~8년 차 대리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신입으로 입사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오죽하면 ‘건보사관학교’란 말까지 나오겠나.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동등하게 달라는 것이다. 올해 임금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해 총액인건비가 43억원 깎인 상태에서 올해 1.7% 증액됐다. 현재 인원에 대한 인건비도 부족해 인상은커녕 임금체불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공단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정부는 살인적 노동 강도와 악성 민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적정한 인력과 예산을 배치해야 한다. 공단 전산시스템을 새로 만들어 온라인민원신청을 늘리고 업무를 효율화하는 방법도 있다. 공단 직원들의 노동환경이 보장돼야 산재보상 서비스 질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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