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국가가 임금체불을 한 사업주로부터 ‘떼인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떼인 돈’ 규모만 3조원이 넘는다. 근로복지공단은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들에게 우선 대지급금을 지급하고, 노동자를 대신해 사업주에게서 돈을 돌려받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사업주가 떼먹은 임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사태를 방치하면 대지급금을 지급하는 재원인 임금채권보장기금이 바닥나 결국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어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지급금 지급률은 40%대 수준
추심률은 20%대에 머물러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사업주의 대지급금 변제 미납액은 3조2천766억원이다. 정부는 대지급금 지급률에 비해 회수율이 낮다는 문제는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노동부는 대지급금 처리실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지난 6월 감사결과를 내놨다.

9일 <매일노동뉴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받은 고용노동부의 대지급금 처리실태 특정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대지급금 지급률은 2019년 26.7%에서 2022년 39.9%까지 올랐으나, 변제금 회수율은 같은 기간 24.8%에서 28.5%로 큰 변화가 없었다.

최근 3년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0년 체불액은 1조5천830억원이고 지급액은 5천797억원으로 지급률이 36%에 수준이다. 2021년은 1조3천505억원 중 5천466억원을 지급해 40.5%로 올랐고, 2022년은 1조3천472억원 중 5천369억원으로 지급률(39.9%)이 40%에 근접했다. 회수율은 2020년 21.1%(1천225억원), 2021년 27.1%(1천482억원), 2022년 28.5%(1천532억원)를 기록했다.

체불 사용자에 빌려준 돈 70% 이상이 회수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노동부는 사업주의 책임성 미비와 함께 회수절차 적기 진행 및 부정 부당이득 징수 조치 소홀, 부정수급 적발·조사·징수 업무 소홀을 지적했다. 담당자 충원율 저조와 전문성을 위한 신규 교육시간 부족도 원인으로 꼽았다. 노동자들이 일을 제때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인력 부족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공단 채권회수 노동자 “한 달 평균 10번 법원 출석
사업주와 다툼도 … 소극적 업무 처리만도 바빠”

현장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들은 업무를 ‘쳐내는’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특히 2021년 10월 개정 임금채권보장법이 시행되며 업무가 급격히 늘었다는 게 담당자들의 주장이다. 

2021년 10월 시행된 개정 임금채권보장법은 임금체불을 겪은 노동자들에게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대지급금을 받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퇴직자만 법원에 민사소송을 신청해 ‘사업주가 체불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받아야 대지급금 지급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임금체불이 발생한 재직자도 지방노동관서에서 임금체불 확인서만 지급받으면 대지급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밟아야 하는 법적 절차가 공단 업무로 이관되면서 담당자의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 공단 담당자들은 원래는 노동자의 청구권을 대위해 민사소송을 거쳐 사업주 재산을 가압류·경매·환가를 거쳐 회수하는 업무를 해 왔다. 개정법에 따라 공단 직원들은 사업주가 체불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아내야 한다. 또 지급대상이 재직자로 확대되다 보니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주와 분쟁도 급증했다.

17년 동안 체불 업무를 담당한 공단 직원 A씨(53)는 매주 야근을 빼놓지 않고 한다고 호소했다.

“한 달에 10번 정도는 법원에 출석해 변론하고, 주에 한두 번 야근을 합니다. 변론기일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류를 들고 집에 가서도 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요. 재직 중인 노동자들을 대리하다 보니 사업주들과 다툼도 늘었어요. 대표이사가 바뀌어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거나 실질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노동부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흔해요. 주어진 업무가 많아지다 보니 소극적으로 처리하는 데도 정신없이 바쁩니다.”

체불사업주 채권 담당자 1명당 1천175건 처리

물론 노동부도 개정 임금채권보장법 시행 다음해인 2022년 정원을 56명 늘려 대응에 나섰다. 인건비도 2021년 97억800만원에서 2022년 120억1천800만원, 2023년에 120억8천81만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업무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매일노동뉴스>가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채권회수업무 담당자는 90명으로, 관리건수는 모두 10만5천774건이다. 직원 1명당 무려 1천175건을 담당하는 셈이다. A씨는 “업무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200~300건 정도를 담당했다”며 “최근 몇 년 새 업무량이 몇 배가 뛰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에서 전자소송 도입으로 업무가 간소화된 측면이 있지만 업무량이 느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고 덧붙였다.

임금채권 회수업무를 하는 공단 업무량은 국가채권 회수업무를 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비교해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해 기준 채권회수업무 담당자 52명이 1만7천684건을 맡고 있다. 1인당 340건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자산관리공사에 비해 업무량이 3.5배 더 많은 상황이다.

정부 대지급금 대신 사업주 융자 확대에 ‘무게’
전문가 “채권회수 강제력 높여야”

문제는 해가 갈수록 대지급금 미회수 문제의 심각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간이대지급금(소액체당금)제도가 도입된 2015년 38.6%였던 회수율은 지난해 31.9%로 하락했고, 올해 7월 기준 31.4%에 그친다.

이수진 의원은 “대지급금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변제금 회수실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누적된 변제금 관련 미회수 채권 관리금액이 3조3천억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라고 지적했다.

사용자 호주머니로 들어간 3조3천억에 이르는 대지급금 미수금은 다시 체불노동자의 목을 조를 수 있다. 대지급금의 재원은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나온다. 기금은 사업주의 변제금과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의 사업주 부담금 등으로 구성된다. 변제금 미회수 규모가 커지면 기금 운용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서 대지급금 예산을 올해 5천591억원에서 844억원(15.1%) 감액한 4천747억원으로 잡았다.

노동부는 대지급금 회수율이 떨어지자 사업주 융자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6월 한국노동법학회가 제출한 ‘임금채권보장법상 사업주 책임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채권 회수율이 25% 수준에 정체하면 임금채권보장 제도가 위축될 위험이 있어 대지급금보다 사업주 융자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체불 사업주에 융자 문턱을 낮춰주자는 것인데 이 역시 부실로 이어져 임금채권보장기금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임금채권 회수 강제력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주의 재산을 강제집행할 수 있도록 하게 하자는 것이다. 김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업주가 납부할 변제금은 단순 민사채권이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인 임금채권보장기금의 재원이 된다는 점에서 공적 성격이 강하다”며 “사실상 무력화된 형사처벌 제도를 보완할 대지급금제도의 확대 발전을 위해 체납처분 절차 준용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금채권법 개정 당시에도 체납처분을 통해 사업주로부터 변제금을 회수하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임금채권의 성격이 민사채권이라는 이유였다.

공단은 인력충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력충원이 이뤄지면 적극적으로 사업주 재산을 조회해 환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예전에는 사업주 재산 변동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현장방문도 했었다. 숨통이 트이면 이런 노력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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