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애의 아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있다. 만화책으로 발간했다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고 한국 덕후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BTS의 RM이 SNS에 이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인증 사진을 올린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아이돌은 우상 혹은 대체로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연예인을 지칭한다. 무리스럽게도 나는 한때 불교계 아이돌을 자처했는데 노동계의 아이돌은 꿈도 꾸고 있지 않다. 노동계의 아이돌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전태일’이라는 상징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노동운동의 아이돌인 전태일 열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계기가 있었다.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다리에 설치된 전태일동상의 거취가 논의 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태일동상은 2005년에 노동자와 시민의 모금으로 건립됐다. 전태일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잇고자 하는 대중들의 마음과 정성이 모였고, 18년 동안 전태일동상은 노동인권 교육의 현장이자 노동운동의 결의를 다짐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전태일동상의 위상이 떨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전태일동상을 제작한 임옥상 작가가 자신의 미술계 후배이자 직원인 노동자를 성추행했고 혐의가 인정돼 유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죄는 전태일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행위다. 전태일 열사는 살아생전 어린 여성노동자인 ‘시다’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혐의는 직장내 성희롱으로 권력을 가진 자의 폭력이자 착취였다.

당연하게도 범죄를 저지른 작가의 작품은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가와 작품은 분리돼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아닌 동상이 가진 그 의미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전태일동상과 전태일 열사가 지닌 의미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평소 내가 생각한 전태일 정신은 모든 노동자가 누리는 노동기본권 실현과 약자에 대한 나눔이다. 여러 노동의 형태가 사라지고 생겨나고 변화하는 걸 반복하면서 현재의 전태일 정신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 전의 상황은 지금과 다르면서도 같다.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듯싶었으나 플랫폼노동이 확대되면서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는 다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시다와 같은 어린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폭력은 줄어든 듯하나 여전히 일터에서의 직위 또는 나이에 따른 권력형 성폭력은 만연하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많은 노동자가 연대하고 있지만 현 정부는 노동조합을 부정부패한 조직으로 치부하고 있다. 변화무쌍했던 흐름에 전태일 정신을 현재에 맞게 더 확장하고 전환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본질은 인간과 노동에 대한 존중과 불평등 해소 약자와의 연대일 것이다.

위와 같은 결론에 다다르니 전태일 정신에 맞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를 계기로 전태일동상과 전태일 정신에 대해 새삼스레 숙고해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전태일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에서 동상에 대한 권고문을 내면서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청했다. “앞으로 맞이할 세상에 전태일 정신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 과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동시민사회가 숙의하고 합의해 나가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변화와 더 많은 어려움을 맞닥뜨릴 것이다. 논쟁이 분열이 될 수도 있고 초심을 잃고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실현해야 하는지 몸소 실천한 사람이 있다. 노동운동의 아이돌, 전태일의 정신을 품은 노동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미래는 약자를 일으켜 세우는 세상일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gs23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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