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신이 왜 취업하기 힘든지 시종일관 신체 증상을 건조하게 설명하던 이하희(31)씨는 삶의 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떨어지는 눈가를 훔쳤다. “아무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좀 당황했던 것 같아요. 면역력이 약해져서 친구들도 많이 못 만나요.” 갑작스러운 눈물에 자신도 놀라 둘러대듯 말했다.

하희씨는 201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몸이 점점 좋지 않다고 느껴지던 2019년 7월에야 노동을 멈췄다. 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해 10월 어지러워 쓰러진 뒤 수모세포종(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항암·방사선 치료를 거쳤지만, 지난해 11월 뇌종양이 재발했다. 현재 앉아 있으면 극심한 허리통증 시달리고, 균형을 잡고 걷는 일도 어렵다. 하지만 휴업급여를 신청할 때마다 돌아오는 근로복지공단의 대답은 “취업상태로 치료가 가능하다”였다. 통원치료 기간만 휴업급여를 지급한다는 통보다. 하희씨는 재심의를 신청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뒤에야 전체 휴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공단이 취업치료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등학교 졸업 후 찾은 직장
31살 청년의 인생 바꿨는데

하희씨를 만난 건 지난 9월2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한 카페에서다. 그는 뇌종양 재발 뒤 2022년 11월~2023년 1월 휴업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취업치료가 가능하다”는 공단 자문의 의견을 근거로 통원치료 기간에만 휴업급여를 지급하는 결정을 했다. 하희씨는 재심의(산재 심사청구)를 했고 공단은 일부 부지급 처분 결정을 취소했다. 지난 2~7월 휴업급여 신청 때도 공단의 결정은 같았다. 하희씨는 “공단은 심사결정시 취소받은 원처분의 근거와 동일한 자문의 소견을 근거로 휴업급여 일부 부지급 처분을 했다”고 이의를 제기한 뒤에야 공단은 전체 기간에 대한 휴업급여 지급 결정을 했다. 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반복된 것이다.

하희씨는 “치료에만 전념하기도 힘든 상황에 왜 또다시 심사청구를 받아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래 친구들은 왕성하게 사회·경제활동을 하는 시기지만, 하희씨의 하루는 무미건조하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쉼이 되는 ‘앉는 일’은 하희씨에게 고통이다. 그는 허리통증을 “고층빌딩에 떨어져 다친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균형을 잡지 못해 서서 걷다 넘어져 다리에 멍이 드는 경우도 잦다. 왼쪽 손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1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동안 허리통증을 견디지 못해 일어서거나, 몸을 비틀거나 얼굴을 찌푸렸다. 주치의는 그에게 “혈액 수치가 너무 낮으니 감염되지 않도록 외부 활동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됐다.

하희씨를 대리하는 김지나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공단의 취업치료 가능·불가능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공단 내부 지침상 ‘취업’의 개념이 법적 근거 없이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등 부당하게 넓게 규정돼 있고, 이에 따라 실제로는 취업이 불가능해도 휴업급여를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산재 인정까지 8년,
휴업급여 받기 위한 두 번째 싸움

휴업급여 지급기준의 문제는 산재 노동자의 고통과 직결된다. 일하다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질병을 얻었는데 산재를 증명하는 일도, 자신의 노동능력 상실을 입증하는 일도 모두 재해자 몫이기 때문이다.

만성신부전증으로 매주 3회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는 김정남(가명·45)씨는 휴업급여 일부 부지급 처분에 불복해 심사청구를 준비 중이다. 그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하청노동자로 일했다. 성실한 노동의 대가는 2014년 3월 말기 말기 신장병 판정으로 돌아왔다. 그해 산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불승인 결정을 했다. 2019년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2월 산재로 인정받았다. 업무상 재해 확률이 높다는 취지의 감정결과가 나오자,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공단은 산재 불승인 신청 결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산재를 인정받는 데 꼬박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올해 4월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다. 주 3회 투석일에만 휴업급여를 지급하는 휴업급여 일부 부지급 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의 자신의 일상이 질병으로 인해 어떻게 망가졌는지, 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지 증명하는 시간이다.

정남씨를 대리하는 문은영 변호사(민변)는 “의사들은 암 환자든, 투석 환자든 누워있거나 간병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정 안 되면 장사라도 하라는데, 환자가 겪는 임상적 증상과 의사들이 알고 있는 질병 간 간극이 있다”고 지적했다.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는 “재해자가 복수의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 있고, 우울증과 동반된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공단 자문의의 (휴업급여 지급 결정에 관한) 판단이 종합적으로 내려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질병 자체뿐만 아니라 질병이 가진 특성과 직업환경에 다양한 제약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지영(가명·48)씨는 2001년 만성 백혈병 진단 후 최근까지 항암치료를 지속하면서 전신부종·관절통·어지러움·피부발진·두통·근육통·구토·설사·소화불량·전신 쇠약감·안구건조 등 합병증이 동반돼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도 휴업급여 지급이 거부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단 일부 절차 개선에도
노동계 “근본 문제 해결 아냐”

재해자와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휴업급여 지급 결정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오랫동안 해 왔지만, 개선은 더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단의 휴업급여 지급기준에 문제가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자 공단은 지난 7월1일 일부 시스템 개선했다. 취업치료 가능 여부에 대해 주치의와 자문의 소견이 다르면 자문의사회 등 다수의 전문가 의견을 청취해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또 공단은 “전문가 회의 결과를 토대로 직업성 암(폐암, 혈액암)에 대한 휴업급여 최소 기간을 설정해 지급기준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공인노무사)는 “공단 자문의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개선은 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며 “취업시장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취업보다는 원직복직 개념으로 취업치료 가능 여부를 판단하게 해야 한다. 원직에 복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경우는 휴업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폐암과 혈액암의 경우 최소 휴업급여 기간을 설정했지만, 그 기간이 얼마 동안인지 공개하지 않아 실질적 개선이 이뤄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류현철 이사장은 “휴업급여 최소 지급기간이라는 하한을 두는 것은 행정적으로 편리할 수 있다”면서도 “최소 기준을 산정하더라도 장애등급을 결정할 때처럼 (휴업급여 기간을 결정하는) 구조화된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은영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는 노동능력 상실률에 따라 손해배상률을 계산하기라도 하는데 휴업급여는 ‘취업치료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0’ 아니면 ‘100’”이라며 “어떤 재해자는 병원을 한 달에 한 번 혹은 6개월에 한 번 찾는데 그 경우는 사실상 안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휴업급여 결정 기준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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