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노동자들이 11일부터 일손을 놓는다. 핵심 요구는 인력 확충과 의료공공성 강화다. 지난해에도 같은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사가 합의한 인력조차 충원되지 않았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서울대병원분회·경북대병원분회에서 필수유지업무 인력을 제외하고 1천6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본부 소속 강원대·울산대·충북대병원을 포함해 7개 병원도 쟁의조정 신청을 할 계획이어서 추후 파업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의료연대본부 사무실에서 이향춘(54·사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을 만나 파업에 돌입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국립대병원 2년 이내 퇴사율 59%
“고강도 노동·열악한 처우로 인력 유출 심각”

- 파업에 나서는 이유와 핵심 요구는 무엇인가.
“병원의 고질적 문제인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간호관리료 차등제(간호등급제) 인력 기준을 근무조별 실제 근무 간호사 기준으로 바꾸고,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제재도 필요하다. 전체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인력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또한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상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기획재정부의 총액인건비와 총정원제에 묶여 인력·예산 통제를 받는데 노사합의마저 무력화시키는 통제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

- 지난해 11월에도 서울대병원분회·경북대병원분회는 인력충원과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며 파업했다. 지난 1년간 달라진 게 없는 건가.
“그렇다. 각 병원은 지난해 합의한 인력조차 기재부 승인을 핑계로 충원하지 않고 있다. 국립대병원은 민간병원에 비해 환자 중증도가 높아 노동강도가 센 편인데 인력 부족과 열악한 처우로 인해 인력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민간병원과 임금 격차도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A국립대병원의 경우 같은 지역 민간병원과 동일 경력 동일직종인 데도 연봉이 1천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민간병원으로 인력이 빠져나갈수록 남은 인력의 노동강도는 더 세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총액인건비에서 의사만 빼자’는 병원 사용자

국회 교육위원회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대병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7월까지 전국 국립대병원 15곳에서 퇴사한 간호사는 총 4천638명이다. 이 중 1년 이내에 퇴사한 인원이 1천971명(42.5%)으로 전체 퇴사자의 절반 가까이 된다. 2년 이내 퇴사한 인원으로 확대하면 2천736명으로 전체 퇴사자 가운데 59%에 달한다. 연도별 2년 이내 퇴사자 현황을 보면 2021년 57.7%, 2022년 60.5%, 2023년 7월 말 기준 58.3%로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 서울대병원의 경우 의사 진료수당만 100억원 규모로 인상해 논란이다.
“사용자측은 총액인건비 제한에 따라 올해보다 1.7% 이상 인건비를 인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런데 469명 의사들에게 진료수당으로 100억원을 추가 지출하기로 했다. 1.7%라는 상한선 안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금액이다. 병원측은 총액인건비와 상관없는 돈이라고만 한다. 분회와의 교섭 과정에서 병원은 기재부를 핑계로 임금인상이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한다. 현장의 인력난은 결국 환자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 탓만 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서동용 의원실이 국립대병원 등을 통해 확보한 ‘국립대병원의 기타 공공기관 해제 필요성 관련 건의’ 문건을 보면 국립대학병원협회는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교육부에 건의하면서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립대병원의 특수한 상황 등을 고려해 기타 공공기관에서 해제해도 총액인건비에서 의사직만 해제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병원측이 의사 임금을 올리는 데에만 골몰한 채 인력 확충 같은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간호사 대 환자수 1 대 6으로”
“노사 합의 무력화하는 기재부, 여전히 묵묵부답”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 인력 확충에 대한 정부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간호대 증원이나 지역공공간호사제 같은 대책은 정확한 해법이 아니다. 병원 현장에서 간호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간호사를 적게 배출해서가 아니라 일하던 간호사들이 사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직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인력충원을 통해 노동강도를 낮춰야 한다. 근본 해법은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를 줄이는 것이다. 간호사 대 환자수를 법제화하고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 간호사 대 환자수를 구체적으로 몇 명으로 해야 할까.
“우선 전체 간호사 대 환자수가 아니라 수간호사나 행정인력을 제외하고 근무조별 실제 간호업무를 담당하는 간호사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일반병동의 경우 1 대 6,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의 경우 1 대 3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90% 정도가 민간병원이기 때문에 법제화를 통해 민간과 공공병원 모두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당장 전체 병원에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 공공병원부터 적용할 수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2021년 10월 ‘간호사 1명당 담당환자수 축소에 관한 청원’에 대해 국민 10만명 동의를 받았다. 간호인력인권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안은 간호사 1명당 담당환자수를 법으로 규정하고 적정 인력을 유지하지 않은 의료기관은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법에 입법 취지가 반영돼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폐기될 전망이다.

- 사실상 기재부가 ‘키’를 쥔 상황인데 이를 타개할 방안이 있는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노조가 부서별 인력 충원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 병원측을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합의안을 마련해도 기재부가 승인하지 않으면 결국 인력충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노사 합의 사항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노조와 대화는커녕 이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노정교섭 제도화를 권고해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서동용 의원실에 따르면 국립대병원이 2021년부터 2023년 7월 말까지 정부에 요청한 간호직 증원 요청 결과를 보면 기재부 승인율은 2021년 70.1%에서 2022년 51.9%로 낮아졌다. 올해 7월 말 기준으로는 승인율이 39.5%에 불과하다. 올해 7월 기준 경북대병원(본원)·경상국립대병원(창원)·부산대병원(본원)·서울대병원(분당)·전남대병원(화순)·제주대병원의 경우 간호직 증원 요청에 대한 승인율이 ‘0%’인 것으로 나타났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로 병원노동자들이 전쟁 같은 시간을 겪은 뒤로 법이든 제도든 바뀔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의료공공성 강화가 필요한 이유를 모두 체감했지만 되레 윤석열 정부는 비대면 진료 확대 등을 추진하면서 ‘의료민영화’에 가속도를 붙인 형국이다. 공공의료 확대와 인력충원은 국민들의 요구이기도 한 만큼 병원노동자들이 앞장서서 공공성 강화를 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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