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시기를 늦추자는 여당의 움직임은 작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재계·여당의 주장은 법 제정 당시 3년 유예기간을 이미 부여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추가로 법 적용을 미룬다고 해서 중소·영세 사업장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5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내다버리겠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7일 성명을 내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국회의 역할은 안전보건규제를 완화해 죽음의 일터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국내 50명 미만 사업장은 200만 곳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 5~49명 사업장이 68만곳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 정부·여당은 물론 노동계와 재계는 법이 작동하려면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제외를 외치던 재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제도 안착을 위한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 법 16조(정부의 사업주 등에 대한 지원 및 보고)에도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명시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50명 미만 사업장 2천200여 곳을 컨설팅했고, 올해에는 대상을 1만 곳으로 확대했다. 내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중복되는 업체, 순수사무업종 등을 제외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준비를 실제 해야 할 5~49명 사업장수는 68만곳보다는 적을 것”이라며 “정부가 해당 사업장을 지원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제대로 하지 않은 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안전보건체계 구축을 외면한 사업장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여당 개정안이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더 지연시키는 악영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에서 “법 적용을 2년 유예한다고 과연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준비될지 의문이고, 준비가 안 됐다는 식의 재계 주장은 2년 뒤에도 아니 10년 뒤에도 똑같을 것이다”며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노사가 조금이나마 산업재해 예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있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은 더욱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산재로 죽어도 된다는 것이냐는 강한 반발도 나온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법 시행 이후에도 노동자 죽음은 이어지고 심지어 재벌 대기업은 기소조차 되지 않으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형해화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적용 시기를 2년 늦추자는 것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죽어도 된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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