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

정부가 ‘킬러규제 혁신’을 명목으로 재계 소원수리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는 24일 노동조건이 열악해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업종 사업장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한도를 2배로 늘리고, 택배·공항 지상조업 상하차직, 300명 이상 중견기업에도 외국인력 고용이 가능하도록 빗장을 푼다. 이곳들은 내국인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외국인력 도입을 유보하던 곳들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은 ‘낡은 규제’라며 전면 개편을 추진한다. 정부 계획대로면 노동자 생명·안전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업하는 데 중요한 것은 시간”

정부는 이날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산업단지 G밸리 산업박물관에서 4차 민관합동 규제혁신전략회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킬러규제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당·정 관계자뿐 아니라 류진 한경협(옛 전경련)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 기업대표 50여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투자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는 것은 킬러규제”라며 “우리 민생경제를 위해서 빠른 속도로 제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사업하는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되든 안 되든 빨리 정부가 결론 내주는 게 중요하다”며 “(기업인들은) 현장의 어려움을 격의 없이 가감 없이 말씀해 주길 바라고, 공직자들이 기업의 사원이라는 마음 자세로 임하게 되면 좋겠다”고 노골적으로 친기업 성향을 드러냈다.

이날 공개된 노동정책은 기업의 책임과 부담은 덜고, 더 값싼 노동력을 사용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외국인력을 확대하고, 안전보건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식이다.

사업장별 외국인 고용 한도 2배로
택배 상하차직도 외국인력 도입 허용

정부는 올해 외국인 노동자 쿼터를 사상 최대 규모인 11만명으로 늘렸는데 연내 1만명을 추가로 늘린다. 2024년에는 사업장별 고용 한도를 2배 이상 확대하고 현재 외국인력 도입이 불가한 업종에도 허가한다. 비수도권 뿌리기업 300명 이상 중견기업과 택배·공항 지상조업 상하차직도 외국인력 고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현재 제조업은 상시근로자 3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만 E-9비자 노동자 고용이 가능했다.

호텔·콘도업(청소) 및 음식점업도 실태조사를 거쳐 외국인력 도입을 추진할 전망이다. 정부는 “12월까지 현장 실태조사와 내국인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 종합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9 외국인 노동자가 4년10개월 근무하면 출국 후 재입국하도록 현행 규정도 개편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출국 없이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개정한다.

현장수요를 반영해 외국인력의 빠른 도입이 가능하도록 절차도 간소화한다. 사업주가 E-9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노동부에서 발급한 고용허가서를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 절차를 11월까지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안전, 기업 선택에 맡겨

안전보건규칙도 전면 개편을 추진한다. 정부는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낡은 규제나 부처 간 중복규제는 11월까지 개선하고, 이후 핵심 규정을 내년 12월까지 포괄적으로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규정은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다양한 기술지침과 가이드를 제공해 기업이 스스로 ‘자기규율 예방체계’에 따라 안전조치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목한 낡은 규제는 반도체 공장 설립시 비상구 설치 규정이다. 비상구 설치와 관련해 건축법령을 준수하면 안전보건규칙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규칙의 경우 작업자가 업무 중 재해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부분에 덮개를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이 기계·기구별로 열거돼 있는데, 위험요인별 안전기준을 통합해 포괄적으로 규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신속한 연구개발 지원’을 위해 소량 제조·수입되는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은 2024년 상반기를 목표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관련 영업비밀 심사를 면제하고, 사후심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연구 과정에서 해당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의 안전보다 ‘신속한 연구개발’이 중요하다는 판단인 셈이다.

촘촘한 안전보건규칙을 느슨하게 해 기업들의 책임을 덜어주기 위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업 처벌규정 제외하겠다는 것”
“외국인력 도입 준비 충분한가”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행 안전보건규칙은 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구체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규정하고, 위반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며 “안전의 세부 기준을 고시나 가이드로 바꿔서 처벌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최 실장은 “구체적인 안전조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도 없이 사업주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하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빈일자리를 해소하겠다며 외국인력을 대폭 늘리는 정책도 우려가 높다. 정영섭 이주노조 사무국장은 “택배 상하차업은 중국동포들에게 개방했지만 워낙 업무가 힘들어 사람들이 오는 사람이 없다”며 “동남아에서 오는 이주노동자들이 과연 버텨낼지 모르겠다. 근로조건과 처우 개선 없이 힘든 일을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도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빈일자리 문제는 절대적인 인력부족 문제도 있지만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가 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외국인력 규모를 확대는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다만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확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사업장 이탈이나 외국인 근로자 숙소·복지 처우에 관한 문제에 공공의 차원에서 얼마나 잘 관리할 수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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