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플랫폼 노동자가 사업자인지 근로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 일단 사업자로 바라보고, 사회적 보호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친기업 성향이 강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왔다. 사회적 보호 수준을 결정한 기준은 플랫폼 기업의 ‘노동수요독점력(monopsony power)’을 제시했다. 기존 노동자성 판단 기준인 ‘전속성’과 ‘경제적 종속성’이 아닌 플랫폼 사업자가 노동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사회적 보호 수준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기업 상황에 따라 노동자의 보호 수준을 달리 정하자는 뜻으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논의돼 온 정책이나 국제적 흐름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공정거래정책 통합적 논의해야”
정부 정책 반영 가능성 배제 못해

한요셉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23일 오전 기획재정부 중앙동 브리핑실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KDI FOCUS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설계’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 연구위원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의 보고서 내용이 정부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동수요독점력은 기업의 독점력과 유사한 개념이다. 기업의 노동수요독점력이 강할수록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가격을 낮춰 책정할 수 있는 힘은 커진다. 즉 노동수요독점력이 높은 기업과 계약을 맺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사회적 보호 수준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접근의 이점으로 한 연구위원은 “근로자 대상의 노동정책과 사업자 대상의 공정거래정책의 통합적 논의가 가능하다”며 “플랫폼 기업의 혁신을 허용하면서 종사자에 대한 실효적 보호를 제공하려면, 플랫폼의 노동수요독점력을 낮추거나 그 남용을 억제한다는 목표 아래 유연하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자인지 근로자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지위에 있는 경우, 플랫폼 종사자를 일단 사업자로 바라보되 해당 플랫폼의 수요독점력을 측정해 사회적 보호 수준을 비례해 결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플랫폼마다 노동수요독점력 달라
일괄 기준 적용은 과소·과잉 규제”

한 연구위원은 ICT 소프트웨어 개발자 플랫폼을 노동수요독점력이 약한 경우, 배달 플랫폼을 노동수요독점력이 강한 경우로 판단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플랫폼은 현재까지 정보제공과 거래 중개 역할에 머물러 있고, 여러 플랫폼이 경쟁 중이라 노동수요독점력이 높지 않으니 일반적인 계약의 보호 차원을 넘어 보호할 필요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3개의 주요 배달 플랫폼(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을 분석한 결과 노동수요독점력이 높은 수준에서 최근에는 상당히 낮아지고 있다고 봤다. 후발업체 쿠팡이츠의 시장 진입으로 배달앱 간 경쟁이 확대되자 소비자 유치 경쟁이 심해졌고, 소비자는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사용하는 일(멀티호밍·Multihoming)이 늘었다. 하지만 한 연구위원 연구에 따르면 배달 종사자 차원에서는 플랫폼 간 전환이 높지 않았다. 즉 라이더를 확보하기 위한 배달앱 간 경쟁이 심하지 않고 높은 소비자 수요에도 종사자 근무여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한 연구위원은 “플랫폼 분야마다 경쟁 상황이 다르고 플랫폼 종사자 보호 필요성도 다른 상황에서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할 경우 과소 혹은 과잉 규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각 분야마다 플랫폼의 노동수요독점력이 다를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쟁상황이 변화하는 등 각 분야 내에서도 노동수요독점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하는 노동수요독점력, 즉 기업 상황에 따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와 노동자의 사회적 보호 수준을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보편적 사회적 보호 흐름과 상반”
“사실상 개인 사업자로 보자는 얘기”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한요셉 연구위원은 “(플랫폼의) 수요독점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판단되면 거래상지위에 준하는 상황으로 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으로 보고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유럽연합이나 ILO 등에서 전속성이나 종속성을 고려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보편적 사회적 보호를 하는 것이 지금의 흐름”이라며 “이와 무관하게 수요독점 여부에 따라서 사회적 보호 수준을 달리하자는 것은 세계적인 플랫폼노동에 대한 접근법과 상이하고, 경제법 논리”라고 비판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기본적으로 사업자로 보되 수요독점(력)이 늘어나면 근로자로 볼 수도 있게 하는데, 이걸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려면 경직적으로 노동자다 프리랜서다 이렇게 하지 말고 노동법 일부와 경제법을 함께 적용하는 영역을 만들자는 이야기”라며 “사실상 개인사업자로 보자는 얘기를 포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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