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화성시 남양읍 말레동현필터시스템 회사 전경. <네이버 지도 갈무리>

노동위원회가 산별노조 하부조직이 산별노조 본부의 위임 없이 사측과 ‘정규직 전환’을 유보하는 취지로 합의했더라도 유효하다고 판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회가 근로조건 결정 등에 고유한 권한이 있다는 취지다. 산별노조 지회가 독립된 단체로서 실질을 갖췄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 태도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경기 화성시 자동차부품회사 말레동현필터시스템에서 해고된 노동자 A씨가 청구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지난달 20일 A씨 청구를 기각했다.

비조합원 해고, ‘단협 효력확장’ 쟁점

사건의 발단은 202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사출 업무를 담당해 왔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올해 4월18일 회사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했다. 이에 A씨는 계약만료가 부당하다며 지난 5월 경기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쟁점은 단체협약 적용 여부였다. 금속노조는 2020년 회사와 ‘수습기간 및 계약직의 사용제한’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협에는 “비정규직 고용 기간은 3개월을 초과할 수 없으며, 계속 사용할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발령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뒤늦게 확인한 A씨는 단협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A씨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말레동현지회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비조합원이라 단협이 적용되지 않을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A씨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5조에 따라 비조합원이더라도 단협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노조법 35조는 “하나의 사업장에 상시 사용되는 ‘동종’의 근로자 ‘반수’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 적용을 받게 된 때에는 당해 사업장의 다른 동종의 근로자에 대해서도 단체협약이 적용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른바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다.

지회의 경우 전체 직원 400여명 중 330여명이 가입하고 있어 동종 노동자 과반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경우라고 볼 가능성이 컸다. 지회 규칙에도 비정규직을 조합 가입대상에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A씨측은 단협에 따라 3개월 이후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므로 계약종료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계약직은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정규직 충원 필요가 있을 때 평가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반박했다. “일시적·간헐적 업무의 경우 3개월을 초과할 수 없으며 부득이한 경우 노사합의해 연장할 수 있다”는 금속노조와의 합의 내용도 꺼냈다. A씨는 상시적 근무를 한 것이 아니라서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없다는 의미다.

경기지노위 “지회의 독자적 행사 효력 있어”

문제는 지회가 금속노조와 무관하게 사측과 정규직 전환과 인력운영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노사는 계속근로를 희망하는 계약직에 한해 2021년 12월31일까지 근무를 연장하도록 정했다. 또 지난해에는 계약직 평가를 진행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합의하고, 장기적인 고용 안정화를 위해 노사가 합의한 정규직을 제외한 직원은 계약직으로 두기로 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3개월로 제한한 상급단체 단협과 배치된다.

사측은 이를 토대로 A씨는 평가 점수가 저조해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간 두 차례 정규직 전환 평가를 실시한 결과 A씨는 전환대상자 순위에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별도 평가규정은 없으나 지회와 평가기준을 함께 검토했고, 평가결과도 지회와 공유해 문제가 없다고 회사는 강조했다. A씨는 심문회의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심문회의에서는 지회가 독자적으로 체결한 합의의 효력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경기지노위는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측 손을 들어줬다. A씨가 ‘동종’ 노동자에 해당해 금속노조 단협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지회와 사측이 체결한 인력운영 합의의 ‘독자성’을 인정했다.

지노위는 “지회는 사무소를 두고 운영하면서 규약을 정해 조직을 구성하고 있어 독립된 조직체로 활동했다고 보인다”며 “지회의 고유한 사항(근로조건 결정 등)에 대해 사용자와 합의한 사안을 단지 위임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효로 볼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정한 평가 결과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노사합의를 했으므로 정규직 전환기대권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평가가 A씨에게 불리할 만한 정황이 없다며 정규직 전환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해석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전경.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전경.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지회 독자성 손쉽게 인정하면 안 돼”

지회의 독자적인 협약 체결이 가능하다는 해석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지노위는 “지부가 독립된 조직체로 활동하는 경우 독자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2001년 2월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발레오전장노조의 기업별노조 전환’ 사건 판결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이 하부조직의 기업별노조 전환이 가능하다며 원심을 파기해 파장이 일었다.

하부조직 탈퇴가 가능해져 산별노조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하부조직에 불과한 지회 등이 산별노조의 통제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조직형태의 변경을 결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대법관 5명도 “독자적인 단협 체결 능력이 전혀 없거나 상급단체의 위임을 받아 비로소 단협을 체결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면 노조로서의 실질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하부조직의 독자성을 쉽사리 인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A씨측도 산별노조의 단협보다 후퇴한 지회의 협의는 해고에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A씨를 대리한 이승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는 “지회 규약에 상급단체 위임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는데도 지노위는 이를 무시했다”며 “비정규직이 이미 취득한 정규직 전환 권리를 하부조직이 단독으로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는 “지회의 독자성을 손쉽게 인정할 경우 산별노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며 “상급단체 역시 지회의 독자적인 효력확장제도 무력화 합의를 용인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회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정규직 전환이 원칙인데 (협의 부분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정규직 전환에 소홀하지는 않았다. 정규직 결원이 생기면 전환한다는 규정도 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물량 저하로 인해 일시적으로 합의한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A씨측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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