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와이퍼분회는 7월26일 덴소코리아 화성공장 앞에서 일방적 청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국와이퍼분회>

지난해 일방적으로 기업 청산계획을 밝혀 대량해고 위기와 단체협약 위반 논란에 휩싸인 한국와이퍼 사태가 일단락됐다. 한국와이퍼는 청산 이후 노동자들의 재고용을 위한 고용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해당 기금은 고용약자를 위한 고용안정지원사업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기금 마련해 조합원 재고용·고용약자 지원

10일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분회장 최윤미)에 따르면 한국와이퍼 노사는 지난 5일 고용기금 마련을 뼈대로 한 노사 의견일치안을 마련했다. 이후 고용기금안에 대한 분회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찬성률 95.8%로 가결했다. 노사는 11일 오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서 조인식을 열 예정이었지만, 덴소쪽 내부승인 절차 때문에 16일로 연기했다. 이 자리에는 덴소 한국계열사인 덴소코리아(한국사업부 총괄·와이퍼부문 영업권)와 덴소와이퍼시스템(와이퍼부문 생산·납품)측도 참여한다. 한국와이퍼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일본 기업 덴소가 100% 출자해서 1987년 설립한 회사다.

노사는 합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노사가 고용기금 마련에 합의한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해당 기금은 한국와이퍼분회 조합원을 위한 재고용 지원사업과 중장년층·여성 등 사회적 고용약자를 위한 고용안정 지원사업에 활용될 계획이다. 전자는 △조합원 회복지원 및 심리상담 △고용상담 △은퇴자를 위한 생애전환 프로그램 △창업지원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쓰이고, 후자는 △고용안정을 위한 상담사업 △사회적 고용안정망 구축을 위한 연구사업 등 활동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쓰이게 된다.

한국와이퍼분회는 조합원 209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고용기금 마련을 요구해 왔다. 청산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전 조합원에 대한 고용유지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산업전환시기 정부 고용대책이 부재하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결론이다. 스웨덴 고용안정기금(TSL·Trygghetsfonden) 사례를 참고했다. TSL은 정부 기구가 아니라 단협에 의해 고용주가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기금으로 운영된다. 생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구직 상담, 일자리 중개·알선, 교육훈련 서비스를 제공한다(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스웨덴 비정부 고용안정기금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TSL의 실험을 중심으로’).

조돈문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TSL 재취업지원 서비스 수혜자의 1년 내 재취업률은 65%로 높게 나타났다”며 “일자리의 질과 자격요건에서도 재취업자의 대다수가 해고 전 일자리 대비 수평 이동 혹은 상승 이동을 경험한 반면 하향이동 비율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정리해고를 수반하는 사업장 폐쇄와 구조조정 과정이 극렬한 노사격돌 없이 노사협력 속에서 원만하게 진행된 덕분에 경영진은 재정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기업을 회생하는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보장 합의 파기로 사태 촉발
“해고노동자 집단 관리 시스템에 의미

한국와이퍼 사태는 사측이 한국와이퍼분회와 총고용 보장 합의를 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하면서 촉발됐다. 노사는 2021년 10월 고용안정 협약서를 체결했다. 당시 협약의 핵심 내용은 사측이 총고용을 보장하고, 청산·매각·공장 이전·구조조정을 할 경우 반드시 노조와 합의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한국와이퍼는 적자경영을 이유로 회사 청산 계획을 일방적으로 밝혔다. 덴소코리아가 한국와이퍼 사업을 철수하기로 정했고, 덴소와이퍼시스템이 한국와이퍼 청산을 결정했다는 내용을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해당 협약서는 한국와이퍼 노사만이 아닌 덴소코리아·덴소와이퍼 모두 연대책임자로서 보증·확약한 바 있다. 분회는 노사합의 없는 회사의 청산 절차는 단협 위반이라고 반발했고, 이후 노사 갈등이 지속됐다.

단식농성을 비롯해 분회의 투쟁을 통해 노사 교섭테이블이 어렵게 마련됐지만 교섭은 가다 서기를 반복해 왔다. 4월12일 한국와이퍼 노사 포함 덴소와이퍼와 덴소코리아, 노동부 안산지청이 참여하는 ‘5자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이후 분회는 5자 간담회 자리에서 사회적 고용기금 마련을 사측에 요구해 왔다. 지난달 10일 기금 규모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교섭이 결렬됐다. 이후 지난달 31일 교섭이 재개됐고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합의를 도출하게 됐다.

최윤미 분회장은 <매일노동뉴스>에 “처음부터 고용보장이 목표였기 때문에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아쉬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단순히 개별 조합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을 넘어, 사업장 틀에 갇히지 않고 조금이나마 사회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전환시기 대량실업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작은 사업장일수록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게 될 텐데 정부 대책은 미비한 상황에서 개별 노동자가 아닌 집단적으로 (실업 이후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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